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는 강에서 태어난 뒤 바다로 나가고, 성어가 되면 태어난 강으로 돌아가 산란한다. 김원일은 화려함과 아쉬움이 공존했던 10년간의 프로생활을 뒤로 하고 자신이 축구를 시작한 곳, 김포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해야 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내셔널리그의 편입으로 올해부터 통합 출범하는 K3리그에는 달라진 위상에 걸맞게 곳곳에서 반가운 얼굴들이 눈에 띈다. 고정운 신임 감독 체제 하에 새 출발하는 김포시민축구단의 김원일이 대표적이다. 김원일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포항스틸러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제주유나이티드, 총 10년 동안 1부리그에서만 뛰었던 베테랑 중앙수비수다.
김원일이 10년간의 프로생활을 뒤로 하고 하부리그인 K3리그에서 뛰게 됐다는 소식은 많은 축구팬들에게 의아함을 던져주기도 했지만, 김원일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다. 고향 팀인 김포시민축구단이 자신의 정체성과 닿아있기 때문이다. 김포시민축구단의 홈구장인 김포종합운동장은 김원일이 처음으로 축구에 입문한 1994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김원일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김포종합운동장에서 선수생활의 마지막 장, 그리고 새로운 삶의 첫 장을 그리고 있다.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 어떤가요?
좋죠. 여기서 태어났고, 축구를 시작했으니까요. 예전에 살던 집은 허물어졌지만 가까운 곳으로 다시 이사를 왔어요. 어렸을 때 자전거 타고 경기장에 오던 길이 그대로 있어요. 물론 새로 포장이 됐지만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축구화 달랑 들고 경기장에 가서 훈련을 했던 게 생각나요. 20년도 더 넘게 지나 다시 같은 경기장에서 축구를 하니까 신기해요.
-반가워하는 사람들이 많겠어요.
가족들도 물론 반가워하고, 어릴 때 뵀던 분들도 많이 반가워하세요. 이곳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는 선배들도 많고요. 김포시민축구단에서 함께 하는 조한범 코치님은 초중고 한 학년 선배예요.
-K리그가 아닌 K3리그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적시장이 마감될 때까지 기다렸다면 K리그에 남을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제 선택으로 원하는 팀에 가고 싶었고, 그래서 1월 초에 김포시민축구단에 제가 먼저 연락을 했어요. 고정운 감독님께서도 처음에는 이해를 못하시더라고요(웃음). 고향 팀이기 때문에 금전적인 것과 관계없이 열심히 하다가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주변 반응은 어땠어요?
사실 K리그 선수들한테는 K3리그에 대한 인식이 아직 좋지 않은 것 같아요. 프로선수라는 프라이드가 강한 선수들은 K3리그에서는 절대 안 뛰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도 하고요. K리그에서 K3리그로 간다고 하면 실패한 선수라는 이미지가 있더라고요. 프로리그에서 좀 더 도전해보라는 반응이 많았어요. 하지만 프로리그는 그만큼 냉정한 곳이고, 제가 K리그1이나 K리그2에서 확실한 경쟁력이 있었다면 일찌감치 계약이 성사됐을 거예요. 그건 시장이 평가하는 거니까요. 그런 면에서 K3리그로 간다고 했을 때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는데,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제 나름의 판단과 선택으로 결정한 것인데 반응이 좋지 않아 좀 혼란스럽기도 했죠. 그래도 다시 마음을 잡고 제 선택을 믿기로 했어요. 앞으로가 중요한 것 같아요. K3리그도 올해부터 내셔널리그와 통합되면서 더 발전될 것이고, 고향 팀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며 은퇴를 준비한다는 선례를 만들 수 있어요. 선수가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할 수 있는 연착륙의 장이 생기길 바라요.
-은퇴시기와 은퇴 후의 삶에 대해 결정된 것이 있나요?
선수들은 서른이 넘어가면 다들 고민을 많이 해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축구에 모든 걸 걸었는데, 그만큼 열정을 쏟아낼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자신에게 물어보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저는 올해부터가 저한테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프로생활을 할 때는 완전히 축구에만 집중해야하기 때문에 제2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가 잘 없어요. 이곳에서는 축구도 하면서 제게 맞는 또 다른 길을 탐색해볼 수 있으니 좋은 것 같아요.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할 수 있어요. 프로생활을 하다가 한 순간에 선수생활을 그만두면 많이 공허할 텐데, 저는 은퇴 후의 삶을 생각하면 더 설레고 기대돼요.
-아직 리그가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팀 훈련을 하며 경험한 K3리그는 어떤가요?
K리그1과 비교하면 물론 환경은 열악해요. 하지만 선수들의 실력은 오히려 큰 차이 없다고 생각해요. 어린 선수들이 많은데, 한 번의 기회를 얻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하는 친구들이에요. 클럽하우스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각자 집에서 생활하다 매일 훈련하러 오는데, 어떤 선수는 용인에서 김포까지 두 시간씩 버스를 타고 다녀요. 이런 선수들이 더 성장하고, 또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K3리그가 점차 발전하기를 바라요. 각 구단과 지자체, KFA가 모두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매년 더 좋아질 거라 믿어요.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나요?
어린 선수들에게는 프로생활을 길게 했던 선수들과 같이 훈련을 한다는 것 자체가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아요. 같이 해보면 별다를 것 없거든요(웃음). 어린 선수들은 프로선수라고 하면 뭔가 자신들과 다른 특별한 뭔가를 가졌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잖아요. 비슷하거든요. 어린 선수들에게 “나도 했다. 너도 할 수 있다” 이런 메시지를 주고 싶어요. 저 같은 사람도 10년간 프로생활을 하면서 우승도 해보고, 가진 것에 비해 나름대로 좋은 성과들을 얻었는데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저를 보고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김원일 선수는 20대 초반에 어떤 목표를 갖고 있었나요?
실업팀에 갈 수 있으면 성공이라 생각했었어요. 해병대에 자원입대를 할 때만해도 축구를 계속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숭실대 동기였던 친구들이 다들 정말 잘했고, 그래서 저는 경기에 많이 못 뛰었어요. 어떻게 보면 현실도피로 입대를 택한 거예요. 포항에서 군 생활을 할 때 스틸야드에 다섯 번 정도 경기를 보러갔는데, 그때는 제가 거기서 뛸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어요. 거기서 뛰고 싶다는 생각도 감히 못했죠. 뛰고 있는 선수들이 마냥 부러웠던 것 같아요. 제대하고 다시 축구를 할 수 있게 된 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숭실대에서 다시 기회를 받고서는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축구했어요. 축구를 못할 수도 있었던 상황을 지나고 나니까 절실함과 오기가 더 생겼죠.
-드래프트를 통해 포항에 입단했을 때는 감회가 남달랐겠네요.
그렇죠. 군 시절 관중석에서 보던 스틸야드는 엄청나게 커보였는데, 선수가 돼 그라운드에 서보니 전혀 다른 느낌이더라고요. 사실 아담한 경기장이잖아요(웃음).
-해병대 출신이라는 점은 아직도 김원일 선수의 트레이드마크죠?
확실한 정체성이 있다는 거니까 좋은 것 같아요. 은퇴 후에도 제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군 생활은 포항에서 했고 포항, 제주, 김포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세 곳 모두 해병대 주둔지예요(웃음). 의도한 건 아니지만 연결고리가 생겼죠.
-포항은 군 생활 인연과 더불어 2013년 K리그 클래식 우승까지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선사한 팀이라 애정이 클 것 같아요.
2012년 FA컵 우승 순간과 2013년 K리그 클래식 최종전의 결승골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이죠. 제주로 이적한 뒤에도 포항이 원정을 오면 팬들께 꼭 인사를 드렸어요. 포항 팬들께 언젠가는 꼭 포항으로 돌아가겠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이번에 김포시민축구단으로 이적한 것이 어떻게 보면 포항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같은 리그 소속이면 포항을 응원한다고 말할 수 없지만, 지금은 가능하잖아요. 팬으로서 포항에 돌아간 거죠. (ONSIDE : FA컵에서 만나면 어떡해요?) 아, 그땐 이겨야죠. K리그1에서 포항을 응원합니다(웃음).
-김원일 선수가 지금까지 해온 선택들은 축구선수들의 일반적인 길과는 조금 달라요. 어떤 선수로 기억되길 바라나요?
선배로서 후배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축구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모든 선수는 아니더라도 어떤 선수들에게는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 가끔 축구를 하다가 중도에 군에 입대한 친구들로부터 메시지를 받아요. 어떤 방식으로 복귀를 할 수 있는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할 테니까요. 제가 군에 다녀온 뒤 프로생활을 한 것이 어떤 선수들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니까, 작은 것이지만 이렇게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어 기뻐요. 김포시민축구단에 온 것도 마찬가지에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이회택 축구교실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겠죠. 이회택 전 감독님도 고향의 어린이들을 위해 축구교실을 만드신 거잖아요. 제가 그 혜택을 받은 만큼 저도 제 고향에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 이 글은 KFA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5월호 'THE INTERVIEW'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ONSIDE 5월호 보기(클릭)
글=권태정
사진=대한축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