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7> 사월의 그늘 아래서
김옥엽 (시인, 문학평론가, 서울신학교 교수)
봄비 치고는 많은 양의 비가 왔다.
곳곳에서 돌풍이 불고 천둥과 번개가 치기도 했다.
이 달 들어 봄비가 이어지면서 최악의 가뭄으로 허덕였던 소양강댐 수위도 2m 가까이 올랐다고 한다. 완전 해갈엔 턱 없이 부족하지만 올 농사를 준비하는 농민들은 한시름을 놓은 모양이다.
덕분에 목말랐던 땅 곳곳은 물기에 절었고 벗 꽃은 이파리를 마구 흩날리며 지나가는 봄을 하얀 꽃비로 손 흔들어주었다.
대지의 사계는 하나님의 작품이다. 그런데 어찌 그리 정확하신가? 봄 가뭄에 목 태우다가 이러다간 큰일 나는데 하다보면 어느새 뿌려주신다. 이른 비와 늦은 비. 그래서 우리는 일기가 고르거나 그렇지 않거나 그분을 찬양하고 빈틈없는 순환 중에 은혜를 베푸시는 그분께 매일매일 엎드리게 되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북한산 자락은 요즘 그야말로 제철이다.
개나리가 먼저 샛길과 언덕에 노랑 물을 들이더니 벗 꽃이 점점으로 나르고 흰 목련, 자목련이 존재의 가슴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절정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tv 켜기가 겁난다. 인간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시간이 무서워진다.
수많은 사람이 사는 동네에 왜 사건 사고가 없겠는가마는 부정직하고 부도덕한 사건들, 온 국민의 지탄을 받는 엄청난 일들이 쏟아져 나오는 일에 하나님의 사람들(?)의 이름이 끼어서 나오는 게 기막히다. 끼어서 나오는 게 아니라 아주 주인공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으니 세상 사람들 보기만아니라 스스로도 부끄럽고 민망할 따름이다.
잘 지은 교회 꼭대기 층에 밀실을 지어놓고 무슨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보턴을 누르면 짠하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아지트, 아나운서는 친절하게 구조를 설명하고 교회의 이름과 장로의 직분까지 술술술 풀려나와 입 큰 이들의 안주거리가 되고..
쪽지 한 장에 8명의 이름을 적고 50분가량의 녹음을 남기고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 기업가이자 정치인이었던 한 사람, 억 억 하는 돈들을 무슨 아기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온 세상지면을 비리, 배신 음모로 도배하고 떠난 분도 교회의 장로님이었다니.
어쩐 일일까? 그 분들은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었을까? 교회는 그분들에게 어떤 곳이었고 믿음의 정의는 무엇이었을까? 그 분들의 인격과 신앙에 혀를 차는 그럼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사는가? 정직이 뭔지 진실은 또 어떠하며 그 수많은 기도는 무엇이었을까? 이렇게 마음속으로 그들을 정죄하는 나는 또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가 죽도록 바로 살려 해도 이 아수라장 세상에서 순결하게 살기란 애시당초 틀린 일일까?
분홍 진달래가 나보기가 역겨울 만큼 열심히 피어있는 산길에 빗물이 고여있다.
목이 타서 꽃 피우기가 힘이 들면 적당한 시간에 물을 주시고, 초록 광합성과 온도를 주셔서 생명의 경이를 이어가게 하시는 주님, 영적 기갈엔 관심이 없고 세상 최고의 돈에 환장해서 이리 저리 용을 쓰다 주저앉은 우리 인간들을, 긍휼히 여겨달라는 기도가 신음처럼 나온다. 그러다가 때를 따라 도우시는 그분께서 이 잔인한 달을 살고 있는 당신의 백성들의 허덕이는 절망위에 영혼의 단비를 내려달라는 간구 또한 해본다. 그리했으니 이 돌풍과 번개가 지나가면 상처받은 심령에 이슬 같은 위로를 주실 것을 믿고 기다려야겠지. 그리고 천지를 물들이는 꽃 향보다 아름다운-, 비 그치고 햇빛 나는 사월의 그늘 아래서 하늘 우르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소망하던 옛 시인의 편지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