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재일기념법회에 자현스님이 법문을 하셨다. 놀라운 능력을 가지신 스님이다. 우리 스님들 중에서 가장 많은 논문을 쓰고, 가장 많은 책을 쓰고 계신다. 그렇다면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무척이나 강하신 분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말씀하시는 것 보면 참 솔직담백하시다는 느낌이다. 참 보기 드문 캐릭터이다. 우리 절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가셨지만, 한 끼도 공양하지 않으시고 가셨다. 오늘은 출가재일이라고 보살님들이 정성을 많이 들이셨는데, 자현스님이 공양하고 가지 않으신 것이 못내 아쉬워 다음번에는 꼭 공양하고 가시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다음번에도 오늘처럼 맛있는 공양이 준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자현스님이 가시면서 책을 놓고 가셨다. 오실 때마다 신간을 한 권씩 가져오신다. 그것도 참 대단하시다. 이번 책 제목은 <태양에는 밤이 깃들지 않는다>(불광출판사)이다. '자현스님의 산중일기'라는 부제가 붙었는데, '아포리즘'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현재의 행복>이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사람들은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미래로의 질주가
무한한 허덕임과 깊은 좌절을 파생한다는 점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삶의 매순간은 일회성입니다.
그러므로 '나은'의 개념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나은'의 목적이 행복이라면,
왜 지금 행복하지 않고
오지 않은 미래의 행복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인가요?
그렇다. 우리가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애쓰기만 한다고 해보자. 오늘은 내일을 위해 애쓸 것이고, 내일은 또 모레를 위해 애쓸 것이다. 모레는 글피를 위해 애쓸 것이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인생의 종착역이다.
오늘을 즐기라는 것이 아니다. 오늘 행복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이 꼭 노는 것, 쉬는 것에만 있지는 않다. 자신이 하는 일에 충실함으로써 행복해질 수도 있고, 스스로를 변화시켜감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다.
출가재일은 반드시 출가하라는 날만은 아니다. 자신을 대전환하라는 날이다. 오늘 나 자신을 대전환할 수 있을까? 수행자는 매일매일이 자신을 변화시켜나가는 날이어야 한다. 그런 나날은 날마다 좋은 날, 일일시호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