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죽음이 분합니다.
信天함석헌
내가 장준하의 추도사를 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죽으면 장준하가 나에 대한 추도사를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는 장준하를 위해 추도사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추도사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사람이 나는 것, 죽는 것은 하나님의 주장에 의하는 것이니까 슬픔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에 대해 분한 마음은 있습니다. 그렇게 가서는 안 되는 것인데 가버렸으니 분합니다. 이렇게 분한 마음이 있다는 것은 나라에 있어서는 큰 불행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분한 마음이 있는 사람이 없나, 짓눌려서 가슴에 가득 찬 분한 마음이 없나, 잘 살펴서 그 분함을 풀어줘야 합니다. 만약 그것을 풀어주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거나 더욱 짓눌러서 분함이 더해간다면 이것은 큰 불행입니다. 그 분함은 언젠가는 꼭 터져서 큰 화를 일으킵니다. 사람은 피가 잘 돌아가야 건강합니다. 한 사회도 이와 마찬가지로 생각이 자유롭게 돌아가야 건강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어느 한 곳이 막혀서 응혈(凝血)되면 고장이 생기고 맙니다.
그럼 왜 장준하의 죽음이 분한가? 사람이 나서 이 세상을 살다 죽는 것은 나무가 자라서 열매를 맺고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자연의 섭리입니다. 생명은 더 많은 생명을 낳기를 원하며 또한 더 많은 열매를 맺기를 원합니다. 진리는 더 많은 진리를 낳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서러울 것도, 분할 것도 없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분이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뚜렷하게 가야만 되는데, 그렇지 못해서 분합니다.
장준하는 우리 민족을 위해 아주 잘 울어주신 분인데, 이 민족을 위해 더 많이 울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갔으니 분합니다.
그의 생애는 온통 울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일제 때 학도병에 끌려갔다가 거기서 탈출을 하고 그 뒤로 만주로 중국벌판으로 다니면서 이 민족을 위해 잘 울어주었습니다. 그는 우리 마음을 대신해서 잘 울어주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 겨레를 위해 더 울어줘야 할 그가 가버렸으니 분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제사를 지내고, 그 영전에 모여서 그 동안의 일들을 고하는 그런 의무가 있는데 지금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잘 할 수 없으니 분합니다.
이 시대의 흐름을 보고 그래야만 민족이, 이 나라가 살수 있다고 보고 그 운동을 했습니다. 그러다 그는 그 일로해서 감옥에 갔습니다. 그의 마음은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병이 났습니다. 그래 그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보려고 산을 다녔는데, 그러다 변을 당했습니다. 그가 하려던 일, 그가 원했던 일, 자기 몸까지 던지면서 나라를 사랑하던 일, 그 일들이 어찌 되어 가는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그의 영전에 고해야 되는데 그것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분합니다.
이제 장준하는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힘 있게 살아나야 합니다. 환하게 꽃 피우는 것은 자연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우리는 장준하의 뜻을 환하게 꽃피게 해서 그를 다시 힘있게 살려야 합니다.
씨알의 소리 1977. 8 66호
저작집; 10- 257
전집; 5- 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