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10장 전체
일곱 나팔이 불려진다. 땅, 바다, 강, 하늘이 망가지고, 사람들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고통이 이어지고, 사람들의 1/3이 죽고 나머지 2/3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상황이 이어진다.
그러나 요한이 본 그 고통의 시간 속에서 성도들은 보호를 받는다.
(계 9:4)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다섯 째 나팔부터는 인간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하는 데, 땅에서 나온 황충이 사람들을 괴롭힌다. 괴로움을 당할 때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헤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요한계시록에는 이와 같은 구절들이 많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세상 사람들과 함께 망하지 않게 하신다.
(계 7:3)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원숭이와 곰이 연관 있다고 묶을 것인가? 아니면 원숭이와 바나나가 연관 있다고 묶을 것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열이면 열 다 원숭이와 바나나를 묶는다. 그러나 다른 나라 사람들은 당연히 원숭이와 곰을 묶는다. 왜냐하면 원숭이도 동물, 곰도 동물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왜 원숭이와 바나나를 묶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의 학자들이 우리나라 학자들에게 어떻게 원숭이와 바나나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는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자들은 말한다. "모르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원숭이와 바나나는 모종의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는 관계의 문화이다.
관계의 문화는 일본의 전체주의와는 틀리다. 우리나라는 나라가 망해도 별로 실망하지 않는다. 아직 부모와 형제 자매가 있는데 무슨 실망이냐는 것이다. 일본사람들은 나라가 망하면 모든 것이 망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전체를 위해서 일부가 희생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가미가제 자폭 비행기가 그 예이다. 전체를 위해서 일부가 희생되어도 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전체 주의와 우리의 관계 주의는 다르다. 우리나라, 우리 하나님, 우리 아내, 우리 자식, 우리학교,....... 외국 사람들은 이 말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관계의 문화이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도 이 세상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운명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이 세상 사람들과 항상 분리하신다. 하나님의 '우리'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과 들어가는 사람들이 분리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 사람들과 벌이시는 전쟁과 심판의 마지막 나팔이 불려지기 직전에 천사가 등장한다.
(계 10:1) 내가 또 보니 힘 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그 천사는 찬란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이 천사의 말이 신뢰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 10:2) 그 손에는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그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
손에 작은 두루마리가 들려 있다. 작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고 반드시 이루어진다. 불교에는 팔만 대장경이 있고 코란도 많은 분량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상대적으로 작은 책에 불과해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고 반드시 이루어진다.
오른 발은 바다를, 왼 발은 땅을 밟고 있다는 것은 그 말씀이 땅과 바다에 사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바다에 사는 사람들은 어부들과 섬나라 사람들이다. 그 책의 예언은 사람들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 10:3)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
(계 10:4) 일곱 우레가 말을 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천사의 전하는 말이 요한이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는 큰 음성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말을 기록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들에게 전해져도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함으로 해로울 수 있기 때문에 기록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손에 들고 있지만, 그 의미를 다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은 그래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과분한 내용은 기록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계 10:5) 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계 10:6)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또는 시간이 다시 없으리니
지체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말은 다른 성경에도 나오는 말이다.
(히 10: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사람들은 예수님이 곧 오시겠다고 하시고 승천하셨는데 왜 아직 안 오시냐고 묻는다. 벌써 2천년이 흘렀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체하고 계신 것인가? 그러나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벧후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틀리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체하신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지체 없이 오신다. 우리에게 아직 시간이 있다는 것은 기다림의 고통이 따르지만 기회가 남아 있다는 것이 된다.
(계 10: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계 10: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하기로
(계 10: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계 10: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계 10:11)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땅과 바다를 밟고 있는 천사의 손에 들려 있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계획이 적힌 책을 먹게 된다. 먹을 때는 달고 소화시키기 위하여 뱃속에 들어가면 쓰고 뱃속에서 소화가 되고 나면 그 내용을 사람들에게 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 순서를 다시 정리하자.
1. 입으로 먹는다는 것은 배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선지자들은 배울 때는 행복하다.
2. 그러나 그 내용을 자신과 사람들의 삶에 실현시키려고 할 때 결코 달지만은 않고 고통이 따르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성화가 진행된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되고 완전히 소화 시키게 되었을 때 그 말씀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할 의무가 생긴다.
이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 겪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