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이 땅에 광명이 밝아오는 날은 언제일까?’
때로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뒤 엉키고 난무하는 세상, 어쩌면 하나의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좋으면 옳은 것이다.’
하는 생각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옳고 나쁜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하나님 자녀들도 화합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잘 났으면 얼마나 잘 났을까요.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죽으면 육체는 흙이 되고 영혼은 천국 갑니다. 솔직히 허무한 인생인데 마음에 증오심을 안고 소리 지르는 세상, 사공이 많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정말 내가 하나님의 사람일까? 정말 내가 구원을 받았을까?’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천국가지 못하면 지옥 형벌 받습니다.
혀로 기도하고 찬양합니다. 또 한 혀로 헤아리고 비판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삶입니까. 내 의지대로 살다보니 화합도 어렵습니다. 회계하지 못하고 죽으면 지옥 가는데 자신의 중심으로 하나님을 믿기에 만들어지는 현상입니다. 마태복음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하고 말씀합니다.
실족의 뜻은 발을 잘못 디딤입니다. 발을 잘못 디딤으로 죽는 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을 실족케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혀를 자제해야 합니다.
우리는 온전한 자가 될 수도 없고 온전한 삶을 살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 앞에 부족한 존재일 뿐입니다. 히브리서10:22,
우리가 마음에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하고 말씀합니다. 양심의 악을,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왜 악을 깨닫는 삶을 살아야 합니까? 세례를 받고 거듭난 성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사명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려고만 합니다. 왜 살려고만 할까요. 나의 자존심이 예수를 믿는 믿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로인해 헤아리고 판단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이 강하여 죽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입으로는 하나님 은혜로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복음 증거의 삶이 무엇인지 모르는 성도도 있습니다. 천국을 사모하지만 예수의 사명이 죽는 삶임을 알지 못하는 성도도 있습니다. 그 원인은 아직도 나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을 사모하십니까. 먼저 마음을 버리십시오.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일수도 있습니다. 나는 내 죄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당신을 심판대에 두셨다면 아직도 실족한 영혼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심판대에 서지 않으려면 마음의 양심을 꺼내어 보아야 합니다. 악을 깨닫고 회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의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하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아담의 후손입니다. 원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러므로 마귀 자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구원받은 자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죄 씻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원죄를 깨달지 못하고 있다면 여전히 악한 자 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심판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욕망이 아직도 마음을 차지하고 있다면 아직도 양심을 악을 깨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직감해야 합니다.
회계하는 삶, 복음을 증거 하는 삶, 행함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삶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