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제가 가르친 내용 중에서 일부를 여기에 올립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과 수가 마을에 살던 사마리아 여자의 대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분의 대화는 '사람을 영원히 목 마르지 않게 하는 생수'에 대한 대화로 전반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9절이 후반부로 넘어가는 문지방이 됩니다. 그 여자가 예수님께, "당신은 내가 보니 선지자 이십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두 분의 대화는 후반부에서 예배에 관한 내용으로 넘어 갑니다.
먼저 그 여자가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 산 즉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하는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해야 된다고 한다며, 두 부족들 사이의 예배에 대한 지정학적 견해가 다름을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느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즉, 시마리아 사람들이 지어놓은 성전이 있는 그리심산이나 유대인들이 지어놓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의 시온산이나 다 그게 그거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예배의 정신이라는 뜻에서 "신령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예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리로 예배할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본문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진수는 무엇일까요? 많은 설교자들이 그 여자가 남편 다섯 명이 있는 죄인이었는데 예수를 만나서 죄를 청산하게 되었다는 조로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은 예수를 만나야 바른 삶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본문이 의도하고 있는 전체 요점인가요?
여기에서 요점은 예배에 관한 것입니다.
그 여자의 죄가 문제가 되는데, 사실은 죄는 그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고 모든 사람, 인류의 문제 입니다. 그래서 그 한 여자의 죄를 질타하는 것으로 모든 인류가 정화되는 것으로 설교를 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습니다. 표본은 되겠지만,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너도 나도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죄인의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요? 남을 해롭게 하는 것인가요?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인가요? 왜 죄인을 공박하나요? 죄가 무엇이기 때문인가요?
여기에서 우리가 찬찬히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이 여자의 죄가 단편적인 죄로 끝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 입니다. 이 여자는 영적인 면에 밝은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예배해야 할 지 자기 부족의 전통을 알고 있었고 또한 다른 부족인 유대인들이 어디서 예배하고 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이 여자의 문제는 죄를 짓고 있는 것만이 아닙니다. 실은 모든 사람이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죄를 짓고 있고, 그렇지 않은 의인은 극소수 입니다.
이 여인의 진짜 문제는 남편을 다섯이나 두는 죄를 지으면서도 태연히 그리심산에서 여호와께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즉, 죄를 지으면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두 가지 행위 사이에서 통일을 보지 못하고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 여자의 진짜 문제 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예배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영과 진리의 문제라고 갈파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그 당시) 하나님이 그렇게 예배할 사람들을 찾고 계시다고 말한 것인데, 이것은 그 여자에게 참되게 예배를 드리라고 초청하신 것입니다. 39절 이하를 보고 유추해 보건데, 아마 이 여자는 그 말씀에 큰 감동을 받고 참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으로 변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즉, 예배에 대한 바른 자세가 그 여자의 생활을 바르게 잡아 주었을 것입니다.
오늘 한국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으나, 사회가 점점 타락하고 남편 다섯 있는 여자처럼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죄악은 점점 더 만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죄가 흥왕하는 것은 예배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그 원인을 짚어 볼 수가 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참 된 예배인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목회자들과 설교자들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신자)들은 가르치는 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그리심산에 있던 성전과 예루살렘에 있던 성전은 모두 무너지고 훼파되어 지금은 흔적만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정말로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가 있습니다. 즉, 성전이 없어도 예배는 계속될 수 있다는 말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예배에 신령과 진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지방. 서쪽을 바라보는 풍경. 왼쪽에 그리심산 오른쪽에 에발산.
두 산들이 만나는 부분에 셰켐이라는 고대 유적지가 있다.
그리심산 위에 있었던 성전의 기초가 발굴되어 있다. 그 위에 놓은 건물은 비잔틴 시대의 교회와 수도원 건물.
첫댓글 동의 합니다.
몇번이고 글을 읽어보고 든 생각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라고 하면서 가장 빠지기 쉬운 종교적인 오만함과 교만이 아닌가 싶습니다.
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심령으로 겸손히 살도록 하겠습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저부터 하나님 앞에 바른 예배와 삶을 드리고 있는지 되돌아 보게 됩니다. 깊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글입니다. 저도 남편을 다섯을 둔 여인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예배의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행위보다 제가 먼저 예배자가 되어야함을 느끼게 되네요. (주성규~☆)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너무 오랬만에 카페에 방문드려 죄송합니다.
맞습니다. 예배드리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이 예배 참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계시지 않고 세상의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는 예배에 젖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영과 진리의 예배 주님이 찾으시는 예배로 돌아서야 할 것 같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먼저 저부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