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비가 내린다. 잿빛 하늘에 바람 한 점 없이 사그락 거리며 비가 내린다. 금아 선생님의 <그 날> 을 읽으며 두 볼에 흐르는 눈물을 나는 닦지 않았다. 책을 덮으며 오랫동안 쌓여 온 뚝이라도 터진 듯 실컷 울어야 했다. 때론 남의 서러움에 힘 입어 함께 울다 보면 기분이 좀 가라 앉는 때가 있다. 선생님은 <아버님의 병환>이란 노신魯迅의 글을 읽다가 오십 여년전의 그 날을 회상하시며 쓰신 글이다. 요양을 떠나계시던 어머님의 위독 전보를 받고 마차에 올라 이 세상에서 제일 느린 말이라 울면서 도착하나 어머님은 어린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선생님의 어린 눈물 속에서 나의 여린 가슴은 도리듯 아픔이 다가와 더 크게 내 서러움으로 변하였나 싶다. 선생님은 ‘엄마’를 그리워하며 눈물로 원고를 적시셨고, 나 또한 ‘그 날’을 읽으며 나의 곁에 두지 못한 이것저것의 서러움들이 다가와 선생님과 하나가 되어 울고 있었다. 이렇게 감정은 전염이 되어 위로가 되기도 한다. 살아 가는 동안에 크고 작은 일들이 언제나 발 앞에 놓이기 마련이고 그럴 때 우리는 위로를 하기도 하고 때론 위로를 받기도 하면서 살아 간다. 그러나 사람의 위로라는 것은 말 그대로 위로慰勞일 뿐 가슴에 남아있는 그 황량한 뿌리를 어떻게 지울 수가 있겠는가. 세월로 다림질하며 이토록 가슴에 와 닿는 글을 읽으면서 한껏 울어 눈물로 마음을 닦고 보면 덩달아 마음도 한결 가벼워 짐을 느낄 때가 있다. 금아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그 순수함에 감동하고 잔잔함에 마음이 설렌다. 시냇물이 흘러가듯 잔잔하게 감동으로 흘러가게 하는 선생님의 글이야 말로 수필은 청자연적이요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 아닌가 싶다. 수필은 고요한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한 편의 좋은 수필처럼 살고 싶다. 수필처럼 산만하지 않고 찬란하지 않으면서 우아하고 산듯하며 가을 들녘의 들국화처럼 살았음 싶다. 그리하여 생生을 다 하는 날 샛별이 지듯 그렇게 가고 싶다
밴쿠버는 비가 많아 좋았다. 비 내리는 날이면 차 천장에 부딪히며 떨어지는 빗소리가 좋아 차 속에서 커피 한 잔을 놓고 흐르는 음악과 함께 취하여 보는 날도 있다. 비가 싫어 겨울을 다른 곳으로 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나 내리는 비를 보는 것이 즐거운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내 기준을 벗어보면 때때로 나와 너무나 다른 방법으로 삶의 일면을 즐기는 사람들을 만나게도 된다. 온 겨울을 비로 보내고 비 속에서 봄을 맞이하는 밴쿠버가 나는 참으로 신기하고 멋지게 여겨진다. 떡 가루를 뿌리듯 소올솔 비가 내리고, 또 비가 내리고, 그 속에서 잔디는 여름보다 더 푸르르 늘 푸른 꿈을 꾸게 했다. 열흘이고 스무 날이고 내리던 비가 어느날 말짱히 개이면 뒷산엔 흰 눈이 햇살에 찬란히 빛나곤 했다. 그 산듯하고 맑음이 화려하기까지 하다. 쨍그랑! 소리라도 날 듯이 투명한 맑음이었다. 밴쿠버의 겨울은 오는 듯이 가는 듯이 비 속에서 그렇게 오고 갔다. 뒷산엔 봉우리마다 흰 눈을 이고 있는 2월, 잔디를 열고 수선화 새싹이 고갤 내민다. 사랑스러운 아가의 젖니가 나오듯이 그렇게 봄은 오곤 했다. 비록 매미가 울어 한 여름을 장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밴쿠버의 싱그러운 여름은 세인을 놀라게 하고 우리들 생의 쉼을 가져 다 준다. 이제 이 가을에 나는 새로운 꿈을 꾸고 싶다. 구절초 향기로워 사랑에 젖던 그 가을이고 싶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초원을 달리는 간지럼으로 안개 속에 젖으면 가을 내음이 서서히 흔들리고 추억처럼 맴도는 그리운 것들 이슬이 되어 맺힌다
떨어지는 진주인양 이슬 속에 발을 담그면 작은 배가 되어 흔들리는 가을을 저어간다.
ㅡ 강숙려의 ‘추정의 오수’ 중에서 ㅡ
아름다운 내일의 안주를 위하여 마음 한 곁에 조용히 빈 자리 하나 만들어 놓고 싶다. 인생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지혜롭게 이루어 가며,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리라 여긴다. 수필처럼 산듯하고 아름다운 고요로 남은 생을 수 놓아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