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언어와 논리적 언어의 차이에 의해서 생기는 갈등은 심각하다. 특히 우리나라 언어는 정서적 언어와 논리적 언어가 확실히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외국어의 경우 정서적 언어와 논리적 언어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들었다.
예를 들어보자. 암 같은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의사에게 자신이 수술을 하면 나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 의사가 전문가들끼리 쓰는 논리적 언어로 대답을 한다면 “살 수 있는 확률은 30%정도 됩니다.”라고 한다면 오해를 할 수 있다. “내가 죽을 병에 걸렸는데 의사가 부정적인 말을 함부로 했다.”고 하며 서운해 할 것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논리적인 말을 했고, 환자는 의사의 말을 정서적인 말로 들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운전면허를 취득하려고 학원에서 연습을 하는 학생이 자신을 가르치는 강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제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잘 하고 있나요?" 이 경우 강사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논리적인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제가 보기에는 하위 30% 정도 되는 것 같네요.“ 이 말을 정서적인 말로 받아들였을 경우 학생은 화가 나게 된다. 화가 나서 사무실에 가서 사무원들에게 ”나를 가르치는 강사가 내가 실력이 없다고 구박했다. 어떻게 그렇게 말 할 수 있냐?“라고 항의할 것이다. 그러면 영문을 모르는 사무실에서는 강사를 불러 '어떤 말을 했기에 수강생이 화가 났느냐'고 물을 것이다. 강사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하여 해명을 해야 하는데, 사실 딱히 해명을 할 것도 없다. 강사는 논리적인 언어로 말했을 뿐이고, 수강생이 감정적으로 들었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차이점을 아는 사람들은 말을 잘 사용한다. 의사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정서적인 말로 대답할 것이고, 강사는 “지금 잘 하고 계십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시면 되겠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본적인 언어는 정서적인 언어이다. 반면에 우리가 한자를 받아들이고 나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언어는 한자로 통해서 표현하게 되었다. 한자를 쓰지 못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한자를 한글로 바꾸어서 소통하게 되면 논리적인 언어가 정서적인 언어로 오해 되어 소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게 된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한자를 배우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시기부터 한자를 배우는 시간이 없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자를 한글로 바꾸어서 쓰면서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서적인 언어로 둔갑하여 사용되고 있다. 논리적인 언어가 정서적으로 해석될 때는 너무나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공무원들은 공무를 행할 때나 민원인들을 대할 때 대부분 정서적인 언어를 자제하고 논리적인 언어를 사용할 것을 강요당한다. 민원인들이 공무원들을 싫어하는 것은 그들이 논리적인 언어로 말하기 때문에 인간미가 없고 딱딱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무원들이 구태의연하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서 인간미를 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논리적으로 안 되는 것도 정서적으로는 되는 것 거처럼 인식을 하기 때문이다.
군청에 가서 “이거 됩니까?”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공무원이 논리적인 언어로 설명하고 “그래서 안 됩니다.”라고 딱잘라 말하면 서운해 한다. 차라리 정서적인 언어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 안 되네요. 죄송해서 어쩌지요?”라고 하면 갈등은 조금 수그러들 수 있을 것이다.
부부사이에도 논리적인 언어와 정서적인 언어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심각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아내는 어떤 일로 몹시 힘든데 남편은 논리적인 말로만 대답한다면 정서적인 대답을 듣기 원했던 아내는 몹시 서운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