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평생을 살아온 오랜 친구가 이제 아픈 거야.
즐거움과 괴로움, 고생과 기쁨을 같이 해온 친구가 병이 난 거야.
그러니까 잘 보듬어주고 이해하고 안아줘
오랫동안 참 고생했다. 그 정도면 정말 잘 한 거야.
힘들었지만 잘 버티어 왔고 충분히 칭찬받을 만 해.
고생이 넘쳐서 그게 병이 되었으니 이제 좀 쉬면서
몸도 좀 살피고 치료도 하고 하자.
보듬고 치료해서 병이 나으면 다시 새로운 삶을 살아보는 것이고
치료기간이 오래가게 되면 그래도 다독거리며 실망하지 말고 친구랑 같이 가고
혹여나 최악의 상태가 오더라도 그동안 최선을 다했다면서
위로해줘 엄마.
지금부터는 최악의 상태를 염두에 두고
치료도 하고, 해보고 싶은 것도 하고, 대화도 자주 하면서
마음도 잘 다스려.
우리의 몸은 나를 담고 있는 그릇이지 나는 아니야 엄마.
내가 친구를 바라보듯이 내 몸에 깃든 암의 존재를 바라보면서
내 몸을 자세히 바라봐.
내 몸이 내가 아니니 그 몸을 바라보는 내(마음)가 진짜 나 일거야.
금강경이나 반야심경이나 모든 불교 경전이 내 몸을 어떻게 하라는 것이 아니고
친구인 내 몸을 늘 바라보고 알고 느끼고 있는 그 놈을 나라고 하는 것이래.
평생을 이 몸을 나라고 생각하고 가꾸어오고 보살펴왔지만
그 몸은 시도 때도 없이 아프고 힘들고 변해가면서 내 맘대로 안 되지?
그러니 내가 아닌 거야 엄마.
이제 이 몸을 친구 삼아서
그동안 고생한 것을 쓰다듬으며 안아주고 보살펴줘.
원망하지도 말고, 화내지도 말고 남 탓하지도 말고,
특히 옆 사람 괴롭히지 말고, 잘 살아왔다고 이해해주고 도닥여 줘
그리고 이 몸은 떠나가는 친구처럼
영원하지 않으니 지금 부터는 이 몸을 친구처럼 바라보고 있는
‘보는 놈’을 나라고 생각하고 의지하고 잘 살펴봐
그 놈이 진짜 나이고, 내 인생의 주인이고, 나를 나답게 해주는
진짜 주인이야 엄마.
이 보는 놈을 잘 알고 있으면 혹여나 삶이 다해 죽더라도 그곳이 극락이래.
‘참 나’가 늘 드러나 빛나는 삶이 계속되는 것이
극락이자 열반인 거야 엄마.
지금 버스타고
친구 잘 데리고 내려가고 있어?
이제 친구 잘 데리고 다니고, 쉬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좀 사주고,
가 보고 싶은 곳도 가보고, 늘 친구를 대하면서 나를 챙겨봐 엄마.
감상선 암이 친구한테 이미 왔지만 이유가 있을 거야.
친구가 그것을 잘 받아들이고 차분히 맞아들여서
치료하고, 달래고, 부드럽게 대접할 수 있도록 엄마가 힘을 주길 바래.
엄마
엄마의 친구와 내 친구는 모습은 다르지만
친구를 바라보는 마음의 눈은 같다고들 해
그러니까 엄마가 척! 하면 내가 턱! 하고 알아 듣지...
엄마 친구와의 시간이 지금부터는 힘들 거야.
하지만 엄마를 사랑하는 내가 있고
친구를 아끼는 엄마가 있으니 잘 이겨내리라 생각해요.
사랑해요 엄마.
첫댓글 이 글은 저의 지인이 자기의 엄마한테 찾아온 갑상선 암에 대해
엄마한테 위로 위주의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삶을 되돌아 보고,
몸을 관조할 수 있는 제 삼의 시선을 이해하기 쉽게 얘기해주면서,
엄마가 자신의 병을 제 3자의 눈으로 보도록 해주고
그럼으로써 육체를 바라볼 수 있는 身念處 수행이 되도록
진심과 애정을 가지고 한 얘기를 전해듣고
저도 감동하여 정리해 올려봅니다.
모든 엄마들의 노고에 감사드리고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눈을 찾아드리고 싶습니다.
선행 간곡히 합장
진정 불교하는 이들의 삶이 아닌가 합니다. 불교하면서 세상의 일반적인 가치로 살려면 굳이 불교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