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식 명절/기일
제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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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와
천도 -
유가의
제사는 조상신께 제수를 올리고,
후손의
가호를 축원하는 공양의례에 가까운 데 비해 불가에서 널리 행하는 시식은 지옥 아귀 등 삼악도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주고 음식을 베푸는
추천(追薦:
천도)에
초점이 주어져 있다.
유가의
조상신은 불교의 부처님과 같은 제수를 받는 자리에 존재이지 우리들의 구원을 기다리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불교도들이
제사를 봉행한다면 적어도 조상님들이 지옥에 있는 ‘귀’(鬼)가
아닌 하늘에 있는 ‘신’(神)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제사를
지낸다고 하면서 삼악도의 조상을 구원한다고 하면 이는 추천이지 제사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자세한
논의는 생략하고 차례와 다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명절
제사를 차례라고 한다.
민족문화백과사전은
다례(茶禮)로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명절차례는
기제사와 달리 종가부터 시작해 점차 아랫대의 차례로 제사를 모신다고 해서 차례(次第의
음운이 차뎨→차례로
음이 변했고,
뎨(第)의
한자음은 ‘제’로
굳어졌음)라고
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되리라고 보는데,
차를
올리는 ‘다례’라고
보는 것은 적지 않은 오해에서 시작되었다고 보인다.
다례는
차를 올리는 의식으로 불교 선가에서 종조의 기일에 올리는 제사나,
초하루
보름 혼전(또는
상청)에
제수를 따로 장만하지 않고 차만 간단히 올리는 예를 지칭한다.
삼국유사에
3화상에게
차를 올렸다는 기록 등으로 볼 때 차를 올리는 다례는 많지만 그 개념이 오늘의 차례와는 다르다.
설은
떡국,
추석은
송편이 주가 되는 차례상 제수에 차를 올리는 집안도 보기 힘들 뿐만 아니라 그 의미도 전혀 다르다.
불가에서
선대 조사 종사에게 술 대신 차를 올리고 하는 예를 다례라고 하지 차례라고 읽지 않는다.
차례는
종가에서 둘째 셋째로 내려오면서 차례대로 제사를 모시는 풍습을 의미하는 것이다.
세월이
변해 대가족이 핵가족이 되어,
족성이
집단 거주하던 시대가 점점 사라지면서 차례를 올리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차례에
대한 인식의 저변에는 차례에 대한 의식이 올곧게 남아 있음을 흔히 볼 수 있다.
어느
니승께서 자기네 집안은 김해로 부산으로 집안을 다니며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고향
집을 떠나 제사를 현 주거지로 옮기면서 노모께서는 늘 ‘우리집’은
작은집이니 명절 아침 차례를 늦게 지내야 한다고 말씀하곤 하셨다.
큰집이
제사를 지낸 다음에 제사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차례의
의미를 잊지 않는다면 차례(순서)
제사를
다례로 올리자는 운동은 큰 의미가 있다.
차례를
다례로 지내자는 일각의 운동은,
술이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정신을 흐리게 하는 것일 수도 있고 하니 조상영(신)의
정신을 맑게 해 주기 위해 차를 올리자는 것이나 지나친 육식을 줄이기 위해 차와 과일을 제수로 하자는 것은,
의미도
있고 현실에 적합하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정성으로 차를 다려 올리고 오곡 과일과 등을 밝혀 조상님을 청해 찬탄하고 감사드리며,
성현의
말씀을 읊어 지혜를 밝히고,
후손의
가호를 축원하는 명절제사는 시대와 사상에 따라 그 형태를 다양하게 변모해 갈 수 있다.
명절제사든
기제사든 아픔이 남는 제사가 아닌,
기쁨과
즐거움이 남는 제사로 전환되었으면 좋겠다.
다음에
제시하는 불교식 제사법은 불교제사법이 아니고 불교식 제사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제시하는 불교식 제사는 삼보를 증명으로,
공덕주로
청해 모시고 행하는 제사로 청신,
오신과
발원,
송신의
3단
구조를 불교의 현밀의례에 배대하여 우리말로 작성한 것이다.
아래
의문을 가족들이 돌아가며 염송하며 제사를 모실 것을 권합니다.
거불은
아버지가, 고향은 아들이, 청신은 딸이, 공양은 어머니가 고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공양을 올릴 때는 3줄을 각각 돌아가며 염송하면 아름다운
화음으로 제사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또
청신을 할 때 어디 사는 주소와 청하는 제주와 동참자를 일일이 밝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언이나 경전을 염송할 때는 함께 독송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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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식
제사법
2016.9.10.
개정
○擧佛(거불:
시방삼세
부처님께 가지를 청함,
변재삼보나
극락삼성 중 택일)
나모상주시방불(南無常住十方佛) 나모극락도사아미타불
[1배]
나모상주시방법(南無常住十方法) 나모관세음보살마하살
[1배]
나모상주시방승(南無常住十方僧) 나모대세지보살마하살
[1배]
○告香(향을
살라 공양하며 가호하여 주실 것을 아룀)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삼보님께
공양하오니,
저희들을
가호하여 주십시오.
○請神安座(청신안좌,
조상님을
청해 자리에 앉으시도록 함)
[조상님을
모시는 의식,
대표자가
보통 음으로,
제주가
상황 따라 작성하여 청한다.]
모모
거주 효자 모모 (관계) 모모
조상님이시여,
[재설]
사바세계
남섬부주 해동 대한민국 모모 처에서 (설,
추석,
기제사)를
맞이하여
효자
모모 효손 모모 등은,
정성을
다하여 향단을 진설하고 선망 (모모) 조상님을
청하오니,
강림하소서.
안좌진언(安座眞言) ‘옴
마니 군다니 훔훔 스바하’
[삼편]
[제주와
참석자는 조상님께 2배를
한다.]
○娛神供養(오신공양:
조상님을
즐겁게 제수를 올림,
대표자가
합장,
보통음)
[제주는
밥그릇 뚜껑을 연다.]
선망(부모・조부모)님께
맑은 차를 드리오니,
목마름이
없어지소서.
[2배]
선계의
진품과일을 올리옵고,
진수를
올리오니 든든함이 영원하소서.
[2배]
오늘
올리는 조촐한 진수는 저희들의 정성이오니 마음껏 흠향하소서.
[2배]
보공양진언(普供養眞言) ‘옴
아아나 삼바바 바아라 혹’
[삼편]
[각각
2배하거나,
가족이
돌아가면 차례로 차를 올리고 2배하거나
혹은 합동으로 3배한다.]
[가부좌
자세로 앉아 죽비를 세 번 치고 잠시 입정을 한다.
끝날
때도 죽비를 3번
친다.]
[숭늉을
올리고 밥을 뜨고 세 번 숭늉에 덜어 넣는다.]
보회향진언(普廻向眞言) ‘옴
사마라 사마라 미마나 사라 마하 자가라바 훔’
[삼편]
○發願(발원)
오늘
저희들이 올린 공양을 받으셨으니,
아미타부처님을
따라 영원히 안락한 극락세계에 가시어 편안히 계시오소서.
그리고
저희들이 건강한 몸과 맑은 정신으로 올바른 삶을 영위하며
깨달음을
얻는 길로 이끌어주소서.
[대중이
성중과 조상님께 3배를
한다.]
○餞送(전송)
삼보님과
부모님과 조상님이시여,
이제
진수를 드셨으니,
극락으로
향하오소서.
가시는
길 정 놓으면 바로 극락이라고 하였습니다.
법왕의
궁전에 드셔서 편안히 계시다가
다음
날 제수를 차리고 청할 터이오니 잊지 마시고 오시어 제수를 받으십시오.
봉송진언(奉送眞言) ‘옴
바아라 목차목’
[삼편]
[헌식을
하고 그릇의 뚜껑을 닫고 위패를 문 앞에서 사른다.]
[반야심경
원문 또는 우리말,
혹은
말구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디 스바하’만을
삼편 염송한다.]
‘아뎨아뎨
바라아뎨 바라승아뎨 모디 스바하’
[삼편]
○飮福(음복:
차를
나누어 마심)
編者:
牛辿
李誠雲(철학박사-불교의례전공,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학술연구교수,
조계종
의례위원회 실무위원)
부:
우리말
반야심경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다섯
가지 쌓임이 모두 공한 것을 비추어보고 온갖 괴로움과 재앙을 건졌다.
사리불이여,
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으며,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니,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과 의식도 그러하다.
사리불이여,
이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빛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닿임과 법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으며,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이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다.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아주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이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한 주문이며,
가장
밝은 주문이며,
가장
높은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아라.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말하노니 주문은 곧 이러하다.
‘아뎨아뎨
바라아뎨 바라승아뎨 모디 스바하’
[삼편]
※이
우리말 반야심경은 1965년
조계종 종회 의결을 거친 종단 공식 번역이고,
이후
18개
종단이 합의하여 같이 쓰기로 한 동국역경원 번역본인데,
편자가
의고체만 고쳤다.
첫댓글 저는 제사의례후에 반야심경 독송을 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훗날에 제가 제사를 주관하여 모시게 되면 우천 선생님의 의식대로
불교식 다례를 모시고 싶습니다.
집안의 문화를 주도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평소에는 대단한 의견을 내지도 않으면서도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있으면 제각기 목소리를 내므로 형제간의 의견을 통일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헌향진언을 추가한 13일자 메일의 본을 실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