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없이 식어버린 수사의지>
나는 천신만고 끝에 우리나라 벤처기업이 감히 넘보기에는 쉽지 않은 ‘비정형데이터’ 관리용 핵심 원천기술을 확보했지만, 몰상식이 판치는 대한민국에서의 사업은 당분간 접기로 했다, 우선 일본을 시작으로 해외 사업에만 전념하기로 마음먹고 삼성을 상대로 포문을 열게 되었다.
2004년 7월 18일 <아이뉴스24>와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에서 소프트웨어 사업하지 않겠다, 회사의 존폐를 걸고 끝까지 갈 것이다. 어차피 이런 상황에서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면 안하는 게 낫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당시 재벌대기업들의 횡포가 극에 달하는 시기여서 그런지 <아이뉴스24> 서버는 다운 직전이었다고 했다. 그해 최고의 조회 클릭 수를 기록하였으니,
2004년 8월 23일, 나는 법무법인 화우의 법률자문으로 서울중앙지검 민원실에 고소장을 접수하게 되었다. 고소장을 들고 계세경 상무와 함께 서울중앙지검으로 향하는 동안 얼라이언스시스템 호의 순항을 위해 이 나라 ‘사법정의’가 등대가 되어줄 것을 간절히 기도했다. 이 날 인터넷 포털 사이트 대문에는 삼성SDS 대표이사와 임직원 세 명이 벤처기업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에 관한 법률위반(사기혐의)으로 피소되었다는 내용이 대서특필 되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중소기업 사장님들은,
“조 사장님 제 속이 다 후련하네요, 우리도 엄청 당했습니다. 그 새끼들 해도 너무하더군요. 이번에는 박살 좀 났으면 좋겠습니다.” 라며 나를 격려하기도 했다.
그렇게 중소기업 사장님의 응원과 격려를 받으며 검찰청으로부터 연락이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던 중 10 월 초순 서울중앙지검 조사과 수사관으로부터 검찰에 출두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조성구씨, 삼성SDS를 고소하셨지요? 고소인 조사를 해야 하니까 중앙지검 조사과로 나오세요. 추가로 제출할 증거가 더 있으면 가지고 나오세요.” 했다.
그토록 기다렸던 검찰청 전화이긴 했지만 난생 처음으로 받아본 검찰청 전화라서 그런지 조금은 당황스럽고 심난하기도 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것은 아니었지만 검찰청 전화는 누구에게나 심리적으로 위축이 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 역시도 긴장이 되었으니 말이다.
상대가 이 나라 최고의 재벌대기업 이라서 방심은 금물, 나와 계세경 상무는 삼성SDS의 사기혐의를 입증할 추가 자료를 꼼꼼하게 챙긴 후 서울중앙지검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출입구 안내 데스크에서 발급 받은 출입증을 목에 걸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에서 내렸다. 그러자 어느 검사실 방에선가 책상을 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위압적인 목소리가 쩌렁쩌렁 들려왔다. 그런 분위기에선 다들 주눅이 안 들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아니 이 양반이 좀 전에 한 이야기와 다르잖아, 당신 000씨와 사전에 공모한 것 우리가 다 확인했는데 끝까지 오리발 내밀거야~~”
그런 위압적인 수사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와 계 소장은 조사과 사무실로 들어가서는,
“고소인 조사를 받으러 왔는데요.” 했더니 담당 수사관이 다른 일이 있으니 휴게실로 가서 잠시 기다리고 호출하겠다고 했다. 조사과를 나와서 휴게실로 향하는데 수의를 입은 어떤 사람이 손에는 수갑을 차고 발은 쇠사슬에 묶인 체 경찰관과 함께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는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보니까 죄 짓고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약 30여분이 지나자 휴게실 천정 스피커에서 “조성구씨 조사과로 오세요.” 라는 호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조사과 들어가자 담당 수사관은,
“여기 앉으세요. 삼성을 고소하셨네요, 대단하십니다. 쉽지 않은 고소일 텐데요, 증거는 많이 있습니까?”라며 우리 나와 계 소장을 번갈아 보면서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눈빛이 무척이나 예리하게 보였다.
나는 “예, 제가 변호사님께 법률 자문을 받았는데요, 사기혐의를 입증하는데 충분한 증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말을 끝내는 순간 퉁명스런 소리로,
“변호사? 지들이 알긴 뭘 알아요?” 라면서 전문 수사관답게 우리를 쉽게 위축시켰다. 그러면서 고소인 조사가 시작되었다. 이름과 주소, 본적을 물었다. 그렇게 신원확인을 하자 수사관은 사건의 자초지정에 대해 하나하나 심문하기 시작했다. 나는 차분한 마음으로 수사관이 사건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조목조목 관련 증거를 제시하면서 삼성의 사기혐의를 진술했다. 고소인 조사는 문답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내가 진술을 하면 독수리 타법인데도 굉장히 빠르게 타이핑했다.
그렇게 고소인 조사가 세 시간 넘도록 진행되자 이수철 수사관은 잠시 쉬었다가 하자더니,
“이 새끼들 모조리 구속 해야겠어”라며 자신감 있는 수사의지를 보였다. 그러면서,
“아니, 이건 또 뭐야? 검찰에 고소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음..그래 사기쳤다는 이야기지? 개새끼들 진짜 우끼는 놈들이네, 이래서 누가 중소기업 해먹겠어요? 항간에 떠도는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구만, 어이구야 이 개새끼들”이라며 삼성을 질타했다.
수사관이 생각해도 삼성SDS가 해도 너무 했다는 것이다. 수사관의 강력한 수사의지를 느끼자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수철 수사관은 때 묻지 않고 사법정의를 실천하는 수사관으로 보였다. 휴게실에서 커피 한 잔 후 나와 계 상무는 고소인 조사를 몇 시간 더 받았다. 삼성SDS의 사기혐의를 입증시킬 추가적인 증거자료를 제시하면서 첫 고소인 조사는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조서 한 장마다 지장을 찍는 느낌 또한 묘하기만 했다. 내가 죄 지은 것도 아닌데,
첫 고소인 조사 후에도 수사관은 삼성SDS의 사기혐의에 대하여 궁금할 때마다 전화로 문의해왔다. 어떤 때는 한밤중에도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그렇게 열심히 수사하는 그가 너무 고마워서 퇴근 후 저녁식사를 할 때도 부르기만 하면 곧바로 검찰청으로 달려갔다.
그러던 어는 날, 이수철 수사관은 야근을 한다면서 늦게라도 좋으니 검찰청에 와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의 책상에는 우리은행에서 제출한 자료들이 수북하게 놓여 있었다. 낮에 우리은행 직원을 소환해서 참고인 조사를 한 것 같았다. 수사관은 IT 분야와 은행에서 추진하는 구매 관련 계약내용은 잘 모르겠다면서 자세히 살펴보고 무슨 문제가 있는지 이야기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사관은 우리은행 계약책임자가,
“처음 입찰조건은 ‘무제한 사용자 조건’ 이었지만 입찰참가 업체들과 구두로 합의하여 ‘300명 사용자 조건’으로 변경되었다.”라고 진술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은행에서 백억 원 대 이상의 입찰에서 입찰조건을 서면 없이 구두로만 변경하는 게 가능한 일인지 물었다. 그래서 나는 미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제출한 계약서를 살펴보니 ‘300명 사용자 조건’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수사관에게 “뭔가 이면계약을 한 것 같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수사관은,
“그런데, 이런 일이 이쪽 분야에서는 입찰조건 변경을 구두로 하고 이면계약이 비일비재한가요?”라고 했다.
“아닙니다, 통상적으로 은행은 아주 특별한 사유가 아닌 이상, 은행 측 스스로가 불리하도록 입찰조건을 변경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입찰 조건을 변경하더라도 문서로 통보하지 아무런 근거도 남지 않게 구두로 변경하는 경우는 절대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나는 계약서를 꼼꼼히 읽던 중 본문 조항에 ‘이면계약을 하지 않는다.’라고 기재된 부분을 수사관에 강조하면서 “이면계약 자체가 불법인데 하지 않는다니, 저는 이런 조항을 삽입한 은행 계약서는 처음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라고 했다.
이수철 수사관도 기가 막혔는지 피시식 웃었다. 그렇게 여러 차례 검찰청을 방문해서 추가적인 조사를 받고 나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를 하면서 수사관의 성실한 수사태도에 너무나도 고마웠고 든든하기만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사관은 지난여름에 못간 여름휴가를 가야 한다며 휴가를 다녀오겠다고 했다.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는 것만 같았지만 수사관에게 따질 입장이 아니었기에 그저 아무 일 없기를 빌고 빌면서,
“이 수사관님, 수사하시느라 많이 지쳤을 텐데요, 잘 다녀오셔요.”라는 말을 건네면서도 불길한 예감은 떨칠 수가 없었다. 일주일 후, 이수철 수사관의 근황이 궁금해서 전화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수를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불길한 생각이 또 다시 엄습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수사가 지연된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못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길했던 몇 주가 흐른 후, 연수에서 돌아온 이수철 수사관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다리가 아파서 당분간 쉬어야 한다고 했다. 더 이상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러나 돈 없고 힘없는 중소기업 사장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마냥 기다리는 것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