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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담 - 법구경 제6게송
사소한 일로 다투고 있지는 않는지?
총무 동명스님
“10일 제주동부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4일 낮 12시쯤 제주대학교 병원 주차장에서 A(54·여)씨가 탄 차를 28차례 들이받은 혐의(살인미수 등)로 김모(37)씨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김씨는 A씨가 자신의 차 뒤편에 이중주차한 것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중앙일보 2018년 12월 10일자)
오늘날 주차문제 같은 사소한 시비로 다툼이 끊이지 않고 심지어는 살인사건이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부처님 재세시에도 사소한 시비로 인해 승단이 분열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꼬삼비의 고시따 수도원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그로 인해 법구경 제6송이 탄생했고, 율장의 한 장이 이 꼬삼비 승가의 분열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습니다. 꼬삼비의 고시따 사원에 율사스님과 강사스님이 각각 500명의 비구들을 지도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강사스님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는 뒷물한 물통의 물을 버리고 엎어놓고 나와야 하는데, 물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나왔습니다. 공교롭게도 바로 이어서 화장실에 들어간 율사스님이 이를 발견하였습니다. 율사스님은 강사스님을 불러세웠습니다.
“스님, 뒷물한 물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예 스님,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그것이 계율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셨습니까?”
“저는 미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계율에 저촉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참회하겠습니다.”
그러자 율사스님이 말했습니다.
“이 일은 분명히 계율에 어긋납니다만, 의도적인 행위가 아니었기 때문에 문제될 것까지는 없습니다.”
두 스님은 이 일을 없었던 일로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율사스님은 처소로 돌아와서는 제자들에게 이 일을 얘기했습니다.
“저 강사스님은 계율을 범했다. 그러고도 자기의 허물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 말을 들은 율사스님의 제자들은 강사스님의 제자들을 만나 강사스님을 비난했습니다. 이 소식은 그 강사스님에게도 전해졌습니다. 이에, 강사스님은 율사스님을 찾아가 항의했습니다.
“스님, 전에는 그 일은 의도적인 행위가 아니므로 문제되지 않는다고 하시더니, 이제는 그것을 허물이라고 하시니, 어찌된 일입니까?”
입장이 곤란한 율사스님은 오히려 강사스님의 허물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고는 그 허물에 대한 벌로 모든 비구들로 하여금 그 강사스님과 어떤 대화도 해서는 안 된다고 지시했습니다.
사태는 더욱 커져 이 불화는 급기야 두 스님을 따르는 재가 신자들에게까지 번져갔고 이로 인해 폭력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 소식이 사왓티에 계시는 부처님에게 전해지자, 부처님께서는 제자를 보내어 서로 화합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제자를 두 차례나 보내어도 꼬삼비 승가가 화합하지 않자, 이번에는 부처님께서 직접 고시따 수도원을 방문하여 비구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비구들이여, 이제 그만두어라. 비구들이여, 싸우지 마라. 싸우고 논쟁하는 것은 이익이 없느니라. 서로 단결하면 조그만 메추라기도 힘센 코끼리를 물리치느니라.”
메추라기들이 까마귀와 개구리와 단결하여 못된 코끼리를 물리친 이야기를 하신 후 부처님께서는 메추라기 이야기를 더 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화합하여라, 다투지 마라. 다툼 때문에 메추라기들이 생명을 잃었느니라.”
서로 다투다가 사냥꾼의 그물에 잡힌 메추라기 이야기를 해주었는데도 꼬삼비 비구들은 다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부처님께서 꼬살라의 디가띠 왕의 아들 디가우 왕자가 아버지의 원수인 까시의 브라흐마닷타 왕에게 복수하지 않음으로써 마침내 자신의 나라까지 되찾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꼬삼비의 비구들은 화합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꼬삼비 스님들을 가르치는 것을 단념하시고 마을에 들어가서 홀로 탁발하신 후 가사와 발우를 들고 바구 장로가 홀로 살아가고 있는 발라까로나 마을을 거쳐, 아누룻다, 난디야, 낌비라 등 세 비구가 수행하고 있는 빠찐나왐사 미가다야에서 화합의 필요성에 관한 법문을 설하시고, 빠릴레이야까 숲으로 가서 코끼리의 시중을 받으면서 지내셨습니다.
결국 꼬삼비의 승단을 화합시킨 것은 재가신도들이었습니다. 꼬삼비의 재가신도들은 고시따 수도원의 승려들이 화합하지 않는 한 그곳의 스님들에게 경배도 하지 않고 공양도 하지 않겠다고 결의했습니다. 거의 굶어죽을 지경이 되자 꼬삼비의 비구들은 마침내 부처님께 참회하고 화합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디가우 왕자 이야기를 다시 한번 하시고는 이렇게 훈계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디가우 왕자는 아버지가 목숨을 잃는 순간에 남긴 ‘복수하자 말라’는 가르침을 받아들여 원수를 용서하였으며, 그 결과 브라흐마닷따 왕의 딸과 혼인하여 잃었던 나라를 되찾고 까시와 꼬살라 두 왕국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그대들은 나의 말을 따르지 않고 화합하지 못하여 결국 무거운 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게송(법구경 제6송)을 읊으셨습니다.
다른[어리석은] 사람들은 알지 못할지라도,
우리들은 여기서 멈춰야 한다.
만약 누구라도 바로 이곳에서 (멈춰야 한다는 것을) 안다면,
그러면 다툼들은 곧 가라앉으리라.
(Pare ca na vijānanti, mayamettha yamāmase;
Ye ca tattha vijānanti, tato sammanti medhagā.)
어리석은 자는
언젠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에 다투고,
지혜로운 이는
잘 알기에 다투지 않는다.(무념・응진 역)
남을 책망하는 것만 좋아하지 말고
스스로 자신을 살피기에 힘쓸지니,
만약 누구라도 이 진실을 알면,
분쟁은 길이 소멸되어 없으리.(한문 번역)
不好責彼 務自省身 如有知此 永滅無患
과연 뒷물한 물통을 비우지 않은 것이 승단이 분열될 만큼 큰 일입니까? 그런데 그런 일이 현명한 이들이 모여 있다는 승가에서 실제로 일어났으며, 더욱이 부처님 같은 현자가 지켜보고 있음에도 쉽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우리들의 어리석음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또는 신행생활을 하는 가운데도 이와 같은 다툼이 끊이지 않습니다. 과연 진정으로 다툴 만한 일로 다투고 있는지 돌이켜볼 일입니다. 그런 다툼이 있을 때는 법구경 제6게송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