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이지만, 환자나 환자 보호자의 역할을 가끔 해보면
이 나라의 고질적 의료문제들을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시어머니는 수년전 눈이 빠질 듯이 아파서 안과를 2주 가까이 다니며
안구건조증이라는 말을 듣고, 점안액을 사용하다가
안구 통증이 너무 심해져 종합병원 응급실에 가서 급성 부비동염 진단을 받으신적이 있습니다.
이것을 비단 안과 선생님의 오진으로만 생각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의사 10명중 8명이 전문의이고,
길에는 OO신경외과, OO안과, OO 정형외과가 난무합니다.
눈이 아픈 환자는 어느 과 병원으로 갈지 약간 고민하다가 혼자 선택해서 안과를 가게됩니다.
지난 수년의 세월 동안 눈에 대한 문제만을 다뤄온 선생님은 안과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가능한 안과적 진단을 내리게 됩니다.
전 세계에서 후진국을 빼면 일본과 한국만 이런식으로 환자가 고민하고 스스로 결론지어서
개원가의 전문 진료과를 결정한다고 합니다.
외할머니는 수년전 척추 강 협착증으로 수술도 받으셨지만,
지난해 만성적인 허리통증이 마약성 진통제로도 조절되지 않아
그 분야에 유명하다는 O대학 OO교수님을 찾아 힘들게 예약을 하고
진료를 받으셨습니다.
다행히도 동네 수술전문병원에서처럼 수술을 권하지는 않으셨고,
2-3분여의 진료를 마치고, 할머니는 집에 이미 있는 약들과 대동소이한 약을 한아름 들고 집에 오셨지요.
약을 정리하려는데, 개중에는 만성적으로 매일 드시던 진통제들도 있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약을 먹어야할지 굉장히 복잡해져, 직접 보고 정리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소문난 대학병원 명의는 하루에도 수백명의 환자를 진료합니다.
이 환자가 무슨 약을 먹고 있는지, 어떤 과거력이 있는 사람인지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
중간에서 조율해줄 사람이 없다면, 기존의 약들과 중복되는 새로 처방된 수많은 약들은
독이 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의료협동조합 의원은 조금 다를 수 있을까요?
느티나무에서 종합병원에 의뢰한 환자들에 대하여
진료 회신서를 가끔 받게됩니다. 그것을 받아보고, 환자가 종합병원에 가서 어떤 검사를 통해
어떤 진단이 내려졌는지 알 수 있고, 다음에 이 분이 다시 오시면
어떤 상황들이 있었는지 이야기 나누고, 새로 처방받은 약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고, 궁금증에 대해 소통하고 있습니다.
약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환자가 먹고 있는 다른 약들을 모두 파악하려고 합니다.
정성도 정성이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꼭 소요되는 작업입니다.
때로는 약이 독이 되어 일으키는 증상들을 의심하고,
약을 줄이는 것이 치료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시간을 할애 받을 수 있어서 감사하고, 이해해주시는 조합원들이 있어서 더욱 감사합니다.
작은 차이이지만, 작은 차이를 지켜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고,
여기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의원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더 많이 찾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좋은 고민들이 공유되기를 소망해봅니다.
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단편 드라마를 본 느낌입니다^^
우리나라 의료현실에서 느티나무 같은 의료사협은 늘어나야 마땅하겠죠 ㅎㅎ
참 담백한 느낌이네요^^
여러번 경험한 일 들입니다. 이런 내용이 뒤에 있었는 줄은 몰랐네요...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