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너무하는 검찰>
그저 공정한 수사를 간절히 바라며, 늦은 밤 호출해도 아무 군소리 없이 검찰청으로 달려가서 최대한 자세한 진술을 한 나였기에 7급 이수철 수사관에 5급 김수만 수사사무관으로 교체가 되어도 애써 수사가 공정하게 진행되길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 김 수사사무관이 실망스런 말을 했다.
“삼성은 이 정도 증거로 기소 못합니다. 우리가 기소해 봐야 삼성 변호사가 별별 희한한 논리를 만들어서 판사에게 들이대면 무죄 나옵니다. 그 사람들, 서로가 연수원 선후배 사이이고 같은 한통속 출신들이라서 뻔하죠. 그러면 삼성을 기소한 우리만 바보 되는 겁니다.”
명색이 검찰 수사관인데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애써 핑계를 대고 수사 자체를 접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그들을 믿고 공정한 수사를 기대했던 내가 얼마나 순진했는지 아득하기만 했다.
그렇게 내가 고소했던 사건은 제대로 된 수사한번 없이 해를 넘겼다. 그래도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수시로 담당 검사실에 전화를 걸어서 성의 있는 수사를 촉구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들은 대답은 “수사 중이니 기다려 달라”는 말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수만 수사사무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질심문을 할 테니 검찰청으로 출두하라는 호출이었다.
나는 짜고 치는 대질심문을 막으려고 현대정보기술 김민철 부장에게 검찰청 대질심문에 참고인으로 참여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얼마 전에 “우리은행의 입찰조건 변경이 없었다.”는 확인서를 작성해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런 그였기에 검찰이 호출하면 대질심문에 나가겠다고 했다. LG CNS 윤 과장에게도 연락했다. 그러자 그는,
“조 사장님, 얼마 전에 제가 작성해드린 확인서로 제 입장을 대신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검찰에 나가면 회사에 눈치가 보입니다.” 했다. 그 역시 우리은행에 대한 입찰조건 변경이 없었음을 알 수 있는 확인서를 작성해 준 사람이었다.
드디어 대질심문이다, 나는 사전에 현대정보기술의 김민철 부장의 역할을 믿으며 검찰청 조사과로 들어갔다. 삼성SDS에서는 정정해 팀장과 황당해 과장이 나왔고, 우리은행에서는 구매팀의 홍길동 부장과 김선수 부부장이 나왔다. 담당 검사는 김상해 검사였다. 김상해 검사는 회색 발가락양말에 슬리퍼를 신고 나왔다. 삼성SDS 강만수 상무는 정해진 시간보다 30분도 넘게 도착해서는,
“검사님 제가 급히 비행기를 타고 지방출장을 가야하는데요, 대질 심문을 좀 빼주셨으면 좋겠습니다.”했다. 그러자 김상해 검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쁘신 분은 가셔도 정정해 씨와 황당해 씨가 있으면 별 문제없지요?”라고 형식적으로 묻더니만, 피해자인 나에게는 묻지도 않고 강 상무에게 가라고 했다. 사법정의를 바로 세우는 대한민국 최고의 수사기관에서 이런 몰상식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것도 백주 대낮에 말이다.
정신상태가 이리도 썩었으니 그동안 수사가 개판일 수밖에, 삼성이라면 알아서 기려고 꼬리를 흔드는 행태를 보고 있으려니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대질심문의 주요 참고인인 현대정보기술 김민철 부장이 보이질 않았다. 나는 김상해 검사에게,
“검사님, 삼성SDS와 함께 경쟁했던 업체 관계자들은 참고인으로 안 불렀나요? 이 사건에 대해 가장 객관적으로 진술해 줄 중요한 사람들인데요.”
그러자 김상해 검사가 애써 헛기침을 하면서 하는 말이.
“험 험...에에. 참고인? 그 사람들 불러봐야 안 옵니다. 그냥 합시다.” 했다.
세상에나 담당 검사가 핵심 참고인을 처음부터 아예 부르지도 않은 것이다. 봐주려고 작심을 해도 유분수지 너무 티가 나도록 애쓰는 검사의 행태를 보니 측은한 생각마저 들었다. 하긴 참고인을 부르면 삼성을 봐줄 수가 없을테니까 말이다.
“검사님, 이거 짜고 치는 고스톱이잖아요?”라고 대놓고 따졌더니,
김상해 검사는 자신이 무슨 비열한 일을 하고 있는지 아는 듯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수사사무관을 향해 “김 사무관! 진행하세요.”라고 말하고는 검사실로 후다닥 숨어 버렸다.
그렇게 대질심문은 사전에 준비된 각본처럼 착착 진행되었다. 그리고 대질심문 이틀 후 2005년 2월 14일, 김상해 검사는 대전지방검찰청으로 발령이 났고 이틀 후인 2월 16일 ‘증거불충분’이라는 핑계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렇게 6개월 내내 시간만 질질 끌던 사건을 인사이동 시기에 맞춰서 후다닥 털고 가는 수법이었다.
‘아, 이래서 삼성공화국이구나.’ 나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서 그런지 온 몸이 떨려왔다. 내가 선임했던 법무법인 화우의 조00 변호사조차도도 말도 안 된다며 쌍욕을 퍼부어댔다. 그리고 검사의 ‘불기소이유 고지서’를 떼어 왔는데 내용이 초등생 수준이었다. 봐주려면 제대로 좀 봐주지 마지막 마감은 무식함을 넘어서 몰상식 그 자체였다. 우리은행의 입찰조건이 변경된 것으로 입을 맞추긴 했지만 과정은 맞추진 못했다.
‘불기소이유 고지서’에 적혀진 수준이다.
우리은행 홍길동 부장 진술은,
“입찰조건은 원래 ‘무제한 사용자 조건’이었지만 입찰에 참가했던 4개 업체(삼성SDS, LG CNS, IBM, 현대정보기술)와 함께 입찰 전에 구두로 협의하여 ‘300명 사용자 조건’으로 변경하기로 합의했다.”
삼성SDS 정정해 팀장의 진술은,
“입찰조건은 고소인이 우리은행과 직접 협상하여 변경했다”고 진술되어 있었다.
이런 몰상식 이라면 누가 대한민국의 사법정의를 믿을 수 있겠는가?
삼성은 내가 우리은행과 입찰조건에 대하여 변경할 자격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도 허위 진술을 대놓고 했던 것이다. 하긴, 검찰에 고소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제출하라고 겁박하던 그들이다.
정리하자면, 우리은행의 ‘무제한 사용자 조건“의 최저가 입찰에서.
우리은행은 입찰참가 업체 4개사와 ‘300명 사용자 조건’으로 구두합의로 변경했다는 것이고,
삼성SDS는 조성구가 우리은행과 협상해서 ‘300명 사용자 조건’으로 변경했다는 것이고,
현대와 LG CNS, IBM은 입찰조건 변경이 없었다는 것이다.
삼성SDS를 사기혐의로 고소 시 검찰에 제출한 증거는,
1. 우리은행의 입찰조건이 ‘무제한 사용자 조건’ 이라는 제안요청서
2. 삼성SDS의 ‘무제한 사용자 조건’을 수용한다는 제안서
3. 현대정보기술의 ‘무제한 사용자 조건’을 수용한다는 제안서
4. 우리은행 김00 부부장의 녹취록(300유저면서 언리미트로 되어있습니다. 결국 무제한 사용자 조건입니다. 삼성SDS에게 강력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모든 소프트웨어가 무제한 사용자 조건이었습니다)
5. IBM 홍00 팀장의 녹취록(입찰조건 변경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6. 현대정보기술의 김00 부장의 확인서(입찰조건 변경은 없었습니다)
7. LG CNS 윤00과장의 확인서와 녹취록(입찰조건 변경은 없었습니다. 미친놈들이네)
이렇게 증거가 다양하고 많은데도 불충분하다면 이 나라 최고의 수사기관인 검찰청에게 도대체 무슨 증거를 가져다주어야 삼성을 기소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미, 우리은행과 삼성SDS는 검찰에서 둘 다 엇갈리는 허위 진술한 사실 만으로도 사기혐의를 입증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