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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사회적경제 토크콘서트 3회] 서울, 집을 구하기 전에 물어야 할 질문들
집을 사람에게 맞추는 법
모든 생명체는 한 몸 누일 집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집은 일차적으로 보호의 기능을 지니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집은 그것에 문화적 욕구를 더해 쉼터가 되고 생산적 공간이 된다. 집은 생존이 있는 물리적 공간이면서 문화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상의 방 한 칸을 갖는 것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지금-여기의 집은 본디 기능보다 재테크 수단이 됐다. 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지붕을 두는 일은 마땅한 권리임에도 집은 ‘사는 곳’이라기보다 ‘사는 것’으로 전락했다.
집은 사람이 짓는다. 집에는 사람이 산다. 집보다 사람이 먼저다. 집을 짓기 전에 사람을 알아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집 짓는 기술이나 방법을 선택하기 전에 살기의 방식을 먼저 물어야 한다. ‘어떻게 짓기’보다 ‘어떻게 사는가’를 먼저 묻는 것이 집(건축)이어야 한다.
지난 8월 20일, 그런 생각을 품고 기업 활동을 하고 있는 사회적경제 기업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마련됐다. 사회적경제 토크콘서트 세 번째 시간, <집을 구하기 전에 물어야 할 질문들: 집은 사는 것인가, 사는 곳인가?>라는 주제로 기노채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이하 하우징쿱) 이사장, 백영학 아키테리어금빛가람(이하 금빛가람) 대표가 시민들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기노채 이사장은 소비자 참여 없이 공급자 위주로 생각하는 대부분의 주택(아파트)와 달리 협동조합주택은 먼저 사람이 모이고, 목표와 목적에 따라 건축을 생각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건축의 지형과 삶의 지형은 결국 같은 것이다. 어떻게 사는가를 묻는 것.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건축의 문제이자 삶의 문제다. 사람은 건물을 만들지만, 건물은 다시 사람을 만든다. 집도 그렇다.
협동조합형 공유주택에 대하여
31년째 건축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기노채 건축기술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하우징쿱은 주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협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만든 주택소비자협동조합이다. 하우징쿱은 ▲개인과 가족의 행복을 담는 주택 ▲이웃과 함께하는 커뮤니티 중심 주택 ▲부담가능한 경제적인 주택 ▲지속가능한 환경친화적인 주택을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다. 기 이사장은 이날 ‘협동조협형 공유주택의 개념과 추진사례’에 대해 말했다.
이를 위해 그가 가장 먼저 꺼낸 것은 주택산업을 둘러싼 환경 변화. 그 변화의 핵심에는 인구구조가 있다. 지금 한국은 저출산으로 인구성장률이 낮아지고 평균수명의 증가와 급속한 노령화가 진행되는 한편 단독가구가 증가하고 있다. 또 경제성장률 저하 등의 경제 환경과 주택의 소규모화와 고효율화 등을 불러온 과학기술도 주택 환경 변화의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됐다. 아울러 대체에너지 관련 기술의 혁신과 국제적인 환경 관련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점도 언급됐다.
“인구가 감소한다는 건 주택에 대한 수요가 줄고 주택시장은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가구 수를 보면 인구수와 달리 계속 증가한다. 소형주택이 부족한 이유다. 인구노령화도 급속하게 진행돼서 2050년 65세 이상의 인구 비중이 38%에 달할 것이다. 10명 중 4명이 노인이라는 얘기인데, 사회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소비자 중심의 주택 필요
이런 주택 환경 변화에 맞춰 하우징쿱은 주택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이전까지 공급자 중심의 주택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소비자 중심의 주택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왜 소비자 중심의 주택이 필요한 것일까.
기노채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 이사장
“유지 및 보수비가 적은 주택이 건축비가 저렴한 주택보다 경제적이다. 물론 저렴한 주택도 필요하다. 그러나 보다 더 좋은 주택은 유지·보수비가 적은 주택이다. 건축물 내용연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20년이다. 그러나 미국 103년, 영국 141년, 프랑스 86년, 일본 30년 등 다른 나라는 우리나라보다 길다. 한 예를 들어보자. 평창동의 한 고급아파트 분양가가 15억원인데, 아파트 외관은 굉장히 화려하다. 그러나 단열성능이 미흡하고 지붕누수와 임기응변적 보수로 품질이 최악이다. 안에는 전부 할로겐램프를 써서 전기낭비도 심각하다. 부적절한 재료를 쓰기도 했다.”
기 이사장은 주택협동조합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자기가 원하는 집을 짓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반 건설회사와 달리 조합원으로 가입한 사람들의 필요와 욕구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주요한 특징이다. 즉, 일반 건설회사가 지은 아파트 등에 몸과 마음을 구겨넣는 것이 아니다. 내 몸과 마음이 원하는 바를 담는다.
이런 주택협동조합은 19세기 중반에 유럽에서 시작됐다. 소비자협동조합 등장 이후 개인 주도의 주택협동조합이 등장했던 것. 특히 20세기 초반, 도시화의 급속한 진전과 세계대전으로 주택의 양적 부족이 심화되면서 저소득층이 적정한 주거비로 집을 가질 수 있는 수단으로 주택협동조합이 각광받았다.
“한국의 경우는 좀 다르다. 2013년 주택보급률(총 주택수를 총 가구수로 나눈 백분율)이 100%를 넘었다(2013년 기준 주택보급률은 103%로 주택수는 1897만개, 가구수는 1841만개로 집계됐다). 양적으로만 그렇다. 주택보급률만큼 우리의 주거가 충분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구미의 주택협동조합과 사회임대주택 현황을 보면 상당히 주거가 안정돼 있다. 유럽 전체로 보면 협동조합이 5%, 사회주택이 9%로 총 14%가 안정적으로 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공동 공간과 시설을 갖추고 소통하는 집
기 이사장은 이어 ‘공유주택’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공유주택은 비혈연적인 관계의 개인이나 가구들이 일상적으로 함께 사용하는 공동의 공간과 시설을 갖추고 거주자간 소통이 원활하도록 만든 유형의 주택을 뜻한다. ‘코하우징’이라고 표현하고 셰어하우스와는 구분되나, 한국에서는 지금 그것을 섞어서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유주택은 일반 주택과 달리 공동체 만들기, 옥외공간, 거주자들에 의한 입주자 관리, 비계층적 구조(공동체의 민주적 의사결정), 독립적인 소득원 등을 특징으로 갖는다. 공유주택과 협동조합주택의 차이에 대해 기 이사장은 전자는 민간이 주로 주도하나 후자는 공공이 주로 주도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우징쿱에 대해서는 ‘협동조합형 공유주택’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개인과 가족의 행복을 담는 주택, 이웃과 함께하는 커뮤니티 중심주택, 부담 가능한 경제적인 주택, 지속가능한 친환경주택, 네 가지 원칙을 갖고 주택을 공급한다. 현재는 단기적으로 직접 땅을 사지는 않고 있다. 현재 6건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1건은 완공, 2건은 착공 중, 3건은 심사 중이다. 총 사업비는 200억 원 가량이다. 우리는 돈을 갖고 사업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와 생각을 모아 사업을 하고 있다.”
그는 이어 주택협동조합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전했다. 하나는 협동조합 형태를 만들어 조합원이 주택을 공급받는 형태다. 다른 하나는 협동조합을 설립해서 조합이 주택을 소유하고 조합원이 이를 융자받는 형태다. 하우징쿱의 제1호 협동조합주택인 ‘구름정원사람들’은 전자의 경우다. 구름정원사람들은 모여 살기 전부터 오십 여 차례나 모여 공간을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함께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따로 또 함께 살기의 방식을 정하고 만들었다.
“구름정원사람들은 은퇴한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다. 북한산 기슭의 낡은 주택을 8가구가 공동으로 사서 지었다. 좋은 점은 취득세를 한 번만 낸다. 하우징쿱은 프로젝트매니지먼트를 했는데, 총 사업비는 26억 8천만 원으로 가구당 3억3천만 원 가량을 냈다. 규모에 비해 저렴한 편으로 각 가구당 면적은 26평 정도다. 조합원들이 디자인에 함께 참여해 개성 있는 공유공간 등을 만들었다. 하나도 같은 집이 없다. 본인들이 디자인에 다 참여했기에 그렇다. 공간을 그리고 취합하는 과정에 하우징쿱이 함께했다. 겉은 화려하지 않지만 단열은 굉장히 좋다. 평당 가격은 400만 원 정도로 다른 빌라와 비슷하다.”
하우징쿱이 두 번째로 만들고 있는 제주 오시리가름주택협동조합은 조합이 땅을 사서 조합원들이 이용하는 형태를 취했다. 한적한 마을의 중심에서 마을과 함께 호흡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이 기 이사장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콘셉트다. 역시 집이 화려하지 않으나 이웃과 함께하는 커뮤니티하우스, 작은 도서관 등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지역 청년을 위한 셰어하우스도 함께 만들어지고 있다.
기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해외 사례를 설명했다. 노인들이 공유주택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의 사진은 쓸쓸히 사는 독거노인과 비교했을 때 훨씬 행복해 보인다. 실제로 해외에서도 굉장히 반응이 좋다고 한다. 기 이사장은 이런 것을 확산하기 위해 공유주택에 관심 있는 사람, 단체 등과 함께 공유주택협의회협동조합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집에 대해 묻고 답하다
- 설계사무소를 운영한다. 하우징쿱은 평당 400만원에 은평의 주택협동조합을 만들었다고 했다. 비용에 비해 집의 질이 높은 것 같은데 순공사비 개념인지, 아니면 그 정도로도 가능한가?
기노채 : 구름정원은 설계비가 약 6천만 원인데,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우징쿱의 올해 목표 중에는 설계비의 기준을 만들고자 한다. 하우징쿱에서는 40대의 의욕적인 건축사를 발굴해서 이를 추진하고자 한다. 우리는 정확하진 않으나 평당 420~430만원 실공사비를 책정하고 있는데 400만원대는 동네에서 빌라 등을 짓는 비용과 비슷하다. 협동조합주택은 분양주택이 아니다보니 소비자를 유혹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우리는 실크벽지를 쓰지 않는다. 시중에서 쓰는 실크벽지는 진짜 실크도 아니고 화학지다. 종이벽지와 실크벽지의 가격 차이가 2배인데, 우리는 거기서 아낀 것을 단열재 비용으로 쓴다. 누군가 손해 보는 구조는 좋지 않다고 본다. 나는 손해보고 장사는 할 수 없다(웃음). 직원들에게도 월급을 많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음을 받지 않고 돈을 줘야할 때도 현찰 거래를 한다.
-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대학생이다. 협동조합이 주택을 소유하는 형태가 있고 주택을 지은 후 나누는 형태가 있다고 했다. 한국 상황에서 두 가지 유형 가운데 어떤 방식이 적합할까?
기노채 : 두 가지 유형 가운데, 좋다 나쁘다보다 장단점이 있다. 요약하자면 조합이 소유하는 형태는 지속가능성이 높아진다. 조합(공동체)이 추구하는 이념을 담을 수 있는 사람만 조합원으로 주택에 살 수 있다. 집에서 빠져나갈 때도 조합 소유여서 개인이 마음대로 팔수가 없다. 또 조합 단위로 사업을 하고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개인이 자기 돈으로 참여해도 재산권 행사를 못한다. 담보도 안 된다. 조합 것이어서 그렇다. 공동체성으로 뭉친 조직에서는 좋은데 그게 아닌 상태에서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주택과 근린생활시설이 같이 있을 경우, 과밀억제권역인 수도권에서는 토지를 사서 건물을 지으면 취득세가 중과된다. 그럼에도 하우징쿱은 3호 협동조합주택을 서대문에서 착공했는데, 취득세 중과를 각오하고 한 경우다. 조합이 소유해서 임대사업을 한 경우에는 취득세가 면제된다.
- 얼마 전 원룸, 고시원 등의 준주택을 일반주택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간다고 들었는데, 기노채 이사장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다.
기노채 : 우리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고 본다. 준주택을 할 것이 아니어서 그렇다. 주거 유형에도 여러 형태가 있다. 일반 건설회사는 팔기 위해서, 소비자 참여 없이 공급자 위주로 생각한다. 우리는 먼저 사람이 모이는 구조다. 은퇴 세대, 혼합 세대, 청년 세대 등이 모여살 수 있는 주택실험을 하고 있다. 먼저 어떤 목표물(타깃)과 목적을 주택에 부여한 뒤 사고를 한다.
글. 김이준수(노동자협동조합 적정기업 ep coop 대표노동자)
사진. 이우기(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