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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개의 키워드로 쓴 복음 (11) 에필로그
당신의 복음에 대한 평가
1980년대 후반에 내가 홍콩에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화려한 홍콩의 밤거리Nathan Road에서 열성적인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롤렉스 시계를 사실래요?” 나는 특별히 롤렉스 시계를 사고 싶지는 않았지만 시계 판매상이 팔 가격을 말하자 호기심이 일어났다. 비행기에서 막 내리자마자 세기의 거래를 발견했다!
물론 그가 팔고 있던 것은 진짜 롤렉스 시계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짝퉁 시계들”은 손목에 착용해보고 싶을 정도로 좋아 보였다. 내가 돈을 지불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 가짜 제품이 얼마나 겉만 멀쩡하고 부실한 것인지를 발견했다. “어라, 시침이 거꾸로 가네?”
아시아에 수년 동안 살았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가짜 상품에는 상당한 전문가가 되었다. 가짜 상품들은 진짜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기대하던 대로 작동하는 예는 거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해적판 영화는 초점이 맞지 않아 흐릿하며, 가짜 핸드백은 비에 젖으면 변색되고, 고급 펜은 언제든지 잉크가 새어나올 수 있다.
동일한 이야기가 가짜 복음에도 해당된다. 그것들은 진짜 복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역사하지 않는다. 그 가짜 복음은 당신에게 자유를 주지 못하며, 영구한 평화를 가져다 주지도 못하며, 그리고 그런 복음으로부터 나오는 기쁨은 이내 바닥난다.
가짜 복음을 사게 되면 멀지 않아 당신은 스스로 의심, 채무의식, 의무, 그리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복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는 잘못된 상표가 붙여 팔린 나쁜 복음이라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가짜 복음을 알아보겠는가? 가짜 복음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다. 가짜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거저 주신 것에 대해 값을 지불하라고 한다. 사람들을 고객처럼 대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부자들에게 줄 것을 요구하는 복음은 가짜다. 가짜 복음은 우물에 독이 있는 것과 같고 사랑 가운데 갈고리가 달린 것과 같다.
가짜 복음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가짜 복음을 구매했다. 그들이 구입한 메시지는 진짜처럼 보이지만 명백하게 열등한 것이다.<!--[if !supportFootnotes]-->[1]<!--[endif]-->
지난 수년 동안 내가 만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거저 주신 것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만약 당신이 이 사람들에게 은혜에 관하여 질문한다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네, 맞습니다. 저는 은혜로 구원 받았지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통하여 그들이 보여주는 바는 하나님의 은혜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은혜가 그들로 하여금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했지만, 이제 그것을 마치는 것은 자신들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성령으로 시작했지만 인간의 노력으로 자신들의 목표를 얻으려고 애쓰고 있다(갈 3:3). 구원 받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대신에, 그들은 구원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누군가 당신에게 말하기를 만약 당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먼저 어떤 것을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요구를 받아주지도 않으시고 복을 주지도 않으신다고 할 때, 당신이 받은 것이 바로 가짜 복음이다. 인간이 만든 종교라고 하는 화려한 홍콩의 밤거리를 걸어가다 보면, 당신은 적당한 가격에 거룩해지고 의롭게 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죄를 고백하기만 하면 당신은 용서를 받습니다. 죄에서 돌이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받아주실 것입니다.”
육신적 기독교의 가게 진열창을 훑어보면 당신은 다음과 같은 라벨이 붙은 치장된 죽은 행실을 볼 것이다: 책임, 선행, 선교, 절제, 씨 뿌리기(심기), 투자하기. 내가 이런 것들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반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당신이나 내가 하나님을 위해 하는 일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 거짓말이다.
이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당신의 지위를 더 높이기 위해 당신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다(갈 2:21)”고 말하는 셈이다. 사실상 당신은 예수님을 거짓말쟁이라고 부르는 것이며(예수께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으므로), 당신 자신을 구세주와 동급으로 올리는 것이 된다(“예수님도 나의 도움이 필요해”).
가짜 롤렉스 시계가 내국인이 아니라 관광객들에게 팔리는 것처럼, 가짜 복음은 죄인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 팔린다. 죄인들은 수도꼭지에서 바로 나온 순수한 은혜라는 진품을 받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규칙에 바탕을 둔 전통이라는 독성이 있는 수도관에서 쏟아지는 오염된 은혜를 얻는다. 죄인들은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얻는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은 이에 대해 값을 지불할 것을 요구 받는다.
목회자의 자녀로서 성장하여 네 자녀를 둔 어떤 어머니가 은혜에 대하여 쓴 내 기사를 읽고 나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내왔다:
저는 교회에서 성장해 왔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같은 복음은 나를 위한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것은 늘 가장 나쁜 죄인을 위한 것이었지요. 바로 그런 사람이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한 것이지, 우리처럼 신앙 가운데서 성장한 사람들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바른 행동을 해야 하고, 이런 “값싼 은혜”는 가까이 하지 말라는 기대 속에서 살았지요. 하나님의 은혜는 나를 포함하여 만민을 위한 것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이런 종류의 메시지를 늘 받는다. 그런 메시지는 오랫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오면서, 은혜는 죄인뿐 아니라 모든 믿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서 놀란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온다. 당신이 그것을 알게 되면 명백해지지만, 많은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마음에는 종교라는 안개가 드리워져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볼 때마다 행위에 바탕을 둔 기독교라는 렌즈를 끼고 바라본다.
어린이 테스트
나는 결코 거창한 책을 쓰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 시작할 때 나의 목표는 신뢰할만한 진짜 복음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대개는 복음에 짐 꾸러미가 붙어오게 마련인데 그런 것 없는 진짜 복음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것은 간결하고 상큼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내가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면 늘 그렇듯이 나는 흥분하게 되었다. 각 장의 처음은 마치 보화로 가득한 방을 걸어 들어가는 것처럼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다 가져가도 좋다는 말을 듣는 것처럼 시작했다.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을 담을까가 아니라 무엇을 버릴까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책은 계획했던 것보다 더 길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것이 당신을 불편하게 하는가? 내가 너무 많은 보물을 드렸는가?
이 책을 길게 쓰기는 했지만, 복음은 아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다음과 같이 단순한 것이라는 생각엔 변함없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신다. 이게 끝이다. 바로 그것이다. 설교를 마쳤으니 여러분 머리를 숙이시고 성가대는 강단을 향하십시오. 복음은 진실로 다음과 같이 단순하다는 말은 진짜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신다. 이 세 마디의 말씀에 담긴 의미를 풀어보면서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측량할 수 없는 한계를 탐구하면서 우리는 영원토록 살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태어난 목적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막 10:15)
복음은 아주 단순하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보려면 아이와 같은 이해심이 요구된다. 복음은 그렇게 복잡하지도 않기 때문에 지혜 있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한다.
어린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않은 복음은 결코 복음이 아니다. 당신이 구매한 복음이 진짜로 신뢰할만한 복음인지 알아보고 싶다면, 아이에게 그 말을 들려줘 보라. 그들의 눈이 반짝거릴 것이다. 만약 가까이에 아이들이 없다면, 당신이 들은 복음이 예수께서 전하시고 바울이 설교한 복음과 같은 복음인지 알아보는 간단한 테스트 방법이 있다. 당신 스스로에게 다음의 네 가지 질문을 던져보라:
1. 이 복음이 나로 하여금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게 하는가?
내가 들은 복음이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아니면 내 믿음을 시작하시고 완성하시는 분에게 나의 눈을 고정하게 하는가? 그 복음은 내가 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아니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강조하는가? 그 복음은 나로 하여금 자신을 의식하게 하고 내성적이 되게 하는가 아니면 그리스도를 의식하게 하고 감사하게 하는가?
가짜 복음은 늘 당신과 당신의 노력에 비중을 둘 것이다. 그 복음은 당신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 할 것이다: “나는 기도를 해야만 해. 나는 금식을 해야 해. 나는 베풀어야 해.”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왜 그것을 하고 있는가가 문제다. 당신의 동기는 무엇인가?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나 죄책감을 피하기 위해서 그 일을 하는가? 좋은 인상을 주고 복을 받기 위해서 그 일을 하는가? 동기가 가장 중요하다.
때때로 종교는 미묘한 면이 있다. 종교는 왜 당신이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이유를 뚜렷이 설명해주지 않으면서 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교활한 세일즈맨처럼 종교는 가격표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어떤 것을 당신에게 팔려고 한다. 나중에서야 당신은 그 진짜 가격을 알게 된다.
기억하라. 은혜에는 가격표가 달려있지 않다. 하늘나라에 있는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때문에 우리에게 온다. 당신이 무엇을 하고 하지 않고는 절대적으로 이것과는 무관하며, 다만 당신이 하나님의 선물에 대해 값을 지불하려고 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할 뿐이다.
진정한 복음 설교자는 항상 예수님에 대해서 좀 더 많이 나타내려고 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목적과 성품을 최고로 잘 드러내시는 분이시다. 예수께서는 은혜가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시다. 예수님을 드러내지 않은 모든 메시지는 무기력한 대용품이요, 육체적 소풍a flesh-trip이요, 낭비된 기회다. 예수님께는 필적할 상대가 없으시며 그 무엇도 주님과 비교될 수 없다. 주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오신 지혜요 나는 다른 어떤 것도 자랑하지 않을 것이다(고전 1:30~31).
그 테스트가 이것이다: 진짜 복음은 그리스도 한 분 만으로 전적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도록 당신을 이끌어갈 것이다. 당신이 주님의 이름을 믿을 수 있도록 당신을 격려하여,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위험을 무릅쓰고 행동하게 한다. 반대로, 가짜 복음은 당신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하는 활동을 장려하는데, 그것은 불신앙의 표현이다. 진짜 복음은 점점 더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지하도록 만들 것이지만, 가짜 복음은 육체에게 영광을 돌려서, 당신의 의지력이나 당신이 가지고 있는 자원, 그리고 총명함을 앞세운다. 진짜 복음은 항상 당신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지만, 가짜 복음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리스도께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 거짓 복음은 사람을 칭송하는 결과를 낳지만, 진실된 복음은 항상 마리아처럼 당신으로 하여금 주님을 높이게 하고 당신의 구주이신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해준다(눅 1:47).
2. 이 복음은 나에게 죄를 이길 힘을 주는가?
내가 듣고 있는 복음이 나로 하여금 죄를 의식하게 하여 정죄감에 빠지게 하는가, 아니면 십자가를 생각나게 하여 결백을 확신하게 하는가? 그 복음은 나 자신의 힘으로 죄를 이기라고 밀어붙이는가, 아니면 경건하지 않은 일에 대하여 내가 강하게 거부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는 은혜로 나를 이끄는가?
죄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문제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죄책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나는 비교적 자주 듣는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변화되고 싶어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기에는 무기력함을 느낀다.
교회 안에서 죄를 다루는 두 가지 방식이 있음을 나는 알았다: (1)율법을 설교하라 또는 (2)은혜를 드러내라. 율법에 근거한 메시지는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인간의 힘으로 애쓰도록 육신을 자극한다. 이런 접근법이 본질적으로 결함이 있는 까닭은, 율법의 목적이 죄를 자극하여 불을 붙이는 것이지 죄를 소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롬 7:5). 율법은 원래 의도된 바와 같이 정죄를 일으켜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확신이라고 오해한다) 사망을 부여한다(고후 3:7~9).
반대로 은혜의 복음은 당신의 모든 죄가 단번에 모두 처리된 십자가를 당신에게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그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당신의 새로운 신분을 알려주어 당신으로 하여금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할 것이다.
당신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아니다. 당신은 걷는 법을 배우고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당신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던 옛 소프트웨어는 십자가에 못박혔다. 당신은 이제 예수님과 동일한 기호와 소욕을 갖게 되었다. 과거의 습관은 율법을 수행함으로써가 아니라 당신 자신을 그리스도께 대하여 살아 있는 자로 간주함으로써 처리된다. 다시 한번 초점은 당신이 아니라 예수님이시다. 예수께서는 모든 면에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시다. 당신이 예수님 안에서 안전하게 쉬기를 배우고, 옛 언약이라는 선동자의 위협에 흐트러지지 않게 됨에 따라서, 당신은 경건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거절할 수 있는 은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그 테스트가 있다: 가짜 복음은 자랑 삼아 죄를 반대하지만 실은 죄를 유발시킬 뿐이다. 반대로, 진짜 복음은 죄를 소멸시키는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강조할 것이다. 가짜 복음은 죄 용서를 위해 당신으로 하여금 노동을 하게 할 것이고 그 후에도 당신에게는 가책과 죄책감을 남긴다. 그러나 진짜 복음은 당신의 죄를 결코 기억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용서를 알려준다. 가짜 복음은 당신으로 하여금 부정직의 가면을 쓰게 하며 교회 안에 사기꾼으로 가득하게 한다. 그러나 진실한 복음은 투명한 정직을 장려하며 급진적 변화를 알리는 간증으로 교회를 채운다.
3. 이 복음이 평안과 기쁨을 주는가?
내가 듣고 있는 메시지가 나에게 근심과 불안감을 주는가 아니면 초자연적인 평안과 기쁨으로 나를 충만하게 하는가? 그 복음은 나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위하여 내가 이행해야 할 책임을 강조하는가 아니면 그리스도께 대하여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는가?
모든 그리스도인이 죄와 씨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단지 분투하고 있다. 그들은 옳은 일을 하려고 애쓰고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힘쓰고 있으며,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것은 고된 일이며 그들은 지쳐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한 교회의 기둥처럼 보이지만 일들을 붙들고 있는 데 중압감을 느끼고 있다. 사람들의 기대감이라는 거룩하지 않은 부담 아래서 그들이 금이 가고 부서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안쓰럽다. 그들은 주님을 섬기려는 자신들의 소욕에 있어서는 진지하다. 그리고 그들은 어린 벌처럼 바쁘게 일하는 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곤충이 아니다. 히브리서 4:10에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그러나 이 사람들은 쉴 여가가 없다. 해야 할 일들뿐이다. 그들에게는 참석해야 할 모임이 있고, 운영해야 할 프로그램이 있으며, 가야 할 곳이 있으며,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천국에 가면 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현재 하는 속도로 보면, 훗날이 아니라 곧 그렇게 될 것 같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안과 희락이다(롬 14:17). 만약 당신이 듣고 있는 메시지가 예수님과 예수께서 주시는 의로움의 선물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그와 함께 오는 평안과 기쁨을 당신은 결코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이 테스트는 실제로 의로움에 대한 것이다: 당신은 주님의 의로우심 안에서 안식을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당신의 의로움을 쌓기 위한 점수를 벌기 위해 애쓰고 있는가? 짝퉁 복음은 당신으로 하여금 의로움을 만들어내기 위해 선행과 올바른 삶을 힘쓰라고 하지만 당신에게 남는 것이라고는 마르다와 같은 스트레스뿐이다. 당신은 다음과 같이 궁금해 할 것이다: 나의 기쁨이 어디로 간 것일까? 내가 그리스도와 결혼함으로 오는 웃음은 왜 사라졌는가?
여기에 그 테스트가 있다: 당신이 예수님을 위해 하고 있는 일을 그만 두면 죄책감을 느낄 것 같은가? 당신이 죄를 범하거나, 헌금을 못 드리거나, 교회 예배를 빼먹으면 어떨 것 같은가? 당신은 죄책감을 느낄 것 같은가? 내가 당신에게 이런 일들을 해 보라고 권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죄책감이나 정죄의식과 씨름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가짜 복음을 구매한 사람들은 지속적인 평안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자기가 할 몫 이상의 일을 했음에도 그들은 불안한 마음에 제대로 쉬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충분한 걸까? 주님께서 기뻐하실까? 좀 더 해야 하지 않을까?
바울은 자신이 쓴 모든 편지의 첫머리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의 은혜는 평안의 보자기에 포장되어 내려 온다. 당신이 은혜를 받으면 자동적으로 평안을 받게 되며 당신의 영혼은 안식을 찾게 된다. 당신이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신뢰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당신의 마음을 지켜주는 하나님의 평안을 갖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을 죄가 되게 하신 것은 그분을 통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을 당신이 알게 되면, 당신은 기쁨도 갖게 된다.
천사가 옳았다 - 복음은 그것을 받는 사람들 모두에게 큰 기쁨을 가져온다. 복음은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아픈 자에게 건강을, 그리고 죽은 자에게 생명을 가져다 준다. 복음은, 항상 그랬던 것과 같이, 당신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죄와 씨름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내가 들은 것처럼, 나는 또한 이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말도 듣는다. 두 번째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모두 독특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이 다 공통으로 갖고 있는 이야기는 그들이 다 기쁨으로 충만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웃음의 옹달샘이며 그들은 자신들의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들은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다: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이사야 12:1~3)
가짜 복음은 당신을 쉼 없이 방황하는 사람으로 만들 것이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남길 것이다: “내가 충분히 했을까?” 그러나 은혜의 복음은 주님의 의로우심 안에서 당신으로 하여금 쉼을 얻게 하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안정감을 갖게 하며, 평안과 기쁨이 흘러 넘치게 한다.
4. 이 복음이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
내가 듣고 있는 복음이 나를 무거운 짐으로 묶는가, 아니면 쉽고 가벼운 멍에를 주는가? 나로 하여금 계명들을 지키라고 강요하는가, 아니면 나를 위하여 그 계명들을 완성하신 분을 신뢰하라고 하는가? 나를 의무와 책임의 줄로 얽어 매는가, 아니면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라는 드넓은 하늘 아래서 춤 출 수 있는 자유를 주는가?
모든 복음은 자유를 약속하지만 가짜들은 결코 구원하지 못한다. 은혜 더하기 노력이라는 독이든 혼합물을 삼킨 사람들은 바울이 다음에 경고하는 바와 같이 또다시 노예의 멍에라는 짐을 지게 된다: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갈 4:8~9)
갈라디아 사람들처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복음”이라는 노예제도에 팔려갔다(갈 1:6). 그들은 다음과 같이 우리를 묶고 말하는 율법의 포로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자유라는 선물은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주어지는 것이다, 주님의 구원은 오늘이 아니라 내일 오는 것이다. 그들이 들어 온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만일 수고하고 문제에 휩쓸리지 않는다면 언젠가 당신은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축복이 먼 미래로 연기될 때, 현재에 남아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규칙과 전통의 굴레에서 종 노릇하게 된다. 약속의 땅이 다만 약속뿐이라면, 노예들은 이집트에 그대로 머무를 것이다.
진정한 복음은 주의 영이 있는 곳에는 자유함이 있다고 선포한다. 그러나 그 때는 당신이 죽을 때가 아니며, 내일이 아니며, 바로 오늘이다. 하나님의 뜻은 당신이 지금 여기서 하늘나라의 자유를 경험하는 것이다.
은혜를 전하는 진정한 설교자는 당신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격렬하게 싸울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과 자유를 당신으로부터 빼앗아가려는 어떤 가르침이나 교리라도 박살낼 것이다. 그리고 그는 모래 위에 선을 긋고 당신으로 하여금 은혜 아닌 것으로부터 은혜를 구별할 수 있게 할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바울처럼 다음과 같이 외칠 것이다:
우리가 가진 것은 자유다-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자유민처럼 굳게 서라. 그리고 다시는 자신을 종이 되게 하지 말아라. (갈 5:1-GNB)
여기에 그 테스트가 있다: 가짜 복음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리스도께 빚 진 것이 있다고 느끼도록 할 것이다. 그 목적은 당신을 종신 노예계약으로 묶어 두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복음은 당신에게 빚은 모두 탕감되었다는 복음을 알려주며 당신 대신에 무거운 짐을 들고 가신 구세주를 소개함으로써 당신을 묶고 있는 이 쇠사슬을 벗겨준다. 가짜 복음은 당신으로 하여금 독재자와 교활하게 속이는 자의 표적이 되게 하는 권위를 두려워하라고 당신을 가르친다. 그러나 진정한 복음은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당신은 값을 주고 산 것이 되었으니 다시는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전 7:23). 가짜 복음은 규칙과 규범이라는 벽으로 당신을 둘러싸서 옥살이를 하게 할 것이지만, 진짜 복음은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만일 아들이 너희를 자유하게 하면, 너희는 참으로 자유하게 되리라”(요 8:36).
당신의 복음을 평가하라
그렇다면 당신의 복음은 괜찮은가? 당신이 위의 네 가지 질문에 대하여 “아니오”라고 정직하게 대답한다면, 당신은 독이 든 복음에 팔린 셈이다. 그것이 당신을 죽이기 전에 버려버리라! 그러나 메시지를 전해 준 사람을 비난하지는 말라. 가짜 복음을 전하곤 했던 사람으로서 내가 아직도 그런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줄 것이라고는 은혜뿐이다. 그들 대부분은 당신이나 나만큼 주님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그들을 사랑하되 그들의 메시지에는 귀를 기울이지 말라. 즉, 당신을 은혜에서 멀리 떠나가게 인도한다면 듣지 말라는 말이다.
위의 네 가지 질문에 대한 당신의 대답이 “예”라면, 기뻐하라. 당신은 순수하고 희석되지 않은 은혜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신뢰할만한 복음을 붙들고 있으며 당신은 성공할 것이다.
당신이 들은 가장 최고의 소식
자비(은혜)와 무자비는 섞이지 않는다. 당신은 어떻게 신뢰할만한 복음을 알아보는가? 그것은 100% 좋은 소식이다. 복음에는 나쁜 소식이 하나도 없다. 그 선물에는 가격표가 없으며, 주님의 사랑에는 갈고리가 없고, 그 빛에는 어두움이 없다. 복음은 무엇을 선포하는가? 그리스도와 연합한 당신은 사랑 받는 자요, 용서 받은 자요, 구원 받은 자요, 용납된 자요, 거룩한 자요, 의롭게 된 자요,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새롭게 된 자요, 왕이다. 복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소식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은혜의 복음이 가지는 열 가지 면을 살펴보았다. 그것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if !supportLists]-->1. <!--[endif]-->복음은 당신의 사랑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는 권유가 아니다. 복음은 당신의 하늘 아버지께서 영원한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열렬한 선언이다.
<!--[if !supportLists]-->2. <!--[endif]-->복음은 자기반성soul-searching과 흠을 찾는 일에 관여하라는 호소도 아니다. 복음은 어린 양의 피로 말미암아 당신이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용서되었다는 강력한 선언이다.
<!--[if !supportLists]-->3. <!--[endif]-->복음은 단순히 천국 가는 티켓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구원과 풍성한 생명으로 당신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if !supportLists]-->4. <!--[endif]-->복음은 천국의 보물을 받으라는 광고전단지가 아니다. 복음은 당신의 영혼을 사랑하시는 분이 당신과 영원히 하나되는 결혼생활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함께 하고 싶어하신다는 흥분되는 계시다.
<!--[if !supportLists]-->5. <!--[endif]-->복음은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하는 초청이 아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용납하신다는 놀라운 선언이다.
<!--[if !supportLists]-->6. <!--[endif]-->복음은 성화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신청서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이 참으로 거룩한 사람이라는 최종적인 선언이다.
<!--[if !supportLists]-->7. <!--[endif]-->복음은 영생을 물려받기 위해서 당신이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 아니다. 복음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당신에게 필요한 의로움이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어졌다는 축복된 선언이다.
<!--[if !supportLists]-->8. <!--[endif]-->복음은 나쁜 사람들을 위한 개선 프로그램이 아니다. 복음은 죽은 자들을 위해 새 생명이 주어졌음을 알리는 해방선언이다.
<!--[if !supportLists]-->9. <!--[endif]-->복음은 당신의 낡고 깨어진 삶이 무한히 늘여지리라는 설익은 희망이 아니다.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당신의 이전 것은 지나갔고 새 것이 되었다는 즐거운 선언이다.
<!--[if !supportLists]-->10. <!--[endif]-->복음은 당신의 사후에 당신이 통치하고 왕 노릇하리라는 애매한 개념이 아니다. 복음은 왕의 통치가 믿음의 영역 안에서 실현된다는 왕의 선언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2,000년 전 은혜가 사람이 되어 오신 분께서 나사렛에 살던 어떤 사람들에게 선포하셨다. 이 책의 끝부분에 오게 되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회당에 앉아 있는 우리들 자신을 상상해 보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눅 4:18~19, 21)
복음은 당신이 들은 가장 좋은 소식이다. 복음은 당신이 누구든지 간에 또는 당신이 어디에서 왔든지 간에, 오늘이 당신의 구원의 날이요 지금이 주님의 은혜의 해라고 선포한다.
사랑 받는 자로 살아가는 삶의 모험이 이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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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supportFootnotes]-->[1]<!--[endif]--> 한 유명한 설교자가 “80~90%의 그리스도인들이 은혜의 복음을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을 나는 들은 적이 있다. 또 다른 저명한 설교자는 그 수치를 95%까지 올려 잡았다. 이는 놀랄만한 수치지만, 슬프게도 그 수치들이 정확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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