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적 고행, 마음 다스려 가능
깨달음을 향한 수행자의 모습은 은산철벽을 마주하고, 백척간두에서도 한발 더 내딛겠다는 절박함과 결연함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목숨을 내건 힘든 고행마저도 두려워하거나 마다하지 않는다. 과연 그러한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부처님의 6년에 걸친 설산수행 고행이 그러했고 새만금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내 건 수경스님의 삼보일배가 그러했으며, 지율스님의 초인간적인 단식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마음 다스리기’이다. 마음 다스리기는 몸에 생기는 병과 체력의 한계까지도 통제가능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최근 입적한 큰 스님들이 한결같이 자신의 열반 시간을 인지하고 미리 죽음을 대비하거나 심지어 청화스님과 서옹스님의 경우처럼 죽음의 시간까지도 통제 가능했던 것은 사실 자신의 몸에 대한 집착을 끊고 평소 마음 다스리기에 정통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자신의 몸에 대한 학대가 아니라 그를 통해 몸의 집착을 끊음으로써 마음다스기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 다스리기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핵심에는 참선과 요가 그리고 금욕적 생활이 있다.
먼저 참선의 효용에 대해서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적으로도 익히 알려져 온 사실이다. 종교가 훌륭한 의약이 될 수 있다며 ‘종교건강증진설’을 보도해 화제가 됐던 미국 시사주간지 NEWS-WEEK(11월17일자)지의 기사가 이를 증명한다.
특히 참선이 두뇌 활동을 변화시킬 수 있고 ‘면역반응(immune respones)’을 향상시킨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결과는 참선의 건강증진설을 충분히 뒷받침 하고 있다.〈1987호 참조〉
여기서 밝히는 참선은 망상을 피우는 명상과는 다른 차원이다. 참선이 자기 본심을 곧바로 가리키는 직지인심(直指人心)에 대한 본질적인 공부라면, 보통 명상은 과거 회상도하고 미래 설계도 하는 것을 말하는데 참선은 그와는 정반대이다. 오히려 그런 갖가지 생각들을 일시에 끊어버리고 화두라는 취모검(吹毛劍)을 차고 버티는 것이다.
참선.하루 한끼 등 철저한 금욕생활
신심으로 체력적 한계 뛰어넘어
신체 학대 아닌 몸의 집착 끊는 것
수행에 가장 큰 장애인 질병예방과 장시간의 참선으로 느껴지는 체력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옛 선사들은 참선 중간 중간에 틈틈이 요가를 비롯한 선체조 등을 즐겼다.
불교에서는 인체에 발생하는 질환의 동기로 크게 4가지를 들어 설명한다.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 요소로 이루어진 육신이기에 “각 요소마다 101가지씩의 병이 있어 404가지 병이 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오랜 수행을 통해 건강을 해칠 수 있음을 경계한 큰 스님들은 제자인 상좌스님들에게 “좌선공부하는 사람이 복식 호흡을 익히지 못하면 안된다”고 훈계하기도 했을 정도이다.
오랜 참선은 신체의 여러 조직과 기관을 지나치게 이완시키거나 긴장상태를 만들어 인체 전반은 물론 정신과 신경의 균형마저 흐트러지게 만들어 부조화한 증세를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기가 머리로 쏠려 생기는 두통인 상기병은 화두를 들고 있는 스님들에게 의례히 걸리는 질병인데 꾸준한 선 체조와 복식호흡, 발끝까지 숨을 내려 쉬는 호흡법으로 치유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해인사 정경스님은 〈참선요가〉라는 책을 통해 “요가의 수련동작은 확실하고도 빠르게 인체의 조화로운 안정을 가져오고, 균형감각을 회복하게 하여, 이로 말미암아 뼈와 근육, 신경 계통은 물론, 모든 내장의 기능을 정상적이게끔 하는 적절한 효과를 발생시킨다”고 밝히고 있기도 하다.
철저한 금욕 생활로 극한적 상황을 뛰어넘는 마음 다스리기를 추구하기도 했다. 금욕 생활의 가장 비근한 예는 소식(小食)의 실천. 간식은 말할 것도 없고, ‘세끼 식사를 학(鶴)처럼 먹으라’는 말처럼 적게 먹기를 철칙으로 알고 실천했다.
성철대종사의 경우 평소 “학과 같이 고고한 영물은 자기 위장 크기의 7할 이상을 먹지 않는다. 하물며 사람이 짐승보다 못해서 배터지게 먹어 위장 상하고 건강을 망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말하며 폭식하거나 필요이상의 음식섭취를 경계했을 정도이다. 몸의 조절이 ‘마음을 조복(調伏)’시키고 다스리기 위한 일차적 단계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마음 다스리기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스님은 원효대사이다. 화엄경에 나오는 스님이 읊었다는 싯귀는 여전히 마음 다스리기의 전형이 되고 있다.
심생즉종종법생(心生卽種種法生)이요 심멸즉종종법멸(心滅卽種種法滅)이다.
마음이 일어나면 가지가지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없을 적엔 가지가지 법도 없다.
이렇듯 극한적 상황을 뛰어넘기 위해서 수행자들은 다양한 ‘방편(方便)’을 개발해 깨달음을 향한 끝없는 질주에 가속도를 붙인 바 있다. 몸을 다스려, 마음을 다스리는 전초로 삼았던 스님들의 정신을 동안거를 맞는 현 시점에서 다시 한번 돌이켜 볼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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