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점은 있다 / 채호기
고통을 파내기 위해 몸을 판다. 그러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도구가 문제다.
생각으로 파내던 몸을 삽으로 파낸다. 살점이 도려내지고 피가 흐르지만,
그래도 고통이 숨어 있는 부위를 제대로 찾아내지 못한다.
눈을 감으면 고통은 직선으로 온다.
직선은 차곡차곡 쌓이지 않고, 되는대로 엉클어져 더 아프고,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다.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 골똘히 생각하면, 고통은 덩어리째 떨어진다.
의식을 예리하게 갈아, 그 칼로 고통을 자디잘게 썰어낸다.
그렇게 통점을 찾다보면, 잠시 통증을 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내 고통은 다시 시작되고, 통점은 더 복잡한 머리나 마음에 있을지도 모른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한다.
우선 큰 그릇에다 머리나 마음을 부어놓고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옷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앞치마를 두르고 젓가락을 집어 든다.
식욕이 동하지 않는다면, 흰 가운으로 갈아입고 예리한 핀셋을 집어 든다.
그릇에 담긴 나의 뜨뜻한 내용물들,
그걸 마주하고 있는 머리 없는 나의 손과 마음 없는 나의 눈.
통점은 분명히 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한다.
수련 /채호기
안개 낀 새벽에 수련의 저 흰 빛은
수련이 아니다. 누가 공기의 흰 빛과
수련의 흰 빛을 구분할 수 있겠는가?
부풀어오르며 대기를 가득 채우는 수련,
공기처럼 형태도 없이 구석구석
끝도 없이 희게 빛나는 수련이여!
안개 낀 새벽에 공기는 수련처럼
희게 빛나다가 물처럼 푸른 두께로
출렁인다. 수련은 창틀 없는 유리처럼
푸른 깊이의 메아리. 물이 저 밑바닥의
내면으로부터 물풀을 흔드는 물고기
헤엄치는 혀로 푸드덕 말을 할 때
솟아오르는 커다란 공기 구릉―수면을 깨뜨리는
흰 포말 흰 파편은 수련,
물-말이 깨어져 날카롭게 빛나는 흰 수련!
수련 주위의 보이지 않는 저 공기는
수련의 생각들이다.
우리가 글자를 읽어나갈 때
우리 주위에서 태어나는 생각의 파동들처럼.
영원히 만나지 않을 듯
물과 빛은 서로 섞이지 않는데,
푸른 물 위에 수련은 섬광처럼 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