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완 송 앙상블 프로젝트 1집 – 첼리스트 이지행 「백조」
Swan Song Ensemble Project 1st Album – Cellist Ji Haing Lee 「SWAN」
2018.05.11. 디지털 싱글 앨범 발매 예정
첼리스트 이지행
첼리스트 이지행은 예원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예술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로 입학하여 예술사를 졸업하였다. 이후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 국립음대 Konzertexamen을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Postgraduate 수료하였다.
난파콩쿠르 금상을 시작으로 국민일보 콩쿠르 1위, 서울 청소년 실내악 콩쿠르 1위, 성정난파콩쿠르 대상 등 국내 주요 콩쿠르에서 상위 입상하며 일찍부터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2013년 크로아티아에서 개최된 제14회 "Rudolf Matz"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수상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첼로음악에 대한 참신한 기획과 연주력 향상에 매진하고 있는 이지행은 국내에서 이희덕, 박희정, 정명화 교수를, 해외에서 Markus Nyikos, Heidi Litschauer 교수를 사사하였고, 현재는 전문연주자 및 서울솔리스트 첼로소사이어티의 수석단원 그리고 군포 프라임 첼로 수석으로 다양한 무대에 참여하며 앞으로 많은 음악적 활약을 기대케 하고 있다.
01. Camille Saint-Saëns : Carnival Of The Animals - Ⅷ. The Swan (생상스 : 동물의 사육제 – 13번. 백조)
‘동물의 사육제’를 구성하는 14곡 가운데 피날레 앞에 연주되는 열세 번째 곡이다. 물 위에 뜬 백조의 우아한 모습에 감춰진 발의 동작을 상상하게 하면서도 잔잔한 호수위의 백조를 볼 때와 마찬가지로 음악을 들을 때도 완벽한 조화를 느끼게 하는 이 곡은 생상스가 생전에 유일하게 출판을 허락한 곡이기도 하다.
02. Antonín Dvořák : Songs My Mother Taught Me (드보르작 :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
안토닌 드보르작(1841~1904)은 꼬마 시절, 그는 교회 마당에서 바이올린으로 왈츠를 연주하고 사람들이 귀엽다고 동전을 주면 부모에게 조르르 달려와서 웃는 귀여운 아이였다. 정육점을 하던 아버지는 장남인 그에게 가업을 물려주려 했고, 덕분에 그는 위대한 작곡가 중 정육점 면허를 가진 유일한 사람이 됐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안토닌이 16살 때 프라하의 음악 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따뜻한 설득 덕분이었다.
드보르작은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를 연주하고 틈틈이 피아노 레슨을 하며 아기들을 키운 가난한 음악가였다. 결혼 3년째인 1875년, 드보르작은 빈 정부가 ‘젊고, 재능 있고, 가난한’ 예술가에게 주는 장학금을 받게 됐다. 비로소 작곡에 전념할 수 있게 됐고, 세 아이의 앞날도 남부럽지 않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이 때, 치명적인 불행이 찾아왔다. 첫 딸 요제파가 갑자기 병으로 사망한 것. 드보르작은 <슬픔의 성모>를 작곡했다. 가장 슬픈 음악으로 딸을 떠나보내고 자신을 위로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1년 반 뒤, 둘째딸 루제나와 첫아들 오타카르마저 연이어 세상을 떠났다. 젊은 드보르작 부부는 넋을 잃고 쓰러졌다. 세 아이가 사라진 세상을 더 살아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 그 추억이었다.
이 노래를 들어야 할 아이들은 세상에 없었다. 하지만 이 노래를 가르쳐 주며 눈물 흘리셨던 어머니는 추억 속에서 살아나, 슬픔으로 쓰러진 아들을 안고 울어 주었다. 1880년 작곡한 <집시의 노래> 중 네 번째 곡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는 드보르작이 겪은 가장 큰 슬픔을 승화시킨 노래다.
03. Pyotr Ilich Tchaikovsky : Sentimental Waltz Op. 51, No. 6 (차이코프스키 : 작품번호 51-6번 감성적인 왈츠)
원래는 피아노 독주곡으로 작곡된 6개의 소품(Op. 51) 가운데 마지막 곡으로 바이올린이나 첼로 곡으로도 인기가 높아 많이 연주되고 있다.
1870년대 말부터 1885년까지는 차이코프스키가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쉴 틈이 없었다는 생각과 함께 창작에 대한 확신을 잃은 채 방황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 차례 누군가에게 이끌리듯 여행을 떠났는데, 이 곡은 1882년 여름 우크라이나에 있는 그의 우이의 집에서 만들어졌고 엠마 겐통(Emma Genton)이란 여인에게 헌정 되었다.
그녀는 차이코프스키가 가끔 찾아가 쉬던 프랑스인 가정교사였다.
[Credit]
Recording : Basicsound Studio
Producer : 김형준
Management : ㈜디피에이아트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