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박가 제6장 약(藥)건도를 마치며
부처님 전법 초기의 불교교단의 형성에 나타나는 큰 특징은 첫째,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누구든지 구도의 마음만 있다면 출가가 허락되었습니다. 둘째, 생활방식에 있어 재가자에게 의존하되 생산 활동을 하지 않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초기의 불교 출가자는 사의법(四依法)의 생활원칙을 지켜왔습니다. 4의법은 분소의·걸식·수하좌·진기약(糞掃衣·乞食·樹下坐·陳棄藥) 등을 말합니다. 이것은 무소유를 원칙으로 하는 삶의 방식으로서 출가자들은 신·구·의(身·口·意)에 있어 다른 종교의 수행자와는 차별되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불교교단의 청정성을 유지해 나갔습니다. 셋째, 화합과 평등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평등이란 부처님의 법을 들을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이자, 공양을 똑같이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인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사실상 불화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에 부처님께서는 ‘마치 우유와 물이 섞이듯 화합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교단 형성의 초기에 출가자들은 진기약으로 질병을 치료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교단의 구성원들이 많아지면서 여러 가지의 다양한 질병들이 출가자들 사이에서 발생하게 되자 부처님께서는 허용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약품에 대한 계율을 시설하셨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약은 당시 민간에서 약으로 간주되는 음식이었던 버터기름, 신선한 버터, 기름, 꿀, 당밀 등으로서 이후 여러 가지 약들에 대한 규정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이 약들도 보관기간은 최대 7일을 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약이기도 하였지만 또한 음식으로도 볼 수 있었기에 오랜 기간 소유하게 되면 상할 수도 있고 또 음식에 대한 탐심이 일어나 수행에 방해가 될 수 있던 때문으로 보입니다. 또 금은으로 만든 의료도구가 사용되자 값비싸거나 화려한 의료도구는 ‘수행자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하시며 금지하시고 적절한 도구들을 지니고 사용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약건도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의미있는 사건들은 릿차비 족의 영토인 베살리(바이샬리)에서 당시 가장 유명했던 기녀 암바빨리의 공양과 자이나교도였던 씨하장군의 귀의 사건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암바빨리는 기녀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처님께서는 이 기녀의 공양청을 받아들입니다. 이에 릿차비족의 부호들은 부처님께 자신들의 공양을 받아달라고 청하지만 부처님은 선약이 있어 공양을 받지 않으시고 법문으로 교화하십니다. 이들 릿차비인들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던 자이나교의 제자가 바로 씨하장군입니다. 씨하는 부처님께서 베살리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부처님을 뵙고자 하였지만 그의 스승인 니간타 나타풋따는 두 번이나 만류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을 찬양하고 칭송하는 소리가 계속 주변에서 들려오자 씨하는 어느 날 부처님을 찾아뵙고 자기가 알고 있던 업설에 대하여 부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부처님께서 씨하의 질문에 답을 주시는 동안 씨하는 자신의 스승 니간타 나타풋따로부터 배웠던 업설이 틀리고 부처님의 업설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 부처님께 귀의하고자 하는 마음을 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의 귀의를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그대처럼 잘 알려진 사람이라면 숙고하여 행하라.”고 말씀하시지요. 이 말을 들은 씨하는 오히려 더 큰 신심을 냅니다. 이교도의 경우 씨하같은 사람이 제자가 되면 깃발을 들고 나서서 알릴 것이기 때문이었지요. 계속되는 씨하의 간청에 부처님은 씨하의 스승인 “니간타 나타풋따와 그의 수행자들(니건자)에게도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똑같이 공양하고 보시하라.”는 조건을 달고 재가신자로 받아들입니다. 아마 오늘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깃발이 아니라 온갖 매스컴에 유력인사가 제자가 된 사실을 떠벌렸을 것입니다. 재가신자가 된 씨하는 부처님과 제자들을 위한 공양을 준비하면서 신선한 고기를 준비합니다. 율장대품의 주석에 의하면 신선한 고기란 ‘돈을 가지고 시장에 가서 일상적으로 발견된 허용된 고기’입니다. 그러나 유력한 신자를 잃었다고 생각한 니건자들은 “씨하가 커다란 짐승을 죽여서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공양하였는데, 수행자 고타마가 그 사실을 알고서도 고기를 먹었으니 업보를 받아야 한다.”고 소문을 내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씨하는 “자기는 의도적으로 뭇 삶의 목숨을 빼앗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부처님을 공양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부처님은 소문의 진위 여부를 물으신 후 삼정육(三淨肉) 즉 자신에게 공양된 고기가 자기를 위하여 살생된 것이라고 보았거나, 들었거나, 의심되어지는 것이 아닌 경우 육식을 허용하시게 됩니다. 사실 육식의 문제는 불교에 있어 그 청정성과 관련되어 많은 논란이 있어 왔습니다. 때로는 육식을 하는 스님의 경우 그 청정성에 대하여 의심을 품는 사례도 많지요. 그러나 이 경우에서 보듯 부처님께서는 육식과 관련하여 삼정육의 경우에는 허용하셨으며 또 몇 가지 혐오심을 일으키는 고기를 제외하고는 공양을 받는 것을 금지하지 않으셨습니다. ‘육식을 하면 자비의 종자를 끊는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육식과 채식의 문제로 스님들을 ‘큰스님이네, 아니네’ 라고 판단하는 것은 좀 성급해 보이지 않을까요?
불기 2559년 11월 11일 신광 정기선
첫댓글 그분의 존안을 보기만하여도
그분의 말씀을 듣기만 하여도
그분의 행동을 보기만 하여도
이해가 되고, 공경심이 생기고, 발심이 되며, 맑은 눈이 되는 분이라면
세상의 그 무엇을 올려 공양을 올려도 아깝지 않을 것인데요..
늘 그분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