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어린 양은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이고, 우리가 간직한 진리이다. 어린 양에 대한 진리로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있다. 시온 산은 옛날부터 예루살렘에 있는 작은 산이었지만, 그 산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산이다. 십사만 사천이라는 숫자는 계시록 처음 부분에 등장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이다. 진정한 이스라엘은 육적인 혈통의 사람들이 아니라 인종과 민족을 초월한 하나님이 선택한 모든 사람들이다. 마귀의 사람들은 마귀의 숫자인 666을 몸에 새겼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이름을 몸에 새긴다.
(계 14: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더라
거문고는 우리 나라 악기이다. 번역이 될 때 거문고로 번역이 된 것이고, 오늘날의 하프를 닮은 악기이다. 삼각형의 뼈대에 10줄 정도의 줄을 달고 퉁기는 악기이고, 명료하고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성도들의 말소리는 많은 물 소리와 같이 명료하고, 번개 소리처럼 용맹하게 들렸다는 것이다. 또한 무질서하게 떠들어대는 소리가 아니라 질서 있게 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거문고를 타는 것 같은 소리는 음악적인 질서가 있는 소리이다. 진리는 항상 질서 있고 논리성 있는 말로 표현된다.
(계 14:3)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새 노래는 히브리어로 '하다쉬'라는 말이다. 헬라어로 번역 될 때는 '카이노스'이다. 그 의미는 새로운, 주목할 만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새 노래는 하나님이 어떤 변화 있는 일을 하실 때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하나님이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을 때 우리는 그것에 해당하는 새 노래를 불러 하나님을 찬양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성도들은 다시 그것에 해당하는 새 노래를 불러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새 노래는 새로운 내용과 새로운 주제로 부르는 노래이다. 구약 시대에 부르던 노래와 신약 시대에 부르는 노래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심판 때에 성도가 부르는 노래는 지금과는 다른 노래가 될 것이다.
새 노래를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은 성도들뿐이라고 말한다. ‘배우다’라는 말은 원어로 만다나오이다. 그 의미는 깊이 경험하여 깨닫거나 알게 된 것을 뜻한다. 우리가 부르는 찬양은 소리만 낸다고 해서 하나님께 상달되는 찬양이 될 수 없다. 우리의 삶에서 경험하고 배우 것들이 찬양이 된다. 하나님을 섬김으로서 경험한 우리의 삶이 진정한 찬양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찬양을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새벽기도회 때마다 어떤 찬송가를 부를지 고민한다. 신앙인으로서의 삶이 잘못될수록 찬양 고르기가 쉽지 않게 된다.
누군가 나에게 천부여 으지 없어서 라는 찬송가곡의 음을 흥얼거리면서 이게 혹시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가이냐고 물어본다. 그러나 그런 음을 흥얼거린다고 해서 그것이 그 사람에게 찬송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주 앞에 옵니다.’라는 곡은 애국가로 사용되어졌던 곡이다. 그런데 원래는 이것이 ‘작별’이라는 스코틀랜드의 가곡이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애국가의 곡으로 사용되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으로 불려졌다. 그러다가 애국가는 다른 곡을 사용하고, 이 곡은 지금 ‘천부여 의지없어서...’라는 찬송가의 곡으로 사용되고 있다.
새벽마다 곡을 선정할 때 회개할 마음이 있으면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라는 곡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감히 어떤 곡을 선택하지 못하는 때도 있다.
333장 충성하라 죽도록... 이런 찬양은 감히 선곡하지 못한다. 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387장 멀리 멀리 갔더니 라는 곡은 언제든지 편안한 마음으로 선곡해서 부를 수 있다.
찬양은 이와 같이 음이 아니라 의미이고 내용이다.
(계 14:4)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계 14: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계시록이나 성경 곳곳에 나오는 이 여자의 의미는 남자, 여자라는 성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계시록 17장에 음녀가 나온다. 음녀는 곧 마귀이다. 마귀는 거짓말하는 존재이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진리이다. 그러나 마귀는 먹어도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거짓이다. 이 세상의 싸움은 진리와 거짓의 싸움이다. 여기 등장하는 여자는 거짓, 거짓말을 의미하는 것이다. 거짓과 싸우는 자들은 진리를 지키는 순결한 자들과 진리의 예수님을 좇는 사람들과 어린 양으로 통해서 죄를 용서 받은 사람들과 마귀처럼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어서 세 천사가 날아가면서 말을 한다.
1. 첫 째 천사의 심판 시작의 예고
(계 14: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계 14:7)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2. 둘 째 천사의 심판 진행의 표현
(계 14: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바벨론이란 마귀가 다스리고 마귀의 사람들이 사는 곳을 의미한다. 바벨론은 어떤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와 그에게 속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말이다.
3. 세 빼 천사의 심판의 결과의 표현
(계 14: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계 14: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계 14: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마귀와 그의 사람들이 심판을 받는 내용 뒤에 성도들을 안심시키는 내용이 있다.
(계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장례식 때 사용되는 성구이다.
(계 14: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예리한 낫을 가졌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칼을 갈고 있었다는 것이다. 준비하고 또 준비한 일이 실행된다는 뜻이 있다.
(계 14: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계 14: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첫 번째 수확은 성도들을 거두시는 것이다. 두 번째 수확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거두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도들은 알곡처럼 천국에 모으시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고난에 몰아 넣으신다.
(계 14: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계 14: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계 14: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포도주 틀에서 붉은 포도가 짓 밟혀서 나오는 모습이 마치 피가 흐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심판의 상징으로 쓰여진 것이다.
(계 14: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말굴레란 말의 머리에 씌우는 굴레이다. 말머리가 잠기는 높이까지 피가 흐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스다디온은 스타디움과 같은 말이다. 스타디움은 192미터이다. 1600스타디움은 미터로 환산하면 약 300km이고, 그 길이는 이스라엘의 북쪽 끝인 단에서부터 남쪽 끝인 브엘세바까지의 거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욜 3:13)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