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月 禪師 행장기
지월선사는
1982년 17세에 해인사로 출가하여
일타스님을 계사로 성철스님을 증명법사로 모시고
수계하고 수행의 길에 들어섰다.
4년간의 행자 생활을 마치고 참선공부에 돌입했다.
86년 지리산 保林禪院의 서울선방에 입방하여
85년 적멸에 드신 백봉 화상의 수제자 운파 眞玉화상의 지도아래
3년간 간화선을 지도 받았다.
87년에는 홀로 수행 중 미간의 진공 속으로 찰라에 빨려 들어가
온 우주와 하나 되는 경험을 하고
일주일간 주위의 모든 분들이 부처의 모습을 하고 있음을
여실히 친견하기도 하였다.
89년부터 진해 대광사 碧山 老師의
개인지도아래 삼불결사에 참여하여 6년간 삼불도반들과 좌선
정진하였다.
참선 할 때마다 몸의 인식의 크기가 온산을 덮듯이 커짐을 경험하면서
화두타파에 더욱 힘을 쏟았다.
96년 다시 서울로 귀경하여 운파 진옥 선사의 지도아래 수련하였다.
2006년부터 知有 대종사의 수제자인 화개선원 常光 선원장 문하로 들어가
화두 참선을 내려놓고 묵조선의 진수에 들기 시작한다.
2007년부터 화개선원에서 10년간 起信論 공부에 매진하여
일심이문의 관문에서 느낀바 있어
삼세육추의 허물을 벗고
생각을 생각으로 알고,
생상의 순간을 친견하는 구경각의 입구에 서게 된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경계 앞에서나
일심진여를 설립하여, 공적영지의 본래처에 머물 수 있는
가르침과 경험을 얻는다.
고요하고 맑으며, 밝고 분명한 자리에 항시 머물며
원하면 경계에 나아가
일심진여 자리를 드러낸 상태에서
대지혜의 눈으로 경계를 대하게 된다.
거둘 땐 거두고
나아갈 땐 언제나 나아간다.
세속에 나아가되 매몰되지 않고
경계를 대하되 피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일심진여가 설립되어 흔들리지 않았다.
주인을 찾아서
대광명의 자리에 들었으나
번뇌와 생각이 주인장 자리 노리는 습관이 아직 남아
점수의 수행에 열심이니
마음은 이미
열반이 내 집이요
삼매가 내 살림이다.
출가한지 35년.
나비인줄 알았으니
멈추지 않고 나아가
시나브로 날개를 펴고 날아가리라.
知月 禪行 최건업
금생에 출가 했더라면...하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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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知月은 운파 선생이 지어준 법호로 늘 변하는 달도
본래 둥글다는 것을 알아 마음의 본체도 그러함을 알아야한다는 뜻이다.
2) 禪行은 참선 많이 하라는 의미로 해인사 일타스님으로부터 받은 최초의 법명이
다. 좌선수행과 인연이 깊음을 알려주셨다.
3) 백봉선사의 보림선원과의 인연은 20년간을 거쳐서 지속되어 운파 선생의 지도아
래 수행하였다. 아쉽게도 1년차이로 백봉선사를 뵙지는 못했으나 눈 앞에 뵌듯
그 눈빛 사모함이 절절하다.
4) 벽산 老師는 성철스님과 함께 수학하던 도반으로 경남 진해로 은거하여 후학을
양성하신 분이다.
5) 화개선원 常光 선원장은 지월의 눈비늘 하나를 떼어준 분으로 부모와 같이 존경
하는 분이다. 지금 내가 쓰는 이 마음이 바로 衆生心이자 一心임을 깨닫게 해주
신 분으로 선원장께서 주신 작은 불씨를 잘 보존하고 長養하고 있다.
6) 내 기억 어딘가에 만약 내가 스님이 되었더라면 하고 발원했던 기억을 살려서
그간 살아온 내 삶의 궤적을 시간에 따라 나열하고 스님의 삶처럼 덧칠해 보았
다. 덧칠은 무상할 것이나 그 발원의 흔적은 역력할 것이다.
이생의 기억과 발원을 여기에 싣고 흔적을 남기게 되어 참으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