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올린 등반 후기 그대로 공유합니다. 심심풀이로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영도 선배랑 삼성산 숨은암장 다녀왔다. 영도 선배는 오른쪽 어깨 수술 이후 두 번째 등반이었고, 나는 왼쪽 발목 부상과 무릎 수술 이후 첫 등반이었다. 어깨 환자와 무릎 환자가 자일파트너라니, 생각할수록 웃기는 조합이다. 그나마 무릎 환자가 어깨 환자보다는 형편이 나았다. 퀵드로우 설치 작업까지 해야 하는 선등은 어느 쪽 어깨로든 일단 매달릴 수 있는 무릎 환자가 어깨 환자보다 유리했으니까. 덕분에 한 루트 빼고 나머지 모든 루트를 선등으로 올랐다.
너무 오랜만에 다시 하는 등반이어서 첫 퀵드로우에 로프를 걸 때까지는 제법 긴장됐다. 처음 붙었던 루트는 한 번에 완등하긴 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동작이 부드럽지 못하고 억지스러웠다. 몸이 조금씩 풀리면서 갈수록 나아지긴 했다. 다만 수술한 무릎을 굽혀서 체중을 싣는 동작은 아무래도 아직 무리였다. 그 동작이 나올 때마다 로프에 대롱대롱 매달리면서 휴식을 즐겼다. 영도 선배는 수술한 어깨에 최대한 부담이 가지 않는 동작으로 모든 루트의 크럭스를 노련하게 요령껏 돌파했다. 내 기억으로 영도 선배는 한 번도 텐을 받지 않았는데(로프에 매달리지 않았는데), 적어도 등반으로는 어깨 환자가 무릎 환자를 가뿐히 이긴 셈이다.
가장 원통했던 건 멀티피치 루트 <봄바람> 배불뚝이 크럭스 돌파할 때였다. 손가락 끝에 간신히 걸린 화강암 돌기 하나 믿고 오른쪽 무릎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해야 하는 동작인데, 그게 몇 번을 반복해도 안됐다. 안전하게 딛고 있던 왼쪽 발을 떨어뜨리면 그 동작이 가능한데 결국 배짱이 부족했다. 또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 할수록 오른쪽 고관절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영도 선배가 무리하지 말라면서 선등을 교체해줬다. 그런데 영도 선배는 나와는 전혀 다른 동작으로 그 구간을 간단하게 돌파했다. 후등으로 오르면서 영도 선배가 했던 동작을 그대로 따라했지만 나는 볼트에 손이 닿지 않았다. 영도 선배는 자기 팔은 길지 않다며 끝끝내 숏팔이를 두 번 죽였...
<봄바람>을 조지긴 했지만 사실 매 순간 행복했다. 등반을 다시 시작한 것도 행복했고, 난생 처음 만나는 루트를 선등으로 오를 때 두려움을 끌어안는 과정도 행복했다. 게다가 숨은암장은 나 같은 무릎 환자나 영도 선배 같은 어깨 환자의 재활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만큼 쉽고 만만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표기된 난이도에 비해 까다로웠는데 힘보다 밸런스를 요구하는 스타일의 암장이었다. 또 대부분의 루트가 바위의 생김새를 거스르지 않아서 등반이 자연스러웠고, 멀티피치 등반도 즐길 수 있는 작지만 속속들이 알찬 암장이었다.
메인 루트가 즐비했던 중앙벽은 먼저 온 팀이 로프를 여러 개 걸어 놓고 돌아가면서 톱로핑 등반을 반복하는 바람에 두 개밖에 못 붙어봐서 그건 좀 아쉬웠다. 뭐 암장이 이사 가는 것도 아니고 인공암장처럼 루트 세팅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니까 중앙벽 메인 루트는 언제든 다음 기회에 섭렵하기로 했다. 그동안 몸도 완전히 회복되고 등반 실력도 기적적으로 늘어서 나중에 먹으려고 아껴둔 초콜릿을 까먹는 기분이면 좋겠다.
첫댓글 형 너무 무리하시는거 아니죠?? ㅋ
수술한 무릎에 자극이 심한 동작은 칼같이 텐 받으며 살살 했어요ㅎㅎ
여기저기 다녀보자고.
너무 재미있었겠습니다~ 내일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