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김서형의 『빅히스토리』를 읽었었다. 그런데 같은 제목의 책들이 몇 권이 더 눈에 띠였다. 김서형의 책이 너무 비약이 많아 그 사이의 간극을 채워 넣으려는 요량으로 이번에는 이언 크로프턴·제러미 블랙의 『빅뱅에서 인류의 미래까지 빅 히스토리』를 꺼내 들었다.
이 책 역시 대폭발로부터 별과 행성의 탄생을 살피며 마침내 우리들의 지구로 안내해 주었다. 김서형의 책이 인류의 탄생에 몰두했다면 이 책은 우주의 탄생과 지구상의 생명체의 탄생에 조금 더 무게를 두었다. 그런 점에서 앞의 책에서 빠진 부분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은 빅뱅에서부터 지구에 생명체가 나타나기까지의 수억 년의 긴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진화의 과정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상에 출현하고 빠르게 지구 환경에 적응해갔다. 그 결과 호모 사피엔스와 경쟁하던 다른 종들이 사라졌다.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조금 섞어 있기는 하지만 오늘날 살아있는 인간은 모두 호모 사피엔스 종에 속한다. 이들은 아프리카를 떠나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거쳐 전 세계로 수만 년에 걸쳐 뻗어나갔다. 이들의 이동은 수렵 채집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농경 이전의 인간은 자연에서 먹이를 채집하고 사냥하며 살았으며, 식물이나 나무의 열매, 자연사하거나 다른 동물이 먹다 남긴 동물의 사체를 먹었다. 주변에 먹이가 사라지면 먹이를 찾아 인근 주변으로 서식지를 옮겼다. 이들의 이동을 멈추게 한 것은 불을 발견한 후의 일이다.
불은 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불을 이용한 요리법을 터득하면서 음식을 몇 시간씩 씹을 필요가 없이 더 효율적으로 음식을 섭취하고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불은 열과 빛을 제공해주고 포식자들로부터 방어수단이 되기도 했다.
50만 년 전 인간의 두뇌가 커지면서 서서히 ‘추상적 사고’가 가능해 졌을 것으로 추측한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생기듯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능력은 도구를 개발하는 데 필수적이다. 추상적인 관념은 종교적 믿음을 갖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언어가 발달하고 관념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자 예술이 꽃피기 시작했다. 고대인들은 수많은 벽화를 동굴에 남겼다. 농경이 시작된 후로 사라들은 한 곳에 영구 정착하면서 더 튼튼한 집을 짓기 시작했으며, 추운 날씨를 견디기 위해 옷이 만들어졌다.
농경으로 사람들은 겨울이나 흉작에 대비해 식량을 저장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잉여 식량을 거래할 수도 있었다. 남는 농작물을 원자재, 공산품 및 노동력과 맞바꾸면서 사원 건축과 전쟁 등 지금까지는 꿈도 못 꿨던 활동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만 ~ 8천 년 전 씨앗을 뿌리고 경작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비옥한 초승달 지애에서 밀과 보리부터 시작해 호밀과 콩까지 수확하면서 본격적인 곡식 농사가 시작되었으며 전 세계 각지에서 서로 다른 작물이 재배되었으며, 농경의 확산은 인간과 땅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 군데 정착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논밭에 경계가 생겼고, 소유 개념이 자리잡게 되었다. 기원전 9천 ~ 8천 년 전부터 목축을 했으며, 늑대 무리 중 일부는 인간에게 접근해오자 인간과 늑대 사이에 상호협력관계가 만들어졌으며 기원전 4천 년경 동물이 농사에 활용되었다.
동물이 농사에 활용되자 경작할 토지 면적이 넓어졌다. 말은 기원전 3천 년경 가축화되었다. 증기기관이 발명되기 전까지 말의 속도를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바퀴의 발명은 기원전 4세기로 추정되며, 청동기시대를 거쳐 철기시대는 기원전 1200년경 근동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글과 법이 정부의 핵심 도구로 자리 잡았고, 권력이 무력으로 유지되기 시작했다. 한편, 물물교환이 이루어졌으며, 생산자와 소비자는 잉여농산물을 사고팔았다. 장거리 무역은 중간상인이 필요했으므로 기원전 1세기가 지나서야 실크로드로 가능해졌다.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과 서역 간의정치, 경제, 문화적인 교류가 일어났고 페스트 같은 전염병이 펴지기도 했다. 서기 1세기경에는 동북아시아를 비롯하여 거의 전 세계에서 무역이 이루어졌다. 무역이 발달하고 농경이 확산되면서 도시의 성장이 가속화되었다.
도시가 급증하면서 복잡한 거래가 용이해지고, 잉여 농산물도 꾸준히 생산돼 일부 노동자들은 농업 이외의 일에도 종사할 수 있게 되었다. 도시는 거대한 인구를 지원할 수 있는 농업을 기반으로 발달했다. 농업의 발달은 도시의 발달시켰고, 다양한 교통수단도 발달하였다.
동물들을 이용한 운반 수단이 발달하고, 해상 경로를 이용해서 더 많은 물자를 이동했다. 물물교환은 점차 신용거래를 거쳐 화폐로 발전해갔다. 기원전 1200년경 조개껍질 화폐가 등장했으며, 기원전 1100년경 중국인들은 동전을 사용했으며, 마침내 지폐가 등장했다.
문자가 개발되자 지식이 기록되면서 영원한 저장이 가능해졌고, 국가가 확대되면서 제국이 등장했다. 제국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군사력이 가장 중요했으며, 군사력은 기원전 5세기의 페르시아 제국과 기원전 4세기의 마케도니아 제국의 건설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편, 초기 종교들은 여러 신을 섬기는 다신교였고, 신과 여신들도 국가와 가족처럼 계급이 나뉘었다. 신들은 문화적 정체성과 권력 구조를 반영할 뿐 아니라, 자연의 힘이나 삶과 죽음의 순환을 상징하기도 했다. 유일신교가 언제 처음 생겨났는지는 분명치 않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모두 선과 악의 싸움을 강조한다. 유일신교는 기원전 2천 년경 하느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약속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약 1500년 후 그것이 기록되면서 여호와가 유대인의 유일신으로 자리 잡았다.
사회가 복잡해지자 약 2500년 전, 인간 ‘사고’의 역사에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세계각지에서 철학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부터 관념론과 유물론, 그리고 이 두을 포괄하는 이원론이 등장했다.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유럽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돼 기독교 등장 이전의 고전 사상가와 예술가, 작가들의 업적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 시기 새로운 문화가 창조되었으며, 종교개혁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20세기에 이르러 모더니즘 운동이 일어났다.
모더니즘은 새로운 사회과학, 이러한 운동은 학문의 모든 영역으로 퍼져나갔으며 마침내 20세기 초, 수년간 계속되어온 과학적 사실을 뒤집는 이론이 등장했으며, 상대성 이론과 양자론이 대표적이다.
20세기에는 의학의 전례 없는 발전으로 수십억 명의 삶이 달라지기도 했으며, 공산주의와 전체주의 국가가 등장하기도 했다. 제1,2차 세계대전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고,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는 그 정점에 있다. 종전이 되자 세계는 두 진영으로 나뉘어졌다.
홀로코스트
두 진영은 서로 경쟁하였지만 마침내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경제 모델의 세계적 확산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는 이슬람 세계의 극심한 반대에 직면했으며, 그로 인해 2001년 9.11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컴퓨터가 사무실과 가정에 두루 이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다. 1989년 월드 와이드 웹의 개발로 인터넷이 일상화되었고, 편지는 이메일로 대체되었다. 휴대전화, 노트북, 휴대용 미디어 플레이어 등 새로운 휴대용 기기가 쏟아져 일상생활을 변화시켰다.
인류는 수천 년간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으며, 인구는 유례없이 증가했다. 국가 간의 발전의 불균형으로 이민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고, 경제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환경파괴가 일어나기도 했다. 환경오염, 쓰레기 오염 등과 함께 지구온난화는 생존을 염려해야 할 지경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출현한 이래 그 후손들은 숨 가쁘게 역사를 만들어왔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지구에 저지른 끔찍한 일들이 마침내 우리의 소멸을 앞당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태어난 것은 언젠가는 소멸하기 마련이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지 않더라도 지구와 태양계가 결국은 소멸하게 된다. 우주는 시간, 빛과 공간이 붕괴하면서 내부 폭발을 겪은 후 본래의 모습으로 회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우주의 모든 이야기를 결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건 까마득한 먼 후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