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운파 김진옥 선생님은 佛法의 정수를 참선을 통해 가르쳐주신 저의 스승님 이십니다.
보림선원을 창건하신 백봉 김기추 선생님의 제자이십니다.
작년 2015년 2월 11일에 92세의 연세로 돌아가셨습니다.
故 박순덕 보살님은 평생을 선생님과 함께 수행하시며 같이 살아오셨습니다.
그제 김선생님의 1주기 제사를 모시고 다음날 바로 (2월12일에) 입적에 드셨습니다.
평생을 불교공부와 선공부를 지속해 오신 분들이라
입적하신 모습도 남달랐다고 하십니다.
89세의 보살님은 평소에 더 이상은 살 까닭이 없으며 곧 입적에 들것이라 하셨고
삶을 거둘때 정말 간단하게 갈 수 있도록 발원하셨답니다.
하루전부터 음식을 끊고 염불을 끊임없이 하시면서
김선생님의 1주기 기일을 보내고 자식들을 두루 보고 보낸 뒤
저녁 상을 받은 자리에서 갑자기 빛이 번쩍하더니 그냥 뒤로 누워 그대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병도, 아픔도, 아쉬움도 없이 그대로 망설임 없이 몰록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김선생님이 돌아가신 그 방석 위에서
그 장례식장, 그 호실에서, 그 길을 따라 그대로 돌아가셨습니다.
작년에 92세의 김진옥 선생님도 마지막 가신 길도 참으로 희유하셨답니다.
며칠전부터 곡기를 끊어시고 모든 것을 비워 마치 육체안에 아무것도 없는
무위와 空을 이루신 것처럼 텅 빈 채로 죽음을 맞이 하셨답니다.
깨어있는 정신으로 마지막 심장이 멈춘 후에도 옆의 보살님이 " 왜 아무 움직임이 없느냐? "는
물음에 손을 한번 휘이 저은 다음 그대로 적멸에 드셨는데,
그순간 쉬이익하는 큰 바람소리가 났다고 합니다.
(두 분을 모시고 있던 막내 따님의 생생한 전언입니다.)
소리 이전의 소리와
태초에 빛이 있었던 그 이전 자리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토요일 전주로 박보살님의 조문을 다녀오면서
열심히 공부하라는 두 분의 간곡한 말씀을 듣는 듯 하였습니다.
두 분은 대학시절부터 만나 평생을 뵈면서 공부를 지도 받은 부모와 같은 분들이셨습니다.
두터운 인연으로 대학시절부터 만나 뵙고 교사직을 은퇴한 이후 전주로 내려가실 때까지
많은 것을 같이 하였습니다. 전주 인근 시골에 사자암이란 공부터를 만드시고
30년 가까이를 공부에만 매진하신 공부인이셨습니다.
이 공부는 眞實不虛(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다)하니 멈추지 말고 나아가라는
말씀을 들은 듯합니다.
선생님을 통해 보림선원에 들어오게 되었고, 창원에서의 삼불회, 지금의 화개선원까지
귀중한 인연을 이어서 공부하고 있음에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대학시절의 도반들이 아직도 화개선원을 중심으로 같이 공부하고 있으니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선생님과의 첫 대면자리에서 해주시던 말씀입니다.
" 등불을 든 사람을 따라가라.."
발원 왕생 도솔천
선행 합장..
첫댓글 진정 수행자의 삶을 봅니다. 더 이상 망설일 것도 없고 쫓아갈 것도 없이, 단지 마음줄 놓지 말고 그렇게 갈 뿐이로세.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