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를 올리지 않으면 차례(茶禮)가 아니다
설이나 추석에 조상님들께 올리는 제사를 차례(茶禮)라고 한다. 차례는 '차를 올리는 예절'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가 가정에서 올리는 차례에는 차를 올리지 않으면서 차례라고 하면서도 아무런 의심이나 반성이 없이 온겨레가 차례를 그냥 지내고 있다.
속되게 표현해서 '붕어 없는 붕어 빵'처럼 그 이름만 차례일 뿐 차례에 차를 올리지 않는다. 어째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지를 살펴보고 올바른 대안을 찾고자 한다.
1)차례의 뜻
제사는 조상님의 신위(위패)를 모신 사당에 제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제사는 제사,향사,제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차례는 제사의 일종으로 낮에 차를 올려서 지내는 간단한 제사이다.
2)과거의 차례
삼국시대에나 고려,조선 시대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차를 올려서 지내는 제사인 차례 또는 다례가 매우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며느리가 새로 들어오면 조상님의 사당에 집안의 어른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며느리가 사당에 절을 올리는데 그 때 며느리가 직접 닳인 차를 조상님께 드렸다. 그러면 조상님께서 새로 들어온 며느리가 심성도 좋도 가정교육을 잘 받았는 지 여부를 말씀해 주셔야 하는데 돌아가신 조상님은 말이 없을 수 밖에 없으니 조상님 대신 어른들이 평가를 해야했다.
그래서 절이 끝나고 나면 가족들이 빙 둘러 앉아 며느리가 닳인 차를 나누어 마시면서 차의 빛깔과 향기 및 맛을 보고 며느리의 사람됨을 평가하였다.
조상님의 사당에 고하는 것을 고묘(告廟)라고 했고,차를 나눠 마시는 것이 요즈음의 음복(飮福)이다.
궁궐에서는 사신이 오거나 나라의 중요한 일을 의논할 때 심지어는 죄인을 국문할 때도 차례를 올렸다.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도 국을 내리고 나서 차를 올렸다는 기록이 나온 홀기(笏記)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즉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도 차를 올렸던 것이다.
스님들이 사는 절에서는 부처님이나 돌아가신 스님 및 신도들에게 제사를 지낼 때 차를 썼다.
지금도 절에서는 부처님이 하루에 한 끼 밖에 안드셨다고 해서 밥(공양)은 낮에 한 번만 올리고 아침에는 차를 올리는 다례를 모시고,저녁에는 향(香)을 올리는 오분향례(五分香禮)를 모신다.
아쉽기는 다례를 모시면서 맑은 물만을 올린다는 점이다.
3)차례의 유래
사람들이 흔히 다도(茶道)의 효시라고 알고 있는 사건이 삼국유사에 나온다. 경덕왕이 귀정문에 올라 신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무료했던지 신령스러운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신하들이 지나가는 의젓하게 생긴 스님을 모시고 왔는데 경덕왕은 다른 스님을 불러달라고 하였다.
다시 다 떨어진 누더기를 입고 지나는 스님을 모시고 왔더니 그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그 스님이 바로 충담(忠談)스님이라고 '기파랑'이라는 화랑을 찬탄한 '찬기파랑가'의 저자로 유명한 스님이었다.
왕은 또 어디 갔다 오는 길이며 등에 짊어진 통에는 무엇이 들어 있느냐고 물었다.
요즘 말하면 호구 조사를 철저히 하는 셈이었다. 충담스님은 통에는 차와 차 달리는 기구가 들어 있고,매년 음력으로 삼월 삼짓날과 구월 구일에 남산 삼화령(三花嶺)에 계시는 미륵세존님께 차를 다려 올리는데 오늘도 거기에 다녀 오는 길이라고 말했다.
경덕왕은 흥미를 가지고 차를 다려 달라고 해서 마시고 난 뒤 감탄하며 나라를 평안하게 하는 노래를 지어달라고 해서 '임금은 어버이요 백성은 아들딸이라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하면 나라가 평안하리라'는 '안민가'를 지어 바친다.
이 이야기를 다인들이 다도의 효시라고 하는데 부처님께 차를 올리면서 예를 다한 이야기이니 차례의 효시라고 보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
4)차례에 차를 쓰지 않고 술이나 숭늉을 올리게 된 이유
삼국,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 차를 썼는데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제사상에서 차가 사라지고 그 이름 속에 차가 들어가 있는 차례에서까지 차가 빠지게 된 배경은 우리 민족의 수난사와 관련이 있다.
임진왜란 등의 전란 속에서 도자기 굽는 사람이나 여러 재능인 중 차를 만드는 이 등을 자기 나라로 끌고 가버리고, 차가 귀하게 되자 중국이나 조정에서 차를 바치라는 성화가 거세지자 힘들어진 백성들이 차밭을 불태워버리는 일까지 일어났다.
그래서 차가 드물고 귀해지자 임금이 비싸고 귀한 차 대신에 술이나 뜨거운 물 즉 숭늉을 쓰라고 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제사나 차례에 차가 빠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일반 제사에서도 '국을 내리고 차를 올린다(撤羹奉茶)'는 내용의 홀기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차례만큼은 꼭 차를 써야 한다고 본다. 또,요즈음에는 조상님들께 올리는 제주보다도 사람들의 입맛을 맞춘 술들이 많이 나와서 자기들은 먹지 않는 술을 올린다는 의식도 있는데다가 술 때문에 차를 운전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는 요즘이므로 차를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5)상 차리기의 정신
여러 가지 가풍과 종교적 소신 및 지방색이 곁들여져서 상차리기는 정석이 없다고 할 정도로 복잡하게 느끼고 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조상님을 받드는 정신이다. 조상님이 생전에 맛있게 잡수셨던 것이나 생전에 잡술 기회는 없었어도 아주 귀하고 맛이 있는 것이면 국산품이든 해외산이든 가릴 것이 없다.
다만,일반적인 해외산은 오래 날라 오느라고 방부제나 농약을 많이 넣은 것이 많으므로 조상님께 드리는 것은 욕이 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식당에 가서도 미리 에피타이저라고 할까 입맛을 돋구는 전식을 하고,주 음식을 먹은 후에 디저트라고 하는 후식을먹듯이 위패 가까이에 전식거리를,다음에 주식거리를,다음에 후식거리를 진설하고
조상님 자리에서 편하게 숟가락 ,젓가락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잡숫는 순서와 맛있는 순서로 배열하면 된다.
6)차례의식
유교를 따르거나 불교를 믿거나 기독교,가톨릭을 믿거나 자기 집안의 전통대로 의식은 진행하되 가능하면 가족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한글로 풀이한 것이 좋을 것이고 대개는 집사가 읽어 나가고 가족들은 내용을 몰라서 멀뚱거리는데 한글로 해서 다같이 읽으면 의미도 살리고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