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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2: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요한 계시록에는 두 여자가 나온다. 한 여자는 마귀를 나타내는 음녀이고, 한 여자는 교회를 나타내는 해를 옷 입은 여자이다.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전쟁은 칼과 창의 전쟁이 아니라 진리와 거짓의 싸움이다.
요셉은 꿈을 꾸었다.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을 하는 꿈을 꾸었다.
(창 37: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해를 옷 입은 여자의 모습이 이스라엘의 시초인 야곱의 가족의 모습을 그대로 닮고 있다. 그래서 이 여자는 이스라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말은 혈통적인 의미가 아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이고, 이스라엘 사람이란 혈통, 인종, 혈통, 민족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막 3: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막 3: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막 3: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막 3: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막 3: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바울은 이스라엘은 혈통과는 상관없는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 즉 이스라엘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갈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예수님으로 인하여 새로운 ‘우리’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특별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유산으로 증여받아 하나님의 나라에서 왕처럼 살게 된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의 핏 값으로 사신 사람들의 무리인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을 무시하고 욕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관계 문화는 전 세계에서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문화라고 한다. 우리는 모든 말 앞에 우리를 붙인다. 우리나라, 우리 하나님, 우리 집사람, 우리 남편, 우리 회사, 우리 학원, 우리 아들, 우리 땅, 우리학교,.......
외국 사람들은 ‘우리 아내’라는 말을 외국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마누라도 공유하느냐고 묻는다. Our wife?
우리민족은 좁은 땅에서 오래 동안 살아왔다.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일기 예보를 들을 때 놀라는 일이 있다고 한다. “오늘은 전국에 비가 오겠습니다.” 외국 사람들은 한 번도 일기 예보 때 그런 말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국에 전국에 비가 오면 노아 홍수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좁은 땅에서 오래 동안 같이 살면서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자며, 같은 시기에 학교에 입학하고 같은 시기에 결혼한다. 결혼 적령기라는 말을 외국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결혼도 같은 시기에 하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 시기를 넘어가면 노처녀, 노총각이라는 말을 듣는다. 결혼 적령기에 결혼을 안하면 만나는 사람들마다 "왜 아직 결혼을 안하냐? 결혼할 사람은 있냐?"라고 계속 묻는다. 외국 사람들은 우리에게 결혼도 해야 하는 시기가 있느냐고 놀라워한다.
우리는 '우리'라는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여러 우리를 만들고 살아간다. 집에 가면 우리 가족이 있고, 회사에 가면 우리 회사가 있고, 학교에 가면 우리 학교가 있고, 학원에 가면 우리 학원이 있고, 외국에 가면 우리 나라가 있다.
자신이 속한 우리를 누군가 공격하면 반드시 복수한다. 누군가 우리 어머니를 욕하면 가만히 있는 것이 불효이다. 어떤 사람과 친해지고 싶으면 그 사람이 속한 '우리'에 대하여 험담을 해서는 안되고, 그 사람이 자신이 속한 우리에 대하여 험담하면 맞장구를 쳐서도 안 된다.
부모를 대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부모 앞에서 부모의 형제나 친척을 욕하면 안 된다. 그것은 곧 부모를 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부모와 친해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가 자녀와 친해지기 위해서 자녀가 입는 옷들을 입고 자녀가 부르는 가수의 노래를 배워 부르는 것이 효과가 있는가? 자녀들은 아빠가 자기들이 부르는 유행가를 부르는 것을 들으면 다시는 그 노래를 안 부르고, 아빠가 자기가 입는 옷과 똑 같은 옷을 입으며 다시는 그 옷을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부모가 자녀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자녀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친구들, 자녀들의 관계하고 있는 그 ‘우리’를 존중해야 된다.
자녀가 부모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부모가 관계를 맺고 있는 친척, 친지, 이웃을 존중해야 한다.
어제 멀리 사는 삼촌의 딸의 결혼식에 부모님이 갔다. 사모님이 같이 다녀왔다. 나는 사정상 같이 가지 못했다. 부모님은 형제지간이기 때문에 관계가 있어서 갔다 오셨지만, 사모님은 며느리이고 그분들과 그리 관계가 깊지 않은데 왜 같이 갔다 왔을까? 그것은 부모님의 관계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만약 자식이 부모에게 가서 부모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험담하면 부모는 자식이 돌아 간 후 기분이 매우 나빠 있을 것이다. 손자들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효도하는 방법은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할아버지의 친척들의 행사에 기꺼이 가주는 것이다. 그것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존중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한국의 문화이고 관계의 문화이다.
친구가 자기 또 다른 친구에 대하여 뒤 담화를 하면 같이 맞장구를 치면 안 된다. 뒤 담화는 파국을 낳는다. 그 사람과 연관된 사람을 욕하는 것은 그 사람을 욕하는 것과 같다.
어떤 분이 나에게 와서 자신의 교회 목사님이나 사모님을 욕하면 나는 ‘그런 목사님이 있느냐, 그런 사모님이 있느냐?’하고 맞장구를 쳐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이 자신의 교회의 목사님과 사모님을 헐뜯어도 결국 그 사람은 그 교회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말에 맞장구를 치면 그 사람 편을 드는 것 같지만 결국은 그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되는 것이고 그 사람과 멀어지게 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특별한 우리를 만드셨다. 그 우리 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하나이다.
(계 12: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해를 옷 입은 여자는 이스라엘이고,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내로 자주 표현된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협력해서 낳은 아기가 예수 그리스도이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진리의 핵심이고, 항상 하나님 앞에 계신 어린 양이다.
(계 12: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용은 가상의 동물이다. 12는 하나님의 숫자이고 10이나 7은 마귀의 숫자로 쓰일 때가 많다.
(계 12:4)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삼분의 일은 어떤 일의 진행을 의미하는 것이다. 계속 진행되어 결국에는 와장창 무너진다는 의미가 된다. 용은 마귀이다. 마귀는 옛 뱀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사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마귀와 사탄은 같은 말이다. 사탄은 히브리어고 그것이 헬라어로 번역 될 때 마귀가 된다. 사탄은 한 명이다. 그러나 그를 추종하는 타락한 존재들을 ‘그의 사자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귀신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계 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계 12: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철장이란 쇠막대기를 의미한다. 쇠막대기를 가진 예수님이 잘못 만들어진 도자기들을 쳐서 부수어 버리는 것처럼 마귀와 마귀에게 속한 자들을 심판하여 처벌한다.
(계 12: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1260일, 혹은 42달, 혹은 한 때 두 때 반 때(3년 반)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기간은 고난의 시기를 의미한다.
그런 심판과 환난의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세상 사람들에게서 떨어뜨려 피난시키신다. 피난시키신 곳은 광야이다. 광야는 고난의 땅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유명하지도 않고 항상 고통에 시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우리를 망하는 세상 사람들에게서 피신시키시려는 작전이다.
죽임을 당한 어린양,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왜 진리인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린양은 우리와 하나님의 사이에 항상 있는 것이다. 마귀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참소하는 일이다. 참소라는 것은 죄가 없는데도 자꾸 죄가 있다고 말하며 소송을 거는 것이다.
(계 12: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마귀가 이스라엘 사람을 참소할 때 그 참소를 이길 방법은 이스라엘 사람의 죄를 위해 죽임을 당하셨던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계 12: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계 12: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하늘에 거하는 자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고 땅에 거하는 사람들은 마귀에게 속한 사람들이다.
거짓이 홍수같이 밀려오는 때에도 하나님은 교회를 보호하신다.
(계 12: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계 12: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계 12: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뱀이 토해내는 물은 거짓말을 의미한다. 거짓은 진리를 삼키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회를 보호하기 위하여 땅이 입을 벌려 강처럼 몰려오는 거짓을 삼키게 하신다.
(계 12: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계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마귀는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다. 바다 모래란 마귀의 영역에 속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 숫자는 바다의 모래처럼 많다. 그 많은 사람들이 교회와 싸우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맺음)
전쟁은 거짓과 진리의 싸움이다. 하나님께 속한 '우리'와 마귀에게 속한 '우리'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보호 하시고 인도하신다. 우리 또한 이 싸움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우리는 영적으로는 진리에 굳게 서서 거짓과 싸우는 전사들이다.
(계 12: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