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단경(六祖壇經)』의 선정(禪定)
①인종(仁宗)이 다시 물었다.
“황매산의 오조(五祖)께서 법을 부탁하실 때에 무엇을 가르쳐주셨습니까?”
혜능이 말했다.
“가르쳐 주신 것은 없습니다. 다만 견성(見性)을 말할 뿐이고, 선정(禪定)과 해탈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인종이 물었다.
“왜 선정과 해탈을 말하지 않습니까?”
혜능이 말했다.
“그것은 이법(二法)이어서 불법(佛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법은 둘 아닌 법입니다.”
(宗復問曰: “黃梅付囑 如何指授?” 能曰: “指授卽無. 唯論見性, 不論禪定解脫.” 宗曰: “何不論禪定解脫?” 謂曰: “爲是二法 不是佛法. 佛法是不二之法.”)
②“여러분, 무엇을 일러 좌선(坐禪)이라 하는가?
이 법문(法門) 속에서 장애가 없어, 밖으로 모든 좋고 나쁜 경계에서 마음에 허망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일러 좌(坐)라고, 안으로 자기 본성을 보아 흔들림 없는 것을 일러 선(禪)이라고 한다.
여러분, 무엇을 일러 선정(禪定)이라 하는가?
밖으로 분별된 모습을 벗어나는 것이 선(禪)이고, 안으로 시끄럽지 않은 것이 정(定)이다.
밖으로 만약 분별된 모습에 집착하면 안의 마음이 곧 시끄럽고, 밖으로 만약 분별된 모습을 떠난다면 마음이 시끄럽지 않다.
본성(本性)은 스스로 깨끗하고 스스로 안정되어 있지만, 단지 밖으로 경계를 보고 경계를 생각하기 때문에 시끄럽다.
만약 온갖 경계를 보고서도 마음이 시끄럽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참된 정(定)이다.
여러분, 밖으로 모습을 떠나는 것이 선(禪)이고 안으로 시끄럽지 않은 것이 정(定)이니, 밖으로 선(禪)하고 안으로 정(定)하면 곧 선정(禪定)이다.
『유마경』에서는 ‘즉시 통하여 본심(本心)을 되찾는다’고 하였고, 『보살계경』에서는 ‘나의 본성은 원래 스스로 깨끗하다’고 하였다.
여러분, 매 순간 스스로 본성이 깨끗함을 보고 스스로 닦고 스스로 행하면, 저절로 불도(佛道)가 이루어질 것이다.”
(善知識, 何名坐禪? 此法門中 無障無礙, 外於一切善惡境界 心念不起 名爲坐, 內見自性不動 名爲禪. 善知識, 何名禪定? 外離相爲禪, 內不亂爲定. 外若着相 內心卽亂, 外若離相 心卽不亂. 本性自淨自定, 只爲見境思境卽亂. 若見諸境 心不亂者, 是眞定也. 善知識, 外離相卽禪 內不亂卽定, 外禪內定 是爲禪定. 『淨名經』云: ‘卽時豁然 還得本心.’ 『菩薩戒經』云: ‘我本性元自淸淨.’ 善知識, 於念念中 自見本性淸淨 自修自行, 自成佛道.”)
③설간(薛簡)이 말했다.
“서울에 있는 선승(禪僧)들은 모두 말하기를 ‘도를 알려고 한다면 반드시 좌선하여 선정(禪定)을 익혀야 한다. 선정을 익히지 않고 해탈을 얻은 자는 아직 없었다.’고 하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법은 어떻습니까?”
혜능이 말했다.
“도는 마음으로부터 깨닫는 것인데, 어찌 앉는 것에 있겠는가? 경전(『금강경』)에서 말했다. ‘만약 여래가 앉거나 눕는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삿된 도(道)를 행하는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여래는) 어디에서 오지도
않고 어디로 가지도 않기 때문이다.’ 생겨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이 여래의 깨끗한 선(禪)이요, 모든 법이 텅 비어 고요한 것이 여래의 깨끗한 좌(坐)이니, 결국 깨달을 것도 없다. 하물며 어찌 앉겠는가?”
(薜簡曰: “京城禪德皆云: ‘欲得會道 必須坐禪習定. 若不因禪定 而得解脫者 未之有也.’ 未審師所說法如何?” 師曰: “道由心悟, 豈在坐也? 經云: ‘若言如來 若坐若臥 是行邪道. 何故? 無所從來, 亦無所去.’ 無生無滅 是如來淸淨禪, 諸法空寂 是如來淸淨坐, 究境無證. 豈况坐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