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것을 알리려 할 때에 보여 줄 수 없다면 들려줄 수 밖에 없다. 내가 누군가로 통해 무엇을 알게 되었을 때도 그가 나에게 보여 줄 수 없어서 들려 줄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는 영상 장비가 거의 전무했다. 카메라는 인류 역사 상 비교적 최근에 발명된 것이다. 녹음기도 없었다. 오로지 눈으로 뭔가 본 사람들이 알려준 말에 의하여 그 본 것에 대하여 알게 되는 것이다.
모세 역시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 다만 들었을 뿐이다. 하나님의 모습을 본 사람은 없다. 다만 그 말씀을 들었을 뿐이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부분의 것들은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들려 주는 것이다. 보여 줄 수 없는 것을 들려 줄 수 밖에 없는 것이 교회이다.
본 것을 말하는 사람과 비교하여 본 것을 말한 사람의 말을 듣고 그 들은 것을 말로 들려주는 사람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본 것을 말하는 사람은 좀 더 실감나게 들려 줄 수 있지만, 들은 것을 다시 들려 주는 사람은 덜 실감이 나게 마련이다. 들은 것을 다시 들려 주는 사람은 자신이 마치 본 것 처럼 말할 수 있는 재능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통해서 가장 먼저 진짜 본 사람이 본 것과는 거리가 있는 정보가 형성되어 전달되는 것이다.
2천년 전 예수님 시대에 카메라와 녹음기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이전에 모세 시대에 카메라와 녹음기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때의 이야기를 상상할 필요도 없이 녹화된 영상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 때의 일에 대하여 기록된 것을 읽을 수 밖에 없다. 문자로 기록된 것을 읽고 해석한다는 것은 많은 오해를 낳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자신이 본 것에 대하여 말로 전해 줄 때 그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뭔가 보여 준다면 양상이 달라진다. 우리가 예수님은 볼수 없지만 말하는 사람이 예수님처럼 기적을 보여 주거나 초인간적인 것을 보여 준다면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의 말에 큰 관심을 가질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에 사람들은 예수님이 일으키는 기적을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른 것이다.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키시지 않고 말씀만 전하셨을 때 사람들은 "이 분이 전하시는 말씀은 어렵다."라고 말하며 예수님을 떠났던 것이다. 보여 주지 못하고 자기가 들은 것을 들려주기만 하는 사람은 인기가 없다. 오늘 날 보여 주지 못하는 대다수의 목회자들은 인기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