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숙영의 회복적 생활교육 이야기 64
문제해결 서클
우리는 진정한 자아로 살아가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 연습이 필요하다.
-케이 프라니스
걸려 온 전화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교사에게 함부로 행동하고 학급 친구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중학교 남학생 3명과 교사들, 학부모와 함께 서클을 열고 싶다는 것이다. 그 학생들은 선생님들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을 뿐 아니라, 교사 지시 거부, 일상적 욕설, 소란으로 인한 잦은 수업 중단 문제가 있다고 했다. 어떤 때는 교사가 울면서 교실을 나오기도 한다고 한다. 그 친구들은 학교에서 제일 다루기 어려운 학생들이라고 한다. 학년 부장선생님은 아이들을 힘으로 다루기보다 대화하려는 시도를 하셨다. 학생들의 잘못한 행동을 체크리스트로 관리하고 있었고, 일정 수준 체크가 누적되면 부모와 함께 참여하는 서클을 열도록 했다. 이번 서클은 지적 사항이 누적되어 열리는 서클로 아이들에게는 서클이 처벌의 방식으로 다가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잘못한 행동을 다루는 서클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자신의 취약성으로 인한 수치심과 존엄침해에 대한 두려움으로 강한 자기 방어적 태도로 임할 것이다. 서클은 안전한 공간에서 솔직하게 말하고 마음으로 듣는 대화과정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이곳이 안전한 공간이라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그러한 신뢰를 이끌어 올 수 있을까? 이를 위한 서클을 기획하기 위해 목적부터 명료화해야 했다. 나는 서클의 목적을 ‘학생이 학교에 더욱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공동체의 소속감과 일체감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세웠다.
서클 기획하기
케이 프라니스는 잘못한 행동에 대한 회복적 훈육을 위한 4단계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서클의 균형잡기]
케이 프라니스에 의하면, 서클의 대화 과정에서 네 개의 영역이 조화롭게 움직여야 하고, 이를 위해 문제를 다루고 대안을 찾는데 시간을 사용하는 만큼 서로를 알아가고 관계를 쌓기 위해서도 동등한 시간을 쏟아야 한다. 관계 쌓기가 없이는 문제해결 서클의 성공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진다고 강조한다.
[문제해결을 위한 서클 과정]
1단계 : 만나서 서로 알아가기
질문) 자기소개를 하고, 오늘 서클에서 나에게 중요한 가치 또는 오늘 서클에서 기대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이야기 해주시겠어요?
2단계 : 관계 쌓기
질문) 내가 아는 ○○○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3단계 : 문제다루기 / 피해탐구하기
질문) 무슨 일이 있었나요? (사실 확인)
질문) 이 일로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피해 탐구)
4단계 : 대안 찾기
질문)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변화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서클 진행하기
공간열기 : 안녕하세요. 저는 서클 진행자 박숙영입니다. 날씨도 덥고 분주한 하루를 보내셨을 텐데, 대화모임을 위해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서클을 열게 된 것은 우리 학생들이 학교에서 더욱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된 공동체임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부탁드릴 것은 이 시간에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과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텐데, 허심탄회한 대화를 위해 마음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표현해주시고, 상대방의 말은 판단을 보류하고 마음으로 들어 주십시오. 여기에서 나누었던 모든 사적 이야기는 존중하고 보호하기 위해 비밀로 해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입니다.
1단계 : 자기소개를 해주시고, 이 시간에 나에게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 바닥에 깔려있는 가치 카드를 참고해서 이야기해주세요. (종이카드에 기록하고 돌아가면서 말하기, 말하기를 마친 뒤에는 서클 중심에 종이카드를 내려놓기)
: 유대, 연결, 신뢰, 소통, 이해, 평화, 감사와 인정, 시간낭비(여유와 자유), 배려와 감사, 자기존중, 정직
2단계 : 내가 아는 ○○○의 강점은 무엇인가요?(실전에서는 생략하였음. 생략한 것을 나중엔 후회하였다.)
3단계-1 : 어떤 일이 있었나요? 오늘 왜 여기에 모이게 되었는지 부장선생님이 말씀해주시고, 또 학생들 중에서는 우리 A학생이 이야기 해주세요.
부장선생님 : 수업시간 소란과 잦은 욕설이 있었습니다. 우리학교는 잘못된 행동이 있을 때마다 체크리스트를 하게 됩니다. 어느 정도 수준이 넘으면 해당 학생들은 부모님과 교사와 모두 모여 서클을 진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 학생들은 현재 체크리스트에 ○○개 이상 체크되었고, 그래서 오늘 규정대로 부모님을 모시고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A학생 : 사실 왜 모였는지 몰라요. 선생님들은 한 번이라도 체크리스트가 몇 개가 되었는지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 이상이 되었다고 하셨는데, 그것을 알았다면 행동을 다르게 할 수도 있었을 거에요.
3단계-2 : 이 일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어렵고 힘들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주세요.
교사입장 : 수업 중 소란스러움, 침묵과 집중을 요청했음에도 달라지지 않음, 수업진행의 어려움으로 중단하는 일까지 발생해서 교사로서 힘들고 다른 학생들에게도 미안함. 교사에게 한 말이 아니라고 하지만, 욕설로 마음을 다쳤고 점심시간에 식당에 가지 않은지 몇 주되었음, 학생들 앞에서 교사의 지도에 응하지 않는 행동으로 인해 교사로서 무력감과 전체학생들 지도에도 어려움이 발생함.
학생입장 : 체크리스트가 어느 정도 되었는지 물었지만 너희들이 알 것 없다고 해서 문제를 명확하게 알지 못함. 애들 앞에서 지적당하는 일로 다른 아이들로부터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갖게 되었음. 다른 애들도 떠들었는데 나만 지적하여 억울하고 속상함. 집에서도 형과 나를 차별하여 힘듦.
부모입장 : 집에서도 형과 차별한다고 하며 잘 따르지 않아서 힘듦. 학교생활에 대해 잘 몰랐는데 당황스럽고 놀람. 중학생이 되어 갑자기 행동과 말투가 변하여 놀랍고 지도하기가 어려움.
3단계-3 : 나의 행동과 말 뒤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무엇을 알아주길 바라나요?
학생입장 : 선입견, 편견, 부정적 시선들이 힘들다. 늘 지적만 받는데, 긍정적인 부분에 대한 관심, 따뜻한 시선과 말투를 원한다. 존중받고 싶다. 차별받지 않고 동등하게 대우받고 싶다.
교사입장 : 교사도 상처받는 인간이라는 것을 이해, 교사로서 인정받고 존중받는 것, 문제가 있으면 소통하고 대화로 풀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 수업을 잘 진행하기를 원한다. 자기잘못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사과.
부모입장 : 마음으로 사랑하고 너를 이해하고 싶다는 것,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기 모여서 함께 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4단계 : 피해를 회복하고 서로를 존중하기 위해 무엇을 약속할 수 있나요? 어떤 약속이 필요한가요?
1. 실수와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하기
2. 변하려고 노력하지만 쉽게 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해해주고 기다려주기
3. 세 번까지 부탁조로 말하고, 네 번째는 멈추기. (예 : ○○야, 자리에 앉아줘.)
마무리
힘든 3시간을 보냈다. 교사들은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고, 아이들을 존중하려는 태도를 놓치 않으려 했다. 처음 시작할 때와 달리 아이들의 말투는 신중해졌고, 이렇게 까지 선생님들이 힘들었는지 몰랐다고 했다. 시간이 길어지자 인내심을 잃고 너무 길어진다고 궁시렁거리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부모들이 당황하기도 했다. 시간을 단축하려고 2단계 질문을 생략했던 것은 아쉬움으로 크게 남는다. 2단계 질문은 아이들의 자기방어적 태도를 자기개방적 태도로 전환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케이 프라니스의 조언을 다시금 떠올리며 2단계 질문에 주목하게 되었다. 교사들은, 한 시도 가만히 앉아 있기 힘들어 했던 아이들이 오랜 시간 앉아서 듣고 말하기를 한 것은 이례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대화하는 과정에 기대했던 큰 전환점은 보이지 않는 듯했다. 이틀 후에 아이들이 궁금해서 담당교사와 전화를 했다. 아이들은 행동을 조심하려는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교사들끼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연대하는 마음이 더욱 생겼다고 했다. 그 당시엔 마음이 너무 아팠는데, 뭔가 문제가 명료해지는 것 같고, 이 서클을 지속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무엇을 느꼈고 경험했는지 좀 더 관찰이 필요하리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은 변화를 위한 시간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사가 지쳐가고 있다. 지금 우리의 희망은 동료교사간의 연대이다. 교사의 연대 힘이 아이들을 지켜낼 수 있고, 동료교사를 지켜낼 수 있다. 학교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