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마 9: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hem)를 만지니
(마 9: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마 9: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말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wing)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이 여인은 왜 예수님 겉옷의 가장자릴 만졌을까요? 혼자만의 교리를 만들었던 걸까요? 이부분은 설명할 것이 너무 많아 저도 피하던 것인데 오늘 작정하고 한번, 그림도 보여드리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12년간 혈루병을 앓았던 여인은 인간적인 방법은 다 시도해 본 사람입니다. 의사도 많이 만난 걸 보면 돈도 있는 집입니다(막 5:26).
유대인인 이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 가장자리를 만진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뒷 부분에서 설명) 예수님의 겉옷 '가(hem)'와 ‘광선(wing)’은 히브리어로 같은 단어입니다. 혈루병 앓던 여인의 이야기는 신약에 기록되어 헬라어로 기록됐지만 당시 사람들은 히브리어와 아람어를 썼습니다.
겉옷의 가장자리와 광선을 나타내는 히브리 단어는 kanaph인데, 구약에 "광선"이라고도 번역되었고 "날개"라고도 번역되었고 옷자락의 끝, "술"이라고도 번역이 되었습니다.
우리말로 생각하면 옷 가장자리에 달린 프릴 같은 것들을 날개라고도 하기 때문에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아래 세 단어가 히브리어로는 전부 같은 단어입니다.
(민 15:38)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kanaph)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출 25:20)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kanaph)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말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kanaph)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위 구절에 kanaph가 쓰인 순서대로 각각의 그림을 봅시다.
1. 여인이 잡으려 했던 예수님의 겉옷의 가장자리(kanaph)
2. 속죄소의 날개(kanaph)
3. 태양의 광선(kanaph)
*왼쪽 사진을 보면서 일본의 전범기를 생각할 사람도 있지만 단지 태양의 광선을 나타낼 뿐이고 이러한 모습에서 오른쪽의 그림, 태양의 날개 이미지를 얻게 된 것입니다. 오른쪽 그림(winged sun)을 일루미나티의 상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갖다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원래는 말라기 4:2절에 광선을 발하는 "공의로운 해"의 상징입니다. 즉,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다시 말라기를 봅시다.
(말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wing, kjv)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그럼, 치료하는 이 공의로운 해의 날개와 속죄소의 날개를 한번 비교해 볼까요?
이 여인은 유대인으로 이러한 구약의 말씀을 알았을 것입니다. 만약 아니라면 여인인 예수님의 옷 가장자리를 잡아야 낫는다고 생각한 것은 엄청난 우연의 연속이지요.
속죄소의 "날개"가 공의로운 해의 "광선"임을 알았을 것이고(히브리어로 같은 단어),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이 속죄소의 날개임을, 치료하시는 예수님이 치료하는 광선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광선, 그분 날개, 겉온 가를 붙잡았던 것입니다. (셋 다 같은 단어)
휴, 힘드네요^^; 여러분도 여기까지 따라오시느라 애쓰셨습니다.
(마 9: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kanaph)를 만지니
위의 구절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 여인이 그냥 자기 혼자만의 생각만으로 ‘옷자락을 만지면 낫는다.’고 가정해 놓고 행동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말씀을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바로 그분, 속죄소의 날개, 치유하는 광선이라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또 우리가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것도 있는데 하혈의 문제가 있는 여성은 부정하기 때문에 사람들 많은 곳에 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들키면 죽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몰래 예수님의 겉옷 가를 붙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의 행동들을 종합해 볼 때, 이 여인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선하심을 믿은 자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머리에 쥐가 나도록 히브리어와 그림들까지 동원해 공부했는데) 이 여인은 예수님의 구속사역이 이루어지기 전의 사람이라 악착같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야만 했지만 우리는 어떻습니까?
(벧전 2:24) ...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과거시제)
이마저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치유가 이미 우리 영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할렐루야! 예수께서 우릴 위해 이미 완성하신 구속사역을 우리가 온전히 믿을 수만 있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