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막 1: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막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어떤 분께서 회개에 대한 저의 입장을 묻는 메일을 보내주셨었는데 길게 설명해야 하는 것이라 답을 하지는 못했었습니다. 오늘 그 질문에 답을 하려고 합니다.
"회개"는 헬라어 "메타노에오"에서 왔으며 문자 그대로의 뜻은 "생각(mind)을 바꾼다."는 뜻입니다. (헬라어 사전 여기)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회개는 누가 시켜서 되는 것도 아니요, 누군가 '자, 다 같이 회개 합시다'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먼저 마음 깊이 변화에 대한 필요를 느끼고, 잘못 했던 일에 대해 슬픔(후회)을 느껴야 합니다. 물론 누군가가 회개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해 줄 수는 있지만 매주 주일 예배의 정해진 시간에 '자,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다 회개합시다.'라고 하는 것은 글쎄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저도 이해하고 처음 시작한 사람의 의도도 좋았을 거라 생각하지만 생각을 바꾸는 것이 회개의 사전적 뜻인데, 모르고 지은 죄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딱히 울었다고 해서 회개한 것도 아닙니다. 회개할 때 과거의 잘못에 대한 슬픔을 눈물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운다고 다 회개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감정처리 과정일 수도 있고 쌓인 것이 터져 우는 경우도 많습니다.
슬픔의 감정은 어떨까요? '바울이 항상 기뻐하라'고 했다고 해서, 슬퍼해야 마땅한 상황 속에도 항상 '하하 호호'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편에도 나라 잃은 설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울며 부르는 노래들이 많습니다. 이렇듯 슬픈 상황에서도 웃으라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지요. 바울이 기뻐하라고 했던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 안에서 기뻐하라고 한 것이지 슬픈 상황에서 그 상황을 부인하며 웃으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마땅한 상황에서 슬퍼할 수 있습니다. 다만 소망 없이 슬퍼하는 것과 하나님적인 슬픔은 다릅니다. 타락한 세상의 상황을 보며 절망과 원망으로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슬픔은 세상적인 슬픔입니다. 그러면 나라가 망해도 기뻐해야 하는가? 그것은 아닙니다. 이 나라에 하나님의 원칙과 법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마땅히 슬퍼해야 합니다. 울어야 합니다. 그러나 소망 가운데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나의 안위만 생각했던 이기적인 삶의 행태를 철저하게 회개하고(생각을 바꾸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용서와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진정한 회개를 하고 나면 그것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하나님께서 알려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회개는 반드시 행동의 변화와 삶의 열매를 가져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은 '회개'의 연속입니다. 항상 생각을 새롭게 하고 있으니까요. 하나님적인 회개에는 꼭 울고불고하는 과정이 필수는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울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회개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고후 7: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고후 7: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회개라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근심도 있습니다. 물론 고린도교회처럼 지적을 받았다고 해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지적을 받아(책망을 받아) 근심하며 슬퍼하는 것은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한 슬픔, 그러한 근심은 우리를 회개로 이끌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할렐루야! 마땅히 근심해야 하는 상황을 보며 근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근심하나 도리어 회개할 것이며 그로인해 삶의 변화를 열매 맺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회개에 대한 저의 입장은 그 열매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울었냐, 죄를 하나하나 고백했냐, 이러한 것이 아니라 그가 그 슬픔, 그 근심을 통해 생각을 바꾸고 돌이켰냐, 그래서 결국 열매를 맺었냐, 이것이 진정한 회개를 가름하는 척도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