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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0: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계 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계 20:3)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이 요한 계시록의 심판의 뼈대이다. 이 순서대로 이 세상의 멸망은 점차적으로 강화된다. 일곱 대접이 마지막 심판 내용이다.
대접에 대한 부연 설명이 17장에서 20장까지의 내용은 일곱 대접의 부연설명이다.
(계 17: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즉 17장부터 나오는 내용은 일곱 대접과 연관이 있다는 뜻이다.
17장에서는 음녀가 심판 받고 18장에서는 바벨론이 멸망하고, 19장에서는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이 잡히고, 마지막 20장에서는 사단이 최후를 맞는다.
20장에서는 용, 옛 뱀, 마귀, 사탄이라고 표현되는 존재가 잡혀서 쇠사슬에 묶여서 결코 탈출할 수 없는 감옥에 들어간다. 무저갱이란 바닥이 없는 지하 허공이라는 뜻이다. 갱도는 지하에 있고 끝이 없는 내려가는 갱도라는 뜻이다. 옛 뱀은 옛날 아담과 하와를 유혹해서 타락시켰던 그 뱀이다.
천년동안 이라는 표현은 시간상의 천년이 아니다. 20장에는 유난히 천년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4절, 5절, 6절, 7절에 천년이라는 말이 계속 나온다. 천년이라는 말은 완전하고 충분한 시간을 의미한다. 도망가지 못하게 완전히 가두어 놓는다는 것이다.
조선이 고려를 무너뜨릴 때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은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회유하고자 시를 써서 보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년까지 누리리라”
그러나 정몽주는 자신의 마음을 시로 써서 이방원에게 보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여기서 이방원이 백년을 말한 것이 숫자로서의 백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백년은 하나의 상징적인 숫자이다. 정몽주가 말한 일백 번 역시 숫자로서의 일백 번이 아니다. 일백 번은 상징적인 숫자이다. 이와 같이 천년이라는 말은 숫자로서의 천이 아니다. 또한 666이라는 숫자와 144000같은 숫자들도 상징적인 숫자들이다.
최근 조사한 바로는 우리나라 여러 지역의 말 중에 충청도 지역의 말이 가장 빠르다고 한다.
사례 1
표준어 : 돌아 가셨습니다.
경상도 : 죽었다 아임니꺼.
전라도 : 죽어버렸어라.
충청도 : 갔슈.
사례 2
표준어 :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경상도 : 내 좀 보이소.
전라도 : 아따 잠깐만 보더라고
충청도 : 좀 봐유.
사례 3
표준어 : 정말 시원합니다.
경상도 : 억수로 시원합니더.
전라도 : 겁나게 시원해버려라.
충청도 : 엄청 션해유.
사례 4
표준어 : 어서 오십시오.
경상도 : 퍼뜩 오이소.
전라도 : 허벌나게 와버리랑께.
충청도 : 어여 와유.
사례 5
표준어 : 괜찮습니다.
경상도 : 아니라예.
전라도 : 되써라.
충청도 : 됐슈.
아무리 그래도 충청도 말이 가장 빠르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사람도 다음 문장을 보면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례6
표준어 : 이 콩깍지가 깐 콩깍지인가, 안 깐 콩깍지인가?
충청도 : 깐 겨, 안깐 겨?
그래도 인정할 수 없다고? 그렇다면 진짜 결정타를 날릴 수 밖에...
사례7
표준어 : 당신은
개고기를 먹습니까?
충청도 : 개 혀?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말을 배우려고 하지만 각 지역의 사투리를 듣고 기절한다. 한국말의 그 다양성을 어떻게 다 감당할 수 있겠는가.
요한 계시록이라는 책은 구약 성경의 언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뭔가 이야기하고 있다. 성경 사투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른다. 글은 짧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로 가득하다. 요한 계시록이라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사투리로 쓴 글을 현대 표준어로 이해하려고 하다가 신천지 같은 이단이 되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은 요한이 보여준 계시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 준 계시이다. 그렇다면 일상적인 언어로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언어로 읽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문자는 사람의 문자이지만 그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시간을 보면 천년은 하루이고 하루는 천년이라고 말했다.
(벧후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천년을 가두어 놓았다가 천년 후에 반드시 다시 일시적으로 풀린다는 뜻은 무엇일까? 가두어 놓는 천년은 하늘의 재판을 받기 전에 잠시 유치해 놓는 유치장에서의 기간이라고 봐야 한다. 우리의 법 역시 죄인은 유치장에 잠시 가두어 놓았다가 정식 재판을 통해서 처벌이 된다.
마귀를 재판하는 자들이 앉은 보좌들이 있다. 그들은 성도들이다. 왕은 심판하는 권세를 가지고 보좌에 앉아 있다. 하늘의 재판정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재판정에 앉아 있다. 단독 재판이라는 것이 있고 합의 재판이라는 것이 있다. 법원에 가면 단독부라는 것이 있는데 사건이 별로 크지 않은 재판을 벌일 때 한 명의 판사가 의자에 앉아 있다. 그러나 큰 사건일 때는 세 명의 판사가 앉아서 서로 협의 해서 판결을 내린다. 예를 들어 2억원 이하의 사기는 판사 한 명이 판결을 하고, 2억원 이상의 큰 사기는 세 명의 판사가 협의해서 판결을 한다. 하나님은 마귀의 재판을 성도들과 함께 진행하게 하신다.
(계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마귀가 유치장에 가는 순간은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축하와 즐거움의 시간이다. 마치 그 시간이 잔치의 시간과 같다.
(계 20: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계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첫째 부활이라고 함은 성도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머지 죽은 자들의 부활이란 성도 이외의 사람들의 부활을 의미한다.
(계 20:7)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계 20: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사탄이 그 옥에서 놓였다는 것은 심판정에서 죄가 드러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증거가 있어야 처벌이 되는 것이다. 그 증거로 마귀는 자신의 본색을 드러낸다. 사람도 안변하지만 마귀가 하나님의 재판정 앞에 섰다고 해서 본성이 변하겠는가? 재판정에 서자마자 본색을 드러내어 난동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재판에도 피고인이 말할 기회를 준다. "변명해 보라." 그러면 피고인은 눈물을 흘리며 "뉘우치고 있으니 선처를 부탁합니다."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피고인은 신세를 한탄하며 난동을 부리기도 한다. 뼈속까지 나쁜 나쁜 사람은 재판정에서도 죄를 뉘우치지 않고 난동을 부리는 사람이다. 마귀는 하나님의 재판정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다.
곡과 마곡이란 에스겔서 38장에 나오는 내용을 들여다 봐야 한다. 마곡은 나라의 이름이고 곡은 마곡의 왕의 이름이다. 마곡이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을 의미하느냐는 별로 의미가 없다. 어떤 사람은 마곡이 모스크바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감이 비슷하다고 해서 섣불리 어떤 나라라고 해석하면 안 된다. 다만 에스겔서에 나오는 마곡은 하나님의 나라를 곡격하는 마귀의 나라라고 해석하면 된다.
(겔 38:14) 인자야 너는 또 예언하여 곡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 이스라엘이 평안히 거주하는 날에 네가 어찌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겔 38:15) 네가 네 고국 땅 북쪽 끝에서 많은 백성 곧 다 말을 탄 큰 무리와 능한 군대와 함께 오되
(겔 38:16) 구름이 땅을 덮음 같이 내 백성 이스라엘을 치러 오리라 곡아 끝 날에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내 땅을 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말미암아 이방 사람의 눈 앞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그들이 다 나를 알게 하려 함이라
마귀의 행위가 이러하니 하나님의 처벌이 합당한 것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마귀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행위를 드러내었을 때 하나님의 판결을 내리신다.
(계 20:9)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계 20: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처벌 받는 자는 마귀와 짐승, 거짓 선지자(어린양의 두 뿔을 가지고 사람들을 유혹한 종교들)와 그들을 추종하는 모든 존재들이다.
(계 20: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예수님의 재림, 하나님의 나라의 임재란 무엇인가? 이 세상과 하늘의 세계가 있다. 하늘의 세상이 이 세상에 내려와서 이 세상의 세계가 사라지는 것이 예수님의 재림이자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 임재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 내려오면 이 세상 나라들은 사라진다. 권력자가 바뀌면 세상이 바뀌는 것이다. 마귀가 권력을 잡고 있는 세상이었으나, 하나님이 권력자가 되신다.
(계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현 세계는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받는다.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계 20: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계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계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심판 날에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눈다.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과 행위대로 심판받는 책에 기록된 사람들이다. 행위를 따라 심판 받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오직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만 전원 구원을 받는다.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은 마귀가 잡혔을 때 이미 부활한다. 이것이 첫 째 부활이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은 마귀가 재판정에서 죄가 확정되어 처벌을 받은 후 곧 이어서 행위대로 처벌 받는다.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죄 씻음을 받은 사람들이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행 4: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