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박가 제7장 까티나(迦絺那, Kaṭhina)건도를 마치며
까티나옷은 한역으로 음사하여 가치나(迦絺那)라고 부르며, 견의(堅衣), 견고의(堅固衣) 또는 공덕의(功德衣)라고도 부릅니다. 이 까티나옷은 3개월의 안거 기간 열심히 수행을 마친 수행승들에게 중 법납이 높은 순서에 따라 차례로 주어지는 특별한 옷입니다. 당시까지 스님들에게 허락된 의복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삼의(三衣)인 승가리(僧伽梨,Saṃghāti)·울타라승(鬱多羅僧,Uttarāsaṅga)·안타회(安陀會,Antarvāsa)로서, 제일 속에 안타회를 입고 그 위에 울타라승, 맨 위에 승가리를 입는데, 승가리는 대의(大依)이며 겉면에 드러나 보이기에 일반적으로 가사라 하면 승가리를 의미합니다. 앞에서 ‘특별한 옷’이라 칭했던 것은 이 까티나옷은 일종의 상으로 주어지는 것일 뿐만 아니라 몇 가지 특권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 까티나옷이 성립하게 된 데에는 연유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사위성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 일단의 수행승들이 부처님을 뵈러 사위성으로 가는 도중에 안거에 들게 되었습니다. 이 수행승들은 안거를 마친 후에 자자를 행하고 부처님을 뵈러 가는 도중 큰 비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가사가 비에 젖어 몸에 달라붙고, 흙탕물이 튀어서 더러워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벌옷이 없던 이 수행승들은 그 젖은 상태로 부처님을 뵙게 되었고 이를 살펴보신 부처님께서는 안거 기간 수행을 열심히 한 수행승들에게 까티나옷 즉 여벌옷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사실 요즘도 내의를 잘 입지 않는 곳이 많은 인도이니 예전에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비에 젖은 옷이 몸에 착 달라붙어 있게 되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옷매무새도 망가지고 몸의 굴곡도 드러나 위의(威儀)도 떨어지게 되지요. 청빈과 근엄함을 갖추고 재가신자를 만나야 할 수행승들이 비록 분소의라 할지라도 몸에 달라붙은 옷으로 인해 재가신자들로부터 놀림을 받을 우려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선 까티나옷은 안거 이후 재가신자가 보시한 옷을 여법하게 성립시키는 과정을 거쳐야 하며 4~5개월간 이 옷을 착용할 수 있습니다. 이 까티나옷의 성립은 총명하고 유능한 수행승의 제안과 제청을 통한 백이갈마(白二羯磨)를 침묵으로써 동의할 때 성립됩니다. 이때 까티나옷과 관련하여 몇 가지 완화되는 계율이 있는데 이를 까티나 특권이라 부르며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승단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탁발을 위해서 가정을 방문하는 것이 허용되며, 둘째, 삼의(三衣)를 걸치지 않고도 탁발을 갈 수 있으며, 셋째, 별중(別衆: 기존의 승단 안에서 네 명 이상의 수행승이 한 당파가 되어 행동하면 승단의 파괴와 연결될 수도 있기에 금지하고 있음)으로 공양의 초청을 받을 수 있으며, 넷째, 삼의를 만들기 한 가상의(假想衣)를 신자들로부터 조달받지 않아도 되며, 다섯째, 어떤 방식으로든 승단에 옷이 생겨나면 그것은 죽은 수행승의 것이라도 받을 수 있는 것 등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립된 까티나 옷일지라도 그 입을 특권이 해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떤 경우이든 결계의 밖으로 나가서 까티나옷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결계의 안에서도 여러 가지 조건에 맞는 경우에만 이 까티나 특권이 유지되는 것이기에 부처님께서는 이 특권의 해제에 대해 세세히 말씀하셨습니다.
어쨌든 이 까티나옷은 여법한 안거수행을 마친 수행승들에게 재가신자들이 수행의 공덕을 찬양하며 드리는 옷이기에 공덕의(功德衣)인 것이지요. 요즘도 미얀마를 비롯한 남방불교권에서는 우안거가 끝난 후 한 달간 가사불사(袈裟佛事)공양의례가 전국의 사찰에서 대단위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불기 2559년 12월 26일 신광 정기선
첫댓글 여법한 안거수행의 결과로 그 공덕이 찬탄되며, 재가불자들로부터 가사불사 공양의례가 행해지는 것이네요.
예전에 해인사 선방에서 해제가 되면 선방 일주문앞에 기다리고 서서 '이번에는 누가 도를 깨치셨나?'하고
기대가 만발하였다고 합니다. 수행승과 외호 재가자의 장엄한 광경입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 을 다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