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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말과활 14호 (2017년 여름호)에 핫핑크돌핀스의 활동을 담은 글 '돌고래, 자유와 해방의 메타포'을 기고했는데, 마침 오늘 책이 도착했네요. 강정마을에 살고 있는 엄문희 님의 글과 사진도 실려 있습니다.
돌고래, 자유와 해방의 메타포
조약골 (핫핑크돌핀스 활동가)
나를 소개하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글로만 만나다가 처음 얼굴을 보고 만나게 된 어느 학자와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그분에게 나 자신을 뭐라고 소개할까 고민하다가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인권, 환경, 여성, 평화, 국제연대, 문화운동 등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는 아나키스트 활동가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더니 그 분이 ‘소수자 운동은 안 하세요?’라고 되물었다. 징병제거부 운동이나 이주노동자 운동, 대안생리대 운동, 점거 운동 등등 사실 나는 내 활동이 대부분 소수자 운동에 해당한다고 여겨왔기에 굳이 소수자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뿐인데, 뭔가 소수자 운동에 해당하는 다른 영역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깐 스치듯 들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소수자 운동을 하고 있다. 요즘 내가 투신한 분야는 동물해방이다. 그중에서도 비주류이며, 가장 소수자에 속하는 돌고래해방운동이다.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에 비해 돌고래운동은 상대적으로 모금이나 후원도 어렵고 사람들의 관심도 별로 없다. 스스로를 착취하면서 살아가고 있기에 나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이렇게 살라고 권하지는 못하겠지만 사실 나는 내 활동이 맘에 든다. 신념에 부합하기도 하고 자부심도 꽤 있다. 나름 성과도 냈고 비슷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로부터는 인정도 받는 편이다. 그래서 이대로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사회운동으로서 돌고래들을 찾아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돌고래들을 풀어달라는 한 사람의 외침이 외로운 깃발로 나부끼지 않고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사회적 여건도 충분히 성숙해야 했을 것이고, 나 자신도 이것을 의미 있는 사회운동이라고 받아들이는 데는 아마도 긴 준비가 필요했을 것이다. 동물권엔 문외한이었지만 10년 이상 비건 채식을 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동물의 권리도 인간의 권리만큼이나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2011년 여름 처음 돌고래들을 쇼장에 가두지 말고 바다에 풀어달라는 어느 당돌한 환경운동가의 외침을 들었을 때는 솔직히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지금 시기에 저게 중요한가?’라는 습관화된 의문이 먼저 떠올랐다. 매일같이 경찰에 두들겨 맞거나, 감옥에 갇힌 채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벌이던 사람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제주해군기지 공사가 시작되고 있었던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에 있었다. 우리는 평화를 염원하는 생명평화백배로 아침을 시작해서 종일 경찰과 해군에 맞서 싸우며 공사를 저지하는 일을 하고 저녁이 되면 촛불문화제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그 환경운동가는 낮에는 인근 돌고래 쇼장에서 ‘돌고래를 바다로’ 피켓을 들고 보이콧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던 나는 해가 지기 전 어느 날 늦은 오후 구럼비 앞바다를 유유히 헤엄쳐가는 20마리의 남방큰돌고래들을 만나게 되었다. 바다에서 처음 본 돌고래들이었다. 해군기지가 지어지지 않도록 지키고 선 그곳에서 나도 모르게 소리가 터져나왔다. “돌고래들아, 너희들이 살아가는 이 바다가 망가지지 않도록 지킬께. 꼭 돌아와!” 돌고래들은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그냥 천천히 헤엄쳐갔고, 나는 사라지는 그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내가 강정마을에서 돌고래들의 소식을 다시 들은 것은 몇 달 뒤였다. 해군기지 공사를 위해 바다에 쳐놓은 오탁수방지막에 돌고래들이 걸린 것이다. 돌고래들이 늘 다니던 길목 한 가운데 갑자기 그물처럼 생긴 막체가 들어서자 돌고래들은 당황했고, 공사 예정지 안에서 몇 시간 가량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고향이 변해버린 것이다. 바다에 콘크리트 구조물이 세워지면서 돌고래 서식처가 파괴되고 있었다. 제주라는 생명평화의 섬에서 미국의 헤게모니 유지를 위해 지어지는 군사기지 건설 토목공사로 100여 마리 남아 있는 멸종위기 해양생물이 쫓겨나게 생긴 것이다. 또한 바로 옆 돌고래 쇼장에서는 수십 년 동안 제주 바다에서 불법으로 포획한 돌고래들을 좁은 수조에 가두고 서커스를 시키고 있었다. 깊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군사기지와 동물쇼라는 이중의 착취구조에서 돌고래들은 수탈당하고 있었다. 내가 만들어 즐겨 부르던 노래 ‘평화가 무엇이냐’ 가사의 구절구절이 그 안에서 되살아나고 있었다. 자연에 대한 폭력과 생명에 대한 착취를 근절시켜야겠다고 다짐했다. 핫핑크돌핀스가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 돌고래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쩌면 ‘나중에’는 너무 늦을 것 같았다. 불법포획이 적발된 돌고래 쇼 업체는 재판에 넘겨졌다. 국내 최초의 ‘돌고래 재판’이었다. 살아 있는 돌고래들이 대상이었다. 업체가 불법으로 취득한 장물, 돌고래들에 대해서 몰수를 할 거냐를 놓고 1년 여를 끌어온 재판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몰수 대상 돌고래들이 펼치는 쇼는 계속 열리고 있었다. 공개된 재무 자료를 뒤져보니 그 업체는 동물쇼로 매년 3~4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돌고래 한 마리가 연간 몇 억원을 벌어들이는데 사장은 그냥 가만히 앉아서 냉동생선이나 먹이면서 그 수익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돌고래들은 감옥에 갇힌 채 휴일도 없이 노동을 했고, 휴가도 없었고, 일 하고 싶을 때 일하거나 쉬고 싶을 때 쉴 자유도 없었다.
정말 놀랐던 사실은 그 업체에서 임신, 출산한 돌고래에게 육아휴직 따위는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어느 날 전화로 문의했더니 마침 그 업체가 ‘오늘은 휴일’이라는 것이다. 이상했다. 돌고래 쇼장은 보통 휴일이 없다. 1년 365일 개장한다. 왜냐하면 돌고래들을 굶길 수 없기 때문이다. 쇼장의 돌고래들은 조련사가 원하는 동작을 취해야 먹이를 받아먹도록 훈련이 되어 있기에, 돌고래들의 식사를 위해서라도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쪽 업계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이다. 관람객들은 쇼를 보고, 돌고래들은 먹이를 먹고. 거제씨월드의 조련사는 민관합동 조사차 찾아간 나에게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설명해주었다. ‘우리는 설날, 추석에도 쉬지 않는다’고. 아니 휴일에는 더 많은 손님들이 오기에 더더욱 쉴 수가 없다고. 울산 고래생태체험관 같은 공기관을 제외하면 나머지 국내 돌고래 사육시설은 연중무휴 개방이 원칙이다. 그런데 제주도의 쇼장에서 웬일로 휴관을 한다? 궁금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돌고래가 출산을 해서 휴관을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럼 몇 일간 휴관이에요? 3일 후 개장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출산으로 허약해진 몸을 미쳐 풀 겨를도 없이 또다시 쇼에 동원되어야 하는 심정이 얼마나 비참했을까.
돌고래 학살지로 알려진 일본 다이지에서도 돌고래가 임신을 하면 즉시 쇼를 멈추고 휴식을 취하게끔 한다고 그곳 관계자가 자랑스레 설명했다. 돌고래가 출산을 하면 2년간 쇼를 하지 않고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것이 일본 다이지 고래박물관의 답변이었다. 즉 무자비한 돌고래 사냥으로 악명 높은 일본 다이지의 쇼돌고래들도 임신기간과 출산 이후를 합쳐 총 3년간 육아휴직을 갖는데, 그에 반해 한국으로 팔려오거나 한국 해역에서 잡힌 쇼돌고래는 겨우 일주일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다시 강제노동에 동원된다는 이 지독한 한국판 착취의 노예제도를 나는 끝장내고 싶었다. 자본주의가 세련화되고 고도화되어서 이윤추구의 메커니즘이 은폐되고 있다는데, 돌고래 쇼장에서는 날것 그대로의 야만이 그대로 퍼덕거리고 있었다. 돈벌이와 경제성장을 위해 무수한 생명들이 피를 빨리며 죽어가는 모습이 돌고래 쇼장의 본질이었다. 이런 곳은 폐쇄시키기로 하고 행동에 돌입했다.
수족관 돌고래 해방의 성과는 의외로 빨리 나타났다. 대법원 판결로 몰수된 돌고래들과 서울대공원의 돌고래들이 고향인 제주 바다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이들은 모두 남방큰돌고래들이다. 2013년의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와 2015년의 태산이, 복순이 그리고 올해 귀향하는 금등이와 대포까지 포함하면 한국에서는 모두 일곱 마리의 ‘노비’ 돌고래들이 해방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 수족관 시설에 갇혀 있는 돌고래들이 38마리가 남아 있고 이들도 모두 바다로 돌려보내는 일을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다. 특히 제주 바다에서 잡혀온 돌고래들은 원래 잡혀온 곳으로 돌려보내면 되지만 문제는 해외에서 수입되어 공연과 전시에 이용되어온 돌고래들이다. 일본 다이지 인근 북태평양에서 잡혀온 큰돌고래와 러시아 북극해에서 잡혀온 흰고래 벨루가들은 고향 바다로 돌려보낼 수 없다. 이를 위해 핫핑크돌핀스에서는 돌고래 탈시설 프로젝트로 올해부터 ‘돌고래 바다쉼터’를 만들어가고 있다. 원서식지로 돌려보낼 수 없는 수족관 고래들 가운데 너무 늙어서 쇼를 할 수 없거나, 시설이 너무 낡았거나 폐사율이 지나치게 높은 곳 그리고 돌고래 쇼가 중단된 곳의 돌고래들은 좁은 수조가 아니라 자연과 비슷한 환경의 넓은 바다쉼터에 보내 남은 삶을 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미 1~2년 전부터 이탈리아, 영국, 캐나다, 미국 등지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21세기 노예제도’는 한국에서도 결국 완전히 폐지될 것이다. 이는 거부할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다.
돌고래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하다 보니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전함들이 해상군사훈련을 벌이는 바다 부근에서 죽어가는 고래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이었다. 한국 해역에서는 매년 수개월 동안 미군과 한국군이 합동 군사훈련이라는 무력시위를 벌인다. 최신예 핵잠수함과 이지스전투함과 온갖 첨담 무기들이 총출동하는데, 이런 것이 해양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한국에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 심심하면 동해와 제주 남방해역에서 군함들이 모여 해상훈련을 벌이는데 이곳은 남방큰돌고래를 비롯해 들쇠고래, 여러 종류의 부리고래, 밍크고래, 범고래, 참돌고래, 큰돌고래, 흑범고래 등의 서식처나 회유경로로 알려진 곳이다. 알려진 것처럼 해군이 사용하는 소나(음파탐지기)는 고래류가 먹이활동과 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초음파의 원리에서 기술을 발전한 것으로 원리가 같다. 이 때문에 1960년대 이후 해상 군사훈련이 벌어지는 곳에서는 항상 고래류의 집단 좌초(떼죽음)이 벌어지곤 했다. 과학자들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했고 결국 2000년 무렵 해군훈련과 고래들의 죽음 사이에 인과관계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전 세계 바다에서 해군력을 뽐내며 군사훈련을 벌이던 미 해군에게 비난이 집중되자 미군은 과학자들과 공동으로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한다. 이에 따르면 전함의 엔진 소음과 음파탐지기의 사용 그리고 수중 무기 등에서 발생하는 소음 등으로 매년 25만 마리 이상의 고래류가 청력을 상실하고 있으며, 앞으로 해군 훈련이 증가하면 백만 마리 이상의 고래류가 청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중해, 흑해, 태평양, 대서양 등 전 세계 바다에서 해군훈련과 고래 좌초가 함께 발생했는데, 특히 초강력 소나는 고래류의 청력을 손상시켜 집단 좌초에 이르게 하거나 대량 살상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고 미군이 솔직하게 인정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고래류 서식처 인근 바다에서는 해군훈련을 실시하지 않기로 흑해지중해고래류보존협정을 맺기도 했고, 미 해군 역시 수중음파탐지기 사용을 제한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한국은 어떨까? 돌고래를 죽음으로 내모는 해군 훈련을 중단하라고 핫핑크돌핀스가 외치고는 있지만 아직 시민사회의 공감을 얻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깟 돌고래보다는 안보가 훨씬 중요하지 않느냐는 점잖은 타이름과 비웃음이 귓가에 맴돈다. 미 해군만큼 철저한 조사는 하지 못하더라도 한국에서도 최소한 해군훈련과 고래류의 좌초 및 폐사 사이에 대한 관련성을 밝혀보려는 연구라도 시작되었으면 좋겠는데, 아직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학자를 만나보지 못했다. 고래들이 죽으면 부검을 하는데, 한국의 부검의들도 고래류의 청력 손상에 대해서는 아예 살펴보지 않는다. 즉 동해와 제주 해안에서 죽은 고래의 사체를 가져와 부검을 할 때 고래들의 청각기관은 검시가 되지 않아 사망원인으로 다뤄지지도 않고 있다. 만약 인근 해상의 전함들이 내뿜은 교란 음파 때문에 좌초되어 죽은 고래가 발견되었다면 아마도 사인은 불명으로 나오지 않을까. 그러니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누구도 해상군사훈련과 고래류의 죽음 사이에 관련이 있다는 것조차 관심을 갖지 않는다. 군사문제 대한 민간의 개입 자체가 불가능한 한국의 상황에서 고래의 죽음 가능성까지 거론하기에는 사실 너무 많은 과제들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다시 핫핑크돌핀스가 활동을 시작한 제주 강정마을로 문제를 좁혀볼 수 있다. 제주해군기지가 완공되었지만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다. 공사 과정에서 연산호 군락이 파괴되고, 콘크리트 구조물이 조류의 흐름을 뒤흔들어놓고 있으며, 인근 바다가 오염되어 해양생태계가 손상되었다는 것이 드러났는데, 이런 상황에서 전함이 더욱 자주 들락거리게 되면 문제는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다. 강정 앞바다를 자주 찾던 돌고래들은 이제 가까이 오지 않는다. 그 빈자리를 미국의 최신예 이지스 구축함 줌월트가 차지하려고 한다. 무시무시한 전투장비를 갖춘 괴물이 제주도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돌고래를 쫓아내고 군함이 득세하는 상황이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에 더 큰 무서움이 도사리고 있다. 동아시아 바다에서 이 상황은 공통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제주 돌고래 서식처나 잘 보전하면 되지 왜 해양환경단체가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하냐고 묻는 분들에게 지금 제주와 타이완 그리고 오키나와를 잇는 넓은 바다 일대를 둘러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곳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군사적 긴장감이 높은 곳이다. 얼마 전에는 한국-중국-일본 해역에 미국의 칼빈슨호, 조지워싱턴호, 니미츠호 등 항공모함들이 몰려들어 위력을 과시하였다. 중국도 새로운 항모를 건조하기 바쁘다. 바다가 각국이 벌이는 미사일과 전투기와 함정들로 인해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 바다에는 오래 전부터 멸종위기 해양생물이 살아오고 있다. 약 3~6마리 남아 있는 오키나와 듀공, 100마리 정도 남은 제주의 남방큰돌고래, 그리고 71마리로 파악된 타이완 인근 해역의 분홍돌고래가 그들이다. 군사기지와 난개발로 서식처가 파괴되고 개체수마저 급감하고 있는 대표적인 바다의 친구들이다. 이들이 보내는 다급한 구조 신호를 외면할 수 없어서 제주에서 핫핑크돌핀스가 활동을 시작했던 것처럼 오키나와 섬에서는 듀공을 지키기 위해 활동가들이 나서서 헤노코 미군기지 매립공사를 저지해왔다. 타이완 섬에서도 분홍돌고래의 외침을 귀담아 들어온 활동가들이 있다.
이들은 공통의 역사적, 사회적, 생태적 경험을 갖고 있다. 중앙집권화된 국가의 주변부에 위치해 복속되기도 하고 국가폭력에 많은 희생자를 낳기도 한 섬이지만, 섬들은 독자적 문화를 유지하며 독립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경계 바깥으로 밀려나기도 했던 섬들이 제국주의 질서에서 바다를 둘러싸고 벌이는 패권 다툼으로 다시 최전선에 놓이게 된다. 바다를 두고 연결된 섬들은 갈등보다는 교류에 익숙하다. 그곳에 군함을 보내는 것은 섬이 아니다. 그 바다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은 평화이고, 멸종위기 생명들이 상징적으로 이 위기를 드러낸다. 그래서 핫핑크돌핀스는 한국-일본-중국의 국가연대가 아니라 제주-오키나와-타이완을 잇는 섬들의 연대에 참여하고 있다.
섬들 사이에서는 매년 돌아가면서 평화캠프를 열고 동아시아 평화활동가들이 교류하며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틀에서 벗어나 군사적 갈등이라는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비무장 평화의 섬을 만들고 가장 군사화된 대립의 바다를 공생과 평화의 바다로 전환시키나가는 꿈을 꾼다. 배타적 경제수역과 항공식별구역과 관할구역과 공해상으로 나뉘고 중첩되기도 하는 저 드넓은 바다에는 사실상 경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래들은 이것을 몸으로 보여준다. 밍크고래와 귀신고래와 혹등고래들은 이 바다를 넘나들며 봄이 되면 북으로, 가을이 되면 남으로 회유한다. 그래서 동아시아에서 평화의 상징이 있다면 바로 이 멸종위기에 처한 해양동물들이 아닐까? 핫핑크돌핀스는 ‘무국경 바다의 친구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세 섬에서 해양포유류 보호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우리가 공유하는 것은 안타까움과 절박함 등이다. 우리들이 공통으로 확인한 사항은 각종 난개발과 해상공사를 막고 서식처를 보전할 필요성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남방큰돌고래를 위해서 핫핑크돌핀스는 제주의 남서쪽 모퉁이 대정읍 한 켠에 생태배움터인 돌고래도서관을 짓기 시작했다. 제주에서도 가장 개발이 덜 된 이곳까지 돌고래들은 밀려나고 말았지만, 마지막 서식처에 자리를 잡은 돌고래들은 잘 지내고 있다. 우연히 그물에 걸려 쇼장에 잡혀갔다가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춘삼이와 삼팔이도 이곳에 가면 새끼와 함께 유영하는 감동적인 모습을 우리는 연중 볼 수 있다. 야생방류된 돌고래가 무리와 온전히 어울려 새끼를 낳고 이렇게 성공적으로 다시 자연에 정착한 사례는 제주가 처음이다. 어떤 말로도 온전히 표현하기 힘든 이 자연의 환희를 핫핑크돌핀스는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볼품없는 모습으로 좁은 수조에 축 늘어진 채 무료하게 지내던 돌고래가 바다로 옮겨지는 순간 뿜어내던 야생의 에너지는 그 자체로 놀라운 생태교육이다. 야생의 본능은 쉽사리 억압되지 않는다. 돌고래를 가축화하려는 업자들의 시도는 얼마나 무기력한가.
바다를 헤엄치는 돌고래들을 보며 사람들은 무엇을 느낄까? 돌고래는 나에게 길들여지지 않은 채 넓은 바다를 자유롭게 떠도는 해방의 메타포다. 그래서 비록 내가 얽매여 있다 하더라도 돌고래만큼은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나도 어쩌면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들이 살아가는 곳이 지금 해군기지와 해상풍력발전공사 그리고 제2공항과 제주신항만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돌고래들의 수난은 나의 고통이다. 돌고래들이 돌아간 바다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쫓겨나지 않고 균형을 이뤄 공존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비로소 나도 좌절하지 않고 살아갈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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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