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의 <아이다> 하면 우선 화려한 <개선 행진곡>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사실 <아이다>는 베르디의 후기 작품으로 비록 익숙한 보수적 전통 위에서 작곡되었지만,
전곡을 감상하는 일이 그렇게 만만한 오페라는 아닙니다.
흔히 무대를 통해 구현되는 압도적인 시각적 장대함을 내세워
코끼리, 낙타가 몇 마리 등장한다는 문구로 홍보되는 일도 있었지만,
결코 그게 <아이다>의 전부가 될 수는 없을 겁니다.
이 오페라에는 무엇보다 죽음을 불사하는 가슴 찡한 러브 스토리가 담겨있으며(물론 식상하긴 하지만),
그런 드라마의 감성을 드러내는 음악이 시리도록 아름답게 펼쳐집니다.
오페라를 즐겁게 감상하는 방법은 단순한 스토리에서 무엇을 얻어내려 하기보다는
그런 스토리를 펼쳐내는 방식인 음악과 연출, 연기를 세심하게 느끼는 것이겠죠.
우선 유명한 <개선 행진곡>부터 감상해 보시겠습니다.
2006년 라 스칼라 실황 영상인데요.
프랑코 제피렐리의 무대 연출은 휘황찬란하며 감탄스러울 정도입니다.
로베르토 볼레의 조각 몸매를 감상할 수 있는 발레 장면 또한 눈이 즐겁습니다.
오페라의 '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영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아이다> 영상은 DVD로도 출시가 되었으며, 제피렐리의 연출도 화제를 불러모았지만
무엇보다 주인공 라다메스 장군을 맡은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의 스캔들로 유명해졌죠.
라 스칼라의 청중들은 가수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거침없이 야유를 보낼 정도로 악명이 높습니다.
알라냐가 1막의 유명한 아리아 'Celeste Aida(청아한 아이다)'를 부르고 난 직후,
라 스칼라의 몇몇 관중들이 가볍게 야유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 순간 알라냐가 분을 참지 못하고 바로 무대를 떠나버렸다고 합니다.
대타 가수가 갑작스럽게 청바지 차림으로 무대 위에 오르게 되었고,
모두가 당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죠.
이 영상은 바로 그 사건 며칠 전의 공연을 담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상물을 감상해 보면, 알라냐가 결코 노래를 못 부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최고 수준으로 기억될 만큼 인상적이지도 않습니다.
단지 세계 최고의 공연들에 라 스칼라의 청중들이 너무 익숙해져 있는 상태이고,
알라냐의 음성 자체가 라다메스 장군의 강인함에 어울리는 근육질 소리가 아닌 것이죠.
어쨌든 그는 어울리지 않는 배역을 맡음으로써 굴욕을 당하게 된 것이죠.
신비한 선율이 인상적인 무희들의 합창을 들어보시겠습니다.
무대 연출은 고대 이집트의 신비함과 화려함을 시각적으로 극대화시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공연에서 솔로 성악가들에게 약간의 아쉬움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리카르도 샤이의 관현악 만큼은 명확하고 다이내믹해서 아주 맘에 듭니다.
그래서 한번쯤 이 영상물로 감상회를 실시해도 좋을듯 합니다.
위 영상에 등장한 알라냐의 노래를 들어보신 분은
바로 아래 영상의 파바로티의 노래를 통해서 비교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알라냐의 목소리가 부드럽고 나긋나긋하다면, 파바로티는 단단하며 각이 잡혀 있습니다.
같이 듀오를 선사하고 있는 소프라노 마리아 키아라 역시 아이다 역으로 아주 유명한 가수인데,
1985년 공연이다 보니 영상과 사운드의 퀄리티가 떨어지고,
무대 연출 역시 최신 공연들만큼 보는 재미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지만
이런 낡은 영상물들의 음악적인 가치는 결코 간과할 수 없습니다.
각자 다른 조국을 가진 두 남녀 주인공의 사랑과 갈등이 잘 표현되어 있는
'Pur ti riveggo, mia dolce Aida(나의 사랑스런 아이다)'입니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영상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세기의 여배우 소피아 로렌이 아이다 역을 맡은 오페라 영화입니다.
노래는 마리아 칼라스의 라이벌로 유명했던 레나타 테발디가 불렀습니다.
칼라스가 절대적 디바로 추앙받고 있는 요즘 '라이벌'이라는 표현 자체가 어울리지 않지만,
당대에 두 명의 위대한 소프라노를 둘러싸고 일어난 팬들의 대립은 대단했다고 합니다.
원래부터 라 스칼라의 디바로 군림하고 있던 테발디의 대타로 무대에 서서
일약 스타가 되어버린 칼라스에 가려져 버리긴 했지만.
테발디는 정말 타고난 미성을 지닌 소프라노임에 분명합니다.
특히 이 오페라의 피날레 '무덤 씬'에서 보여지는 그녀의 그윽한 음성은
찬연히 빛나며 듣는 이들을 숙연하게 만들기까지 합니다.
돌무덤에 갇혀 부둥켜안은채 죽음을 맞으며 노래하는
두 젊은 남녀의 애절한 사랑은 무척 감동적입니다.
첫댓글 하아~ 저는 어릴때부터 고대 이집트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이 오페라 <아이다>를 꼭 한번 보고싶었는데
아직까지는 제대로 본 적이 없네요. 영상을 보니 무대의상이나 무대연출 모두 엄청나네요. 제작비가 엄청날 거 같다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