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적 학교를 위한 과제와 지름길
박숙영(좋은교사운동 회복적생활교육센터 센터장)
1. 시작점
: 회복적 시스템구축의 출발은 교사들의 합의와 동의부터.
한국에서 회복적 학교의 첫 출발은 2012년 경기도 뎍양중학교라고 할 수 있다. 이어 2013년엔 인천 신흥중학교가 체계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두 학교가 시스템 구축을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은 교사동의과정이었다. 이후 학생과 학부모 동의와 합의까지 이르렀을 때 비로소 회복적 학교의 첫 발을 뗄 수 있었다. 교사그룹이 동의했다고 하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면 변화에 대한 교사들의 태도와 속도에 따라 ‘혁신자-조기 수용자-전기 다수자-후기 다수자-지각 수용자’로 나뉜다. ‘당신이 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는 않을게. 그렇다고 나에게는 하라고는 하지마.’의 부류도 있다. 이처럼 교사동의가 모두의 실천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런 이유로 시스템구축 초기엔 혁신자와 조기 수용자 중심으로 실천해 나갈 수밖에 없으며, 점차적으로 교사의 참여확대를 위한 꾸준한 가치공유와 성과 나눔, 교사의 배움과 돌봄 과정을 이어가야 한다. 교사동의과정은 매년 새롭게 동의여부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2. 회복적 실천의 확장과정
: 갈등해소를 위한 회복적 서클에서, ‘회복적 학교’, ‘교육의 회복’으로 확장
한국에서 회복적 생활교육은 학교폭력의 대안으로 갈등프로세스인 ‘회복적 서클(대화모임)’ 이 중심이 되었다. 그러다 점차 예방차원인, 존중의 문화와 민주적 의사결정 중심의 ‘회복적 학교‧학급운영’, ‘관계중심의 배움(수업서클)’으로 확장해 왔다. 이 과정에서 중심이 된 것이 ‘서클 프로세스’다. 서클은 솔직하게 말하고 공감으로 듣도록 구조화된 소통방식이다. 서클은 둥글게 둘러앉아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거나 공동체놀이와 회의를 진행함으로써 조직운영의 혁신을 불러왔다. 수업을 서클방식으로 하는 도전도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관계중심의 수업' ‧ '참여자가 함께 만들어 가는 수업' ‧ '질문 중심의 수업' 등 많은 수업과 교육의 혁신을 불러오고 있다. 이처럼 회복적 생활교육은 회복적 학교뿐 아니라, ‘교육의 회복’으로 논의가 확장되고 있다.
3. 현실 이해
: 옛 것도 작동하지 않고 새 것도 작동하지 않는다.
회복적 실천가는 옛 시대와 새 시대인 두 개의 세계에 살아가게 된다. 학교문화는 여전히 권위적이고 경직되어 있는데, 교사와 학생들 대부분은 과거의 문화와 구조를 거부한다. 반면에 힘을 동등하게 나누는 집단지성과 같은 새로운 역량과 문화엔 익숙하지 않다. 권리와 자유를 요구하지만, 상호존중과 자발적 책임에는 서투르다. 학생은 미숙하고 통제가 필요한 존재라는 관점에서 이미 충분한 자원을 지닌 존재로 힘부여와 자발성을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관점전환이 우려스럽고 두려워 변화에 저항한다. 답이 정해진 객관식 시험과 암기식 수업을 요구받는 학교 시스템은 여전한 가운데, 열린 질문과 대화를 기반으로 하는 회복적 교육은 어렵기만 하다. 회복적 생활교육의 시도는 당분간 쉽지 않고 잘 작동되지 않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우리에겐 연습이 필요하다.
4. 과제
1) 외적 시스템 구축
: 전학교차원의 통합적 접근
새로운 가치와 내용을 잘 담아내기 위해서 그에 맞는 외형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전통적 훈육에 기반 한 현 학교문화‧시스템과 충돌하기 때문에 회복적 가치를 실현하는데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앞서 신흥중 사례에서 제시해준 것과 같이, 회복적 학교는 전학교적 차원의 접근이 핵심이다. 소수의 교사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전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동의와 협력이 중요하다.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가치를 공유하는 과정과 교육공동체 대상으로 한 학습의 기회가 필요하다. 또한 갈등이나 폭력이 발생하면 언제든 회복적 대화모임을 요청하고 진행할 수 있는 기구와 공간, 진행자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교육과정 전반에 SEL(사회적정서적학습)에 기초하여 공감적 의사소통과 갈등관리역량 강화를 위한 배움, 공동체 소속감을 높이는 활동, 집단지성 회의의 정기적 개최 등과 같은 활동들이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구조화해야 한다.
2) 내적 시스템 구축
회복적 실천의 어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외현적인 시스템이 구축되었다고 해서 저절로 회복적 학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회복적 실천이 성과를 나타날 때는 주목받지만, 변화가 바로 나타나지 않거나 결과가 미비해보이면 주변에서 우려와 거부, 냉소가 쏟아진다. “회복에 ‘회’자도 듣기 싫다.”라는가, “아이들이 이기주의로 변했다.”, “아이들 버릇만 더 나빠졌다.” 등과 같은 비난과 원망을 듣는다. 그나마 학교차원에서 고민하는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는 희망이 있다. 안타깝지만 대부분의 회복적 생활교육은 학교지원 없이 교사 개인적으로 회복적 방법을 배워서 실천하고 있다. 개인적 차원의 실천은 극복해야 할 더 많은 장벽들이 존재한다. 회복적 가치에 대한 확신이나 신뢰가 부족하기도 하고, 방법적인 면에서 체득이 안 되어 어렵기도 하고 도움을 요청하거나 고민을 나누고 싶어도 주위에 함께 할 사람이 없다. 가장 힘든 일은 실천과정에 찾아오는 회의와 무기력, 자책감과 싸워야 하는 내면의 문제들이다.
외부 세계는 내적 세계의 투사다. 교사를 비롯한 학교 구성원들의 내적 시스템이 회복적 시스템을 해체할 수도, 개혁할 수도 있다. 회복적 학교를 위한 외현적인 시스템 구축 못지않게 구성원들과 회복적 실천가로서의 내적 시스템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적 시스템 구축을 위해 실천가들은 1) 지속적인 훈련과 깨어 있는 의식, 2) 성공과 실패를 나눌 수 있는 지지공동체, 3)지지 공동체가 없어도 당당히 걸어 갈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키워야 한다.
우리의 내적 신념과 내적으로 작동하는 사고방식과 인식, 체득된 행동구조들이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이 세상에 투사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고, 그 선택으로 학교의 성장을 도울 수 있다. 회복적 실천을 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회복적 시스템이다.
5. 지름길
: 벌새 떼의 물 한 방울 연대
그러나 교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일은, 한 가지 실천과 한 사람을 구하는 일뿐이다. 그런데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과 문제는 교육전반의 문제이며 동시에 사회‧문화‧정치적 문제와 얽혀있다.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노력을 너머서 연대가 필요하다. 영웅일지라도 한 사람의 힘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 역사적으로 사회 변혁을 이끌어 온 힘은 영웅의 뒤에 가려진 수많은 사람들의 연대다.
북아메리카에서 전해져 오는 벌새 이야기가 있다. 동물들이 사는 숲속에 불이 났는데 모든 동물들이 도망가고 있지만 새 중에 가장 작은 벌새만이 호수에서 물 한 방울씩 가져와 떨어뜨렸다. 도망가던 동물들이 소용없는 짓을 한다고 비난했지만, 벌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야’라고 말한다.
교사는 벌새다. 벌새처럼 할 수 있는 최선은 물 한 방울일 뿐이다. 모든 교사들이 벌새가 되어 물 한 방울씩 떨어뜨렸을 때에 비로소 교육에 난 불을 끌 수 있다. ‘벌새 떼의 물 한 방울의 연대’가 우리가 원하는 회복적 학교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