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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시든들풀
기다리는 마음
수년 전에 한 아버지가 먼 여행차 집을 떠나야만 되었다. 떠나기 바로 전에 세 살 된 꼬마 녀석이 "아빠, 언제 돌아와?"하고 묻는 것이다. 이러자 아빠는 자기가9월말까지는 돌아올 수 없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놈에게 몇 월 며칠 몇 시 무슨 계절하고 설명해봤자 알아듣지도 못할 것이니 이런 얘길 해도 소용없는 것을 깨닫고서 그는 애 옆에 앉아서 얘기를 꺼냈다.
"자, 이거 봐. 저 나뭇잎 보이지? 저게 울긋불긋 해져서 저 잎들이 땅에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땐 아빠가 집에 돌아오는 거야."
다음날 아버지는 집을 떠났다. 7월과 8월 이 아이는 보모의 손을 잡고 산보를 다니곤 했다. 이렇게 산보하면서 그는 집에 안 계시는 아빠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서서히 날이 지나서 어느덧 9월 초 그리고 9월 중순에 접어들었다. 이 꼬마 소년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나뭇잎들은 단풍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큰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숱하게 떨어져 온 길바닥과 도랑을 덮었다. 다음날 아침 이 꼬마 친구. 밖을 나오자마자 이 광경을 본 것이다. 그러자 보모의 손을 뿌리치고 낙엽을 발로 하늘 높이 좋아라 차며 "야! 신난다! 아빠가 곧 오시는 거야" 하고 이 꼬마아이는 소리 소리쳤다.
마찬가지로 온 세상이 기다리는 마음으로 가득차 있다. 나뭇잎들은 단풍으로 물들어 한 잎 두 잎 낙엽으로 탈바꿈을 시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너희는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을 보거든 매우 슬퍼하라? 아니다. 용기를 내어 기뻐하라"고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의 위대한 아침이 동터오고 있으니 이는 주님의 오심이 가까워 오기 때문이다.
삶의 변화
아이언사이드 박사가 한 교회에서 종말론적 설교를 할 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설교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한 남자가 불손한 태도로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와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맨 앞자리로 나와 앉는 것이었다. 예배가 끝나자 그 사람은 아이언사이드 박사에게 다가와"은혜 많이 받았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주님의 재림을 믿습니까?" 아이언사이드가 이렇게 물었다. "예, 그러면요." 그는 즉시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재림 역시 선생을 인정하고 있습니까?" 이 말에 그는 어리둥절해 했다. "무슨 뜻의 말씀이신지요?"하고 그가 물었다.
"주님의 재림이 선생을 붙들고 있느냐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는 진리가 선생의 삶을 얼마나 변화시키고 있느냐는 뜻입니다"라고 아이언사이드는 설명했다. 그러자 경건치 못한 그 남자는 이렇게 대꾸했다. "누가 목사님께 가서 제 이야기를 한 모양이군요"
예언을 포함한 성경의 모든 진리는 우리 성도들을 성숙한 신앙인으로 세워주고, 선한 일을 해하기에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기록되었다.
얼마나 좋은 곳이기에
존이라는 청년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공하여 잘 살고 있는 그리스도의 착실한 증거자인 한 의사의 자가용 운전사였다. 그 의사는 가끔 이 존과 그의 영혼. 그리스도 영접의 필요성 그리고 내세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어느 날 그는 주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귀한 소망에 관한 얘기를 존에게 하면서 "여보게. 주님께서 오시면 자네가 내 차를 가지게나”하고 말하였다.
이에 존은 기뻐서 정중하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리고 존. 자네 부인을 데리고 우리 집에 와서 그땐 살도록 하게"하고 덧붙였다. 다시 한 번 존은 열띤 목소리로 "감사합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게다가 그의 주인은 주 예수님께서 오시면 자기의 모든 토지와 재산을 다 가져도 좋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존은 너무 좋아하면서 집에 와 자기 부인에게 자기 주인이 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은 마음이 들떠서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존은 ‘하늘나라가 얼마나 좋은 곳이면 의사 선생님이 이 좋은 집. 새 차. 그 많은 재산을 다 버리고 주님이 재림하시면 그곳으로 가겠다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그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자기 주인집으로 달려가서 문을 탕탕 두드렸다.
이에 주인이 나오자 그는 "아. 선생님. 그 자동차. 전 싫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당신의 그 집도. 당신의 그 돈도. 그리고 당신의 그 넓은 땅도 다 싫습니다." "그럼. 자네 원하는 게 뭐란 말인가."하자. 그는 "저는 구원 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저도 당신처럼. 주님께서 오실 때를 준비하고 싶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잊기 쉬운 공중혼인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음으로써 인생에 실패한 유명한 사람이 있다. 그는 영국의 화학자로서 안전등을 발명한 데이비(Davy, Sir Humphry 1778-1829)인데, 너무나도 연구에만 열중하던 나머지, 자기의 결혼식일자를 그만 잊은 것이다. 신부가 성 났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는 그날도 변함없이 연구실에서 실험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 때 사람이 찾아와 "저, 무엇 잊은 것 없으세요?"하고 물었다. "아뇨, 아무것도......" "결혼식은 어떻게 되었어요?" 이 말에 그는 비로소 화닥닥 정신이 들어 "앗! 이 일을 어떻게 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부될 사람은 "결혼식을 잊어먹는 사람이면 필요 없다"고 거절했다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그는 일생을 독신으로 보내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것은 너무나도 실험에 몰두 하다가 생긴 유명한 이야기이다.
신령한 일에 있어서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 신랑 되신 예수께서 공중에서 우리를 맞아 혼인을 베푸시려고, 우리더러 준비하고 있으라 하셨지만, 우리는 세상일에 빠져 있다가 주님의 재림 시 실패하기 쉬운 것이다. 이미 정신이 든 때는, 주께서 알지 못한다고 하시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언제나 깨어 있어야 ....
재림, 세상종말
2000년 전 초대교회에`서는 세상의 종말이 몇 해 안 남은 것으로 해석했었습니다. 5세기에 로마제국이 멸망할 때, 로마의 멸망은 곧 세계의 종말이라고 기독교는 해석했었습니다.
14세기에 유럽의 큰 전염병이 만연하여 유럽인구 3분의 1이 거의 죽은 참사가 벌어졌는데, 모든 교회는 입을 모아 그때를 지구의 종말이라고 단언하였습니다. 16세기에 전 유럽은 소위 십자군으로 농민 봉기가 일어나 대 혼란이 벌어졌습니다. 그때에도 교회들은 이제는 정말 세상의 종말이 왔다고 말했습니다. 18세기에 포르투갈에 대지진이 일어나 하룻밤 사이에 15,000명이 죽었는데 그 당시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지금은 참으로 지구의 종말이 왔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유명한 성서 신학자 벵겔도 역시 이 일에 관하여 커다란 오착을 일으켜 그도 또한 1937년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계산했는데 그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명저 "신약성서 지남"은 오랫동안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지구 종말에 대한 예언은 그 후에도 줄기차게 이어져 오늘날도 그런 말을 구체적으로 햇수까지 예언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신자들이 많이 있고 그런 것을 중심으로 교파가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제7일 재림 안식교에서는 1844년에 예수님이 재림했다고 하며 여호와의 증인은 1914년에 예수님이 재림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사람이 점치고 계산하는 따위는 어리석음을 넘어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침해이며 큰 죄악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모든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게 동에서 서편까지 번개가 번쩍함 같이 볼 수 있게 임한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오신다면
문학가 회원들이 어느 날 런던의 어떤 클럽에서 만나서 흘러간 과거의 빛났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만약 밀턴이 이 방안으로 걸어 들어온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다른 어떤 사람이 대답하기를 “그가 지상에 살아 있을 때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것을 보상하기 위해서라도 열렬한 환영으로 맞이하겠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첫 번째 사람이 “그럼 셰익스피어가 걸어 들어온다면 어떻게들 하시겠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모두 일어나서 문학과 노래의 거장으로서 그에게 영광스러운 관을 씌워야겠죠”하고 다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또 첫 번째 사람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 들어오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때 차알스 램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의 발아래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경배 드려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일을 가까이 할 때 견지해야 할 정신입니다.
집단 바보
내가 시골에서 목회할 때 한번은 이웃 교회 교인들이 흰 옷을 입고 모내기가 한창인 철에 그 논둑을 따라 산으로 가는 것이었다. 찬송을 부르며 가던 그들이 모심는 우리를 보고는 지금 모내기 같은 것은 집어 치우고 빨리 자기들을 따라 오라는 거였다. 이유인즉 그 교회의 전도사님이 꿈을 꿨는데 예수님이 재림하실 날짜를 그 사람에게 말씀해주셨다는 것이다. 몇 월 며칠에 마중 나오라고 하셨기 때문에 재림 예수를 맞으려고 지금 산에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모심고 있는 우리가 불쌍하게 보였던 것이다.
당장에 주님 재림하실 텐데 모심고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안타깝게 보였던 것이다. 반면에 모심는 농민들은 미치면 혼자 미치지 왜 남까지 끌어들이려고 하느냐고 핀잔을 주는 거였다. 어쨌든 산에 올라간 그들이 하루 종일 기다려도 오신다던 그분은 오시지 않았다. 밤 열두 시까지 기다리다가 오시지 않자 다 내려오면서 모두들 회개하라고 예수님이 아마도 천천히 오시는 모양이라고 둘러대는 거였다. 이처럼 교인들이 잘못된 지도자를 만나면 집단 바보가 되는 일을 보게 된다. 우리가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말씀을 보아야 한다. 무조건 사람을 따르기보다 말씀에 따라 반응하며 살아야 참된 신앙인이다.
축복받은 희망
어니스트 색클톤 경이 남극을 탐험하였을 때 자신의 밑에 있었던 사람들을 불가피하게 코끼리 섬에 남겨 두어야만 하는 경우를 당하였다.
그는 곧 그들을 영국으로 데려갈 것을 약속하였지만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연기 되어야만 하였다.
그가 그들에게 가려고 할 때는 공교롭게도 바다는 얼어붙어 자기 휘하에 거느린 사람들은 고립되어야만 하였다. 세 번이나 그들을 구조하려 하였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마침내 그는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하여 빙판에 구멍을 뚫으며 갔다.
조그만 배로 섬에 도착하자 그는 자기 휘하의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았을 뿐 아니라 배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매우 기뻤다. 그들은 곧 안전하게 집에 도착하였다. 모든 흥분이 가라앉자 어니스트 경운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승선할 수 있었는가를 물었다.
그들은 매일 아침, 그들의 지도자가 잠을 깨우며 "항상 갈 준비를 해두시오 오늘 주인이 우리를 데리러 오실 것입니다." 라고 외쳤다고 말하였다.
이 세상에 다시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색클톤 경이 코끼리 섬에 들어간 것보다 더욱 확실한 것이다. 구세주가 다시 이 세상에 오신다는 약속은 그분의 말씀과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축복받은 희마" - 반드시 이루어질 희망"-인 것이다.
해방의 날
서부 인디언 집단이 영국의 노예로부터 해방된 지 백 년 이상이 지났다. 역사가들은 이 역사적인 사건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해 준다. 그 해방이 시작되었던 날은 8월의 첫째 날이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그 전날 저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그들의 가슴이 너무도 기대에 차 있었기에 눈을 붙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이 자유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기 위해 예배 처소로 모여들었다. 어떤 이들은 해방의 첫 태양이 솟는 것을 보도록 산꼭대기로 보내졌으며. 위대한 새벽이 되어 기쁨으로 가득찬 날이 밝아올 때 산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날은 그들 모두에게 날 중의 날이었으며, 인간이 인간을 소유하는 노예 제도로부터 자유와 독립의 새 삶으로 넘어가는 날이었다. 그날의 여명이 밝아 오는 것을 바라보는 그들의 내부 깊숙한 곳에서 고동치는 희망을 무엇으로 다 묘사할 수 있겠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에게도 위대한 해방의 날이 온다. 죄악의 노예 상태가 완전히 부서져 버리고, 허약함이 무한함으로 바뀌며, 오염된 존재가 깨끗한 존재로 바뀌고, 죽어질 것이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으로 옷 입으며, 연약하고 변하기 쉬운 우정이 끝없고 끊어지지 않는 우리 주님과의 교제로 변화되고, 한계가 있고 불완전한 예배가 완전하고 영원한 예배로 바뀌게 되는 날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더불어 오는 것이다. 그는 오고 계신다. 그는 지금 오는 도중이며 급히 서두르고 계신다. 그가 도착하실 때 그 소리는 우리 가슴에 음악과도 같으리라. 종을 울려라. 희망의 종을!
황금보다 귀중한 지식
재림을 아는 지식이 귀중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황금은 우리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어느 때라도 오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위해 일을 할 것이다.
능력 있는 구령자 무디는 그의 능력의 비밀을 묻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수년 동안 설교할 때마다 이 설교가 끝나기 전에 그리스도가 오실 수도 있다고 생각해 왔다.”
뛰어난 영국의 성경주석가 캠벨 몰간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매일 밤 내일이 마지막 날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이 들었다.”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학자요 전도자인 R.A.토레이는 이렇게 말했다. “재림의 진리는 성경의 진리 중 가장 귀중한 것이다.”
고아들의 아버지 죠지 뮬러는 하나님께서 주 예수의 재림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셨을 때 자신의 심정이 어떠했는지를 말했다. “잠들어 있는 세상을 생각하니 내 속에서부터 죄인에 대한 사랑이 끓어올랐다.”
그리스도를 위해 중국에 들어갔던 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고백했다. “주님의 재림은 나의 사역에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장로교의 강력한 전도자 윌버 채프만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주님의 재림을 설교하는 이유는 재림의 사실이 나의 사역 전체를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놀라운 사실에 대하여 각성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오실 것이다. 재림이 있기 이전에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할 일을 알려주신 것은 감사할 일이다.(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