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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912년 활쏘기 동영상의 분석과 고찰
홍성우
1. 본고의 목적
본고의 목적은 유튜브에 올려진 1901년 또는 1912년 활쏘기 동영상의 분석을 통해,
우리 활쏘기의 과거 모습에 대해 고찰해 보는 것에 있습니다.
2. 분석할 동영상에 관한 정보
1) 유튜브 동영상
동영상의 출처는 유튜브 입니다.
출처 : 『Scenes at Seoul, In 1901 / 1912』, http://youtu.be/2j_DWCJ1B3g
활쏘기 동영상은 1분 21초에서 1분 40초까지 20초 동안 잠시 나옵니다.
☞ 활쏘기 동영상이 시작하는 부분부터 보기 : http://youtu.be/2j_DWCJ1B3g?t=1m19s
<동영상 2-1. Scenes at Seoul, In 1901 / 1912>
조금 더 선명하게 재생되는 동영상이 있어서, 인터넷 주소를 남깁니다.
☞ 조금 더 선명한 동영상 바로가기 : http://tube.majestyc.net/?v=2j_DWCJ1B3g
2) 분석용 GIF 이미지 파일
<동영상 2-2>는 GIF 파일로서 활쏘는 장면만 따로 분할하여,
동영상 분석용으로 만든 것 입니다.
프레임 간의 시간은 0.1초 입니다.
<동영상 2-2. 활쏘기는 전체 과정의 GIF 이미지>
<동영상 2-2>의 GIF 파일에서 206개의 이미지들을 추출하여,
동영상 분석용 GIF 이미지 파일들을 다시 제작하였습니다.
이 글에서 사용되는 <동영상 3-1>에서 <동영상 7-1>까지의 분석용 GIF 이미지 파일들은,
1/10 배속으로 재생되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3) 동영상의 출처
<동영상 2-1>은 미국의 여행가인 E. Burton Holmes 가,
1901년 또는 1912년이나 1913년에 서울에 들렸을 때 찍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 버튼 홈즈 : 위키백과 『Elias Burton Holmes』, http://en.wikipedia.org/wiki/Elias_Burton_Holmes
버튼 홈즈가 찍은 이 동영상은 그의 여행기 『Seoul : the Captial of Korea, 1901』와 함께,
2004년에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되었습니다.
☞ 관련 논문 : 백문임, 『버튼 홈즈(E. Burton Holmes)의 서울 여행기와 영화』, 현대문학의 연구 제 47집, 2012년. (총 38 페이지)
☞ 논문 다운로드는 무료이며, 한국문학연구학회의 학술지 검색 시스템을 이용해야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2012년 47집을 찾으면, 관련 논문을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4) 버튼 홈즈의 활쏘기 사진 2점
저자의 『옛날 사진에서의 좌궁 비율』에서는 버튼 홈즈의 활쏘기 사진 2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림 2-1. 사대>
<그림 2-2. 활쏘기 시합을 하는 사람들>
☞ <그림 2-1>의 출처 : 버튼 홈스 지음, 이진석 옮김, 『1901년 서울을 걷다 : 버튼 홈스의 사진에 담긴 옛 서울, 서울 사람들』, 푸른길, 2012년.
3. 사대의 분석
1) 궁사에 대한 분석
<동영상 2-1>에서 화면을 캡처하여, 사대에서 활을 내고 있는 궁사 분들을 분석하여 보았습니다.
<그림 3-1. 사대의 궁사 분들 분석>
<그림 3-1>에서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사대에 서서 활을 쏘고 있는 궁사는 7명입니다.
활을 쏘는 순서는 사대의 오른쪽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편의상 오른쪽부터 1번 궁사라고 호칭합니다.
이렇게 순서를 정한 것은 촬영을 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의 사풍에는 우궁 좌궁을 번갈아 가며 쏘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좌궁은 4명이고, 우궁은 3명입니다.
제일 우측에 갓을 쓰고 계신 1번 궁사 분은 좌궁으로 추정을 하였고,
2번과 3번 궁사는 발디딤의 모양에서 좌궁으로 추정하였습니다.
셋째. 1번과 7번 궁사는 갓을 쓰고 있습니다.
단발령이 시행된 것이 1895년인 것을 감안하면,
촬영 시기까지 갓을 쓰고 계신 분들은 지체가 높거나 자부심이 높으신 분들으로 추정됩니다.
넷째, 궁사들은 화살을 미리 활에 메겨 둡니다.
<동영상 3-1. 화살을 미리 메겨두는 6번 궁사>
동영상의 활쏘기 화면에서 처음 팔을 들어 올리는 6번째 궁사는,
그저 화살을 메기기만 합니다.
실제로 화살을 처음 발시하는 분은 4번째 궁사 분입니다.
당시의 유엽전은 과녁에 꽂혔기에, 관중의 여부가 과녁에 남습니다.
그렇기에 앞사람이 쏘고 나면 바로 쏠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하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재의 사풍은 앞 사람이 화살을 보내고 나서,
자기의 화살을 뽑는 것이 예의입니다.
앞 사람 화살의 관중의 여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심판의 지시없이 활을 쏘면 반칙이 되고 경고가 주어집니다.
2) 사정(射亭)의 위치에 대한 추정
활쏘기 동영상의 촬영 장소에 대한 추정은,
경성(서울)의 유력한 활터로 추정됩니다.
버튼 홈즈가 제물포에 도착하여 당시 경성의 풍경과 풍물을
카메라에 담았기 때문입니다.
버튼 홈즈는 활쏘기 사진 2점을 남겼습니다.
그 사진중 하나인 <그림 2-1>의 배경에 보이는 산은 북악산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음의 <그림 3-2>에서 북악산의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림 3-1. 북악산의 현재 모습과 과거의 모습>
<그림 3-1>에서 좌측 화면은 현재의 석호정 근처에서 찍은 북악산 사진이며,
우측 화면의 사진은 1894년 11월에 Frank G. Carpenter에 의하여 촬영된 사진입니다.
☞ 프랭크 카펜터 : 위키백과, 『Frank G. Carpenter』, http://en.wikipedia.org/wiki/Frank_G._Carpenter
<그림 3-1>과 <그림 2-1>의 비교에서,
<그림 2-1>의 활터는 석호정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림 3-2. 배경에 보이는 산을 북악산으로 추정>
다음의 <그림 3-3>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당시의 석호정은 지금의 장충단 공원 근처에 있었으며,
과녁이 북쪽 방향에 있었습니다.
<그림 3-3>은 1966년에 촬영된 항공사진이지만,
석호정 사대와 과녁을 잇는 방향이 북악산을 향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북악산의 능선모습으로 추정한 촬영 각도에서도,
촬영 장소가 장충단 공원 부근임은 명백한 것 같습니다.
<그림 3-3. 항공사진에서의 석호정과 석호정 옛 활터 표지>
☞ <그림 3-3>의 출처 : 나영일, 『우리 활터 석호정』,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2년
서울에 유력한 활터가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당시의 상황에서,
다음의 <그림 3-4>에서의 마루 난간 구조물의 유사점은 주목할 만한 것 입니다.
<그림 3-4. 사정의 마루 난간의 구조물의 비교>
<그림 2-1>의 사정이 석호정이라는 추정에 이어서,
<그림 3-4>의 사정이 같은 사정이라는 추정을 이어서 하면,
<동영상 2-1>의 활터는 석호정이라는 추정이 가능해집니다.
이러한 추정이 옳든 지 옳지 안든지 간에,
그의 짧은 경성 체류 기간의 한계성 때문에,
버튼 홈즈는 동일한 사정에서 동영상과 사진을 찍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사정이 어디였든지 간에,
경성(서울)의 유력한 활터이었을 것은 명백한 것 같습니다.
참고 사항입니다만,
저자는 석호정 회원이 아니며,
사정의 위치 추정은 사료의 분석 차원에서 이루어진 사항입니다.
4. 4 번째 궁사에 대한 분석
4번째 궁사는 동영상에서 첫번째로 활을 내는 분입니다.
활을 내는 전체 과정은 다음의 <동영상 4-1>과 같습니다.
<동영상 4-1. 4번째 궁사가 활쏘는 전체 영상>
1) 거궁의 높이
다음의 <그림 4-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줌팔의 각도가 45º 이상으로 높은 거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 4-1. 4번째 궁사의 높은 거궁 모습>
<동영상 4-2>의 GIF 파일에서도 높은 거궁의 과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줌손과 깍지손이 이마 위까지 올라갑니다.
<동영상 4-2. 4번째 궁사의 높은 거궁>
2) 깍지손 높이 끌기
4번째 궁사는 깍지손을 귓바퀴 위로 끌어 만작을 하고 있습니다.
<동영상 4-3. 4번째 궁사의 깍지손 높이 끌기>
3) 만작 과정에서 어깨가 내려옴
4번째 궁사는 만작을 하는 과정에서 어깨가 아래로 내려옵니다.
이것은 몸통 등힘이 양쪽 어깨에 걸리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동영상 4-4. 4번째 궁사의 어깨가 내려옴>
4) 깍지 떼임 후 급격한 깍지손 내림
발시후 깍지손이 급격히 아래로 내려옵니다.
아마도 몸통 등힘이 중구미와 깍지손에 걸리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동영상 4-5. 4번째 궁사의 급격한 깍지 손 내림>
깍지손이 뒤로 펴지며 아래로 내려오는데,
그 시간이 무려 0.2초 정도로 무척 짧습니다.
이것은 깍지 손의 힘쓰는 방향이 아래쪽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깍지 손을 뒤로 빼었다면, 이렇게 급격하게 내려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화살 진행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깍지 손이 빠지는 온깍지 사법에 비교하면,
상당히 특이한 동작입니다.
5) 만작했을 때 활이 뉘인 정도
4번째 궁사가 만작을 했을 때, 활의 각도는 최소한 15º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림 4-2. 4번째 궁사의 만작시 활의 뉘인 정도>
위의 <그림 4-2>에서 아랫 고자는 줌손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가슴과 줌팔이 이루는 각도도 큰 편이어서,
깍지와 아랫고자가 이루는 선이 빗겨진 사선에 가깝습니다.
6) 골반 고정 정도
만작 전과 비교를 하면 골반은 약간 돌아간 것 같습니다.
이것은 궁띠에 있는 화살의 각도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림 4-3. 4번째 궁사의 골반 고정 정도>
위의 <그림 4-3>에서 좌측 화면은 동영상에서의 4번째 궁사의 첫 동작이고,
우측 화면은 발시가 이루어진 시점입니다.
화살 각도의 변화가 작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7) 발시후 아랫 고자가 당겨짐
발시후 잔신에서 윗고자는 앞으로 전진하고,
아랫 고자는 뒤로 당겨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림 4-4. 4번째 궁사의 발시후 잔신에서 아랫 고자가 당겨짐>
발시후 아랫 고자가 당겨지는 것은
반바닥으로 밀고 하삼지로 당기기에 발생하는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8) 쌍현의 정도
4번째 궁사는 만작을 했을 때, 현이 가슴에 살짝 닿습니다,
<그림 4-5. 4번째 궁사의 만작시 쌍현의 정도>
5. 5 번째 궁사에 대한 분석
5번째 궁사는 동영상에서 두 번째로 활을 내는 분입니다.
활을 내는 전체 과정은 다음의 <동영상 5-1>과 같습니다.
<동영상 5-1. 5번째 궁사가 활쏘는 전체 영상>
1) 거궁의 높이
다음의 <그림 5-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줌팔의 각도가 45º 이상으로 높은 거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 5-1. 5번째 궁사의 높은 거궁 모습>
2) 급격한 깍지 손 당김
위의 <동영상 5-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5번째 궁사는 깍지를 아주 급격하게 당깁니다.
활을 쏘는 동작을 보여주는 4분의 궁사 분들 중에서 제일 빠릅니다.
3) 만작했을 때 어깨 간격의 정도
5번째 궁사는 어깨 간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음의 <그림 5-2>에서 어깨가 좁혀지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림 5-2. 5번째 궁사의 어깨 간격의 정도>
4) 잔신에 대한 영상이 없음
유투브에 올려진 활쏘기 동영상에서는 끊겨진 부분이 있습니다.
5번째 궁사의 발시 장면 이후부터 6번째 궁사가 화살을 메기는 장면까지 입니다.
6. 6 번째 궁사에 대한 분석
6번째 궁사는 동영상에서 세 번째로 활을 내는 분입니다.
활을 내는 전체 과정은 다음의 <동영상 6-1>과 같습니다.
<동영상 6-1. 6번째 궁사가 활쏘는 전체 영상>
1) 거궁의 높이
다음의 <그림 6-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줌팔의 각도가 40º 이상으로 높은 거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 6-1. 6번째 궁사의 높은 거궁 모습>
2) 만작했을 때 어깨 간격의 정도
다음의 <그림 6-2>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어깨의 간격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림 6-2. 6번째 궁사의 어깨 간격의 정도>
3) 만작했을 때 양쪽 고자의 위치
6번째 궁사의 배경에는 하늘이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궁사 분들과는 다르게 만작했을 때의 활대의 모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림 6-3. 6번째 궁사의 만작시 고자 위치>
위의 그림 <6-3>에서 좌측 화면은 만작했을 때의 고자의 위치이고,
우측 화면은 만작하기 전의 고자의 위치입니다.
4) 만작을 하면서 어깨가 내려옴
위의 그림 <6-3>에서 좌측과 우측의 화면을 비교해 보면,
줌손과 깍지손이 만작을 하면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동영상 6-2. 활을 당기면서 양쪽 어깨가 계속 내려옴>
활을 당긴 후 만작이 진행되는 과정만을 편집한 <동영상 6-2>에서도,
어깨 내려옴을 확인할 수 있다.
5) 발시후 잔신에서 활대의 움직임이 적음
다음의 <그림 6-4>에서 발시후 활대의 각도는 그대로이며, 줌손과 직각을 유지하고 있다.
<그림 6-4. 6번째 궁사의 발시후 잔신에서 활대의 움직임>
7. 7 번째 궁사에 대한 분석
7번째 궁사는 동영상에서 네번째로 활을 내는 분입니다.
활을 내는 전체 과정은 다음의 <동영상 7-1>과 같습니다.
<동영상 7-1. 7번째 궁사가 활쏘는 전체 영상>
1) 갓을 쓴 궁사
7번째 궁사는 갓을 쓰고 활을 내고 있습니다.
갓의 크기는 그리 적은 편이 아닌 것을 <그림 7-1>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림 7-1. 7번째 궁사의 갓>
위의 <그림 7-1>에서 7번째 궁사 분이 안경을 쓰고 계신 것을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활터에서 통상적으로 제일 윗사람이 제일 왼쪽에 서는 것으로 유추해 볼 때,
7번째 궁사 분은 상당히 지체가 높거나 궁력(弓歷)이 오래된 분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2) 거궁의 높이
7번째 궁사 분의 줌손 최고 높이는 다름 분들보다는 낮은 편입니다.
그래도 거의 30º에 육박합니다.
<그림 7-2. 7번째 궁사의 거궁 높이>
3) 만작했을 때 어깨의 간격
7번째 궁사도 만작했을 때 어깨 간격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림 7-3. 7번째 궁사의 어깨 간격>
4) 약간 굽어진 줌팔 모양
7번째 궁사만 팔이 굽었습니다.
앞의 4, 5, 6번째 궁사의 줌팔은 거의 일직선이었습니다.
<그림 7-4. 7번째 궁사의 굽어진 줌팔 모양>
위의 <그림 7-4>를 보면 중구미가 위로 꺽인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카메라의 위치가 아래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듯합니다.
안으로 살짝 굽어진 모양도 아래에서 보면,
꺽인 부분이 높아 보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5) 활대의 모양
다음의 <그림 7-5>에서는 활대의 모양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뒷배경이 나무 기둥이기 때문에 화면에 잘 담겼나 봅니다.
<그림 7-5. 7번째 궁사의 활대 모양>
6) 어깨를 거의 내리지 않음
위의 <그림 7-5>에서 더 당기면서 만작 상태인 <그림 7-4>에 이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활의 양쪽 고자는 계속 당겨지며 움직이지만,
어깨의 높이 변화는 거의 없습니다.
<그림 7-6. 7번째 궁사의 어깨를 내리는 정도>
위의 <그림 7-6>에서 좌측 화면은 만작했을 때의 모습이고,
우측 화면은 만작하기 직전의 모습입니다.
<그림 7-6>에서의 수평으로 그어진 2개의 직선은,
뒷배경의 나무를 기준으로 그어진 수평선입니다.
이 수평선을 기준으로 파악해 보면,
깍지 손 어깨는 내려온 반면에,
줌손의 어깨가 약간 올라갈 뿐 입니다.
앞에서의 4, 5, 6 번째 궁사의 어깨 내림과 대비되는 움직임 입니다.
8. 동영상 분석 결과에 대한 고찰
한장의 사진에 대해서도, 보는 사람에 따라 만가지 의견과 견해가 있습니다.
하물며 20초 짜리 동영상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의 사항들은 미천한 실력과 짧은 경력을 가진,
저자의 우둔한 생각임을 먼저 밝힙니다.
첫째, 갓을 쓰고 활을 내는 장면이 기록된 동영상이라는 것입니다.
1895년 시행된 단발령은 잠시 철회되었다가, 1900년에 다시 부활하여 전국적으로 실행되었습니다.
따라서 활쏘기 동영상은 그 자체로도 구한말에 촬영된 동영상임을 증명하는 단서가 됩니다.
둘째, 만작했을 때나 거궁과정에서 활대는 약간 뉘어졌습니다.
이것은 활을 쏜 4명의 궁사가 모두 동일했습니다.
셋째, 3명의 궁사가 만작을 하면서 양쪽 어깨를 내리는 동작을 했습니다.
몸통 등힘이 어깨에 작용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동작입니다.
넷째, 3명의 궁사의 거궁의 높게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높은 거궁은 어깨 내림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섯째, 활쏘기 동영상의 촬영 시기에 대한 연대 추정은,
1899년, 1901년, 1913년 등의 여러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영화 촬영기가 발명되어 시판된 지 몇 년 안되는 시점인 것을 감안하면,
이 동영상의 활쏘기 영상은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동영상이 될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 동영상이 가지는 사료적 가치는 크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9. 시사점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이 보유하고 있던 수많은 활과 도검은,
현재 몇 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625 사변 등을 겪으며,
많은 문화유산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활에 관한 문화유산도 그러한데,
활쏘기 관련 사진들이나 영상들도 무척 희귀한 편입니다.
본고에서 분석한 동영상은 20초 짜리의 짧은 영상으로서,
사람의 얼굴 형상만 겨우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조악한 화질의 동영상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동영상들이 보다 더 많이 발굴되고 연구된다면,
우리 활쏘기 문화가 더욱 풍성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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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 좋은 자료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gif 파일들의 용량이 커서,
느린 인터넷 환경에서는
스크롤의 압박이 있을 듯 합니다.
연구해볼 내용이 많고 시사하는 바가 많은 영상과 분석이었습니다.
홍접장님의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짧은 동영상에서 개인의 놀라운 분석력을 바탕으로 정리를 하셨다는 점에 이글을 읽고 속으로 놀랐습니다.
스스로 느낀점도 많았던 글입니다. the greatest.
감사합니다.
흔히 잊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합니다.
내면에서 차올라 가두어 둘수 없다는 것이죠.
동영상의 촬영자를 분석이 끝난 후에 알았을 정도로,
동영상 그 자체에 매료되었던 같습니다.
생각이 자라날 틈도 없었던 것이지요.
덕분에 3일 동안 새벽 별을 보았더니,
지금은 눈꺼풀이 무겁기만 합니다.
고래의 사풍에 팔찌동의 내용에 대해 정에서 격논이 벌어진적이 있습니다. 설자리가 좌우궁에 따라 다르고
서는 순서가 뒤쪽에서 보아 현재 좌에서 우로 정렬하는데 구한말 사진을 보면 우에서 좌로 정렬한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혼란스러웠는데 홍성우님의 설명을 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 많아집니다. 공부 잘하였습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저도 사진의 장소가 어디일까 무척 궁금했었습니다.
석호정일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였지만, 과녁부근이 너무 광활하고, 넓어서 조금은 의심을 했었습니다. 지금의 동국대학교 부근은 명첣방인데...너무 허허벌판이라서...오히려 사진의 각도로 봐서, 서쪽에 있던 모화관쪽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여하간 너무 재미있네요. 언제 한번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나영일 010-4378-7144입니다.
핸드폰 번호를 잘못 남기셔서,
교수님 학과장 사무실로 어렵게 전화를 했었습니다.
그때 제 번호를 직접 알려 드렸사오니,
오후 5 이후의 편한 시간에 연락주십시요.
지난 주말에 홍접장님과 만나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추가로 확인해 본 결과 활터는 서울에 있는 황학정으로 사료됩니다. 추가 자료로 확인 해 보니 당시 버튼 홈즈가 서울에 온 것은 1901년이고 서울에서 활동사진과 기념사진을 같이 찍었습니다. 사진과 동영상에 나오는 활터는 동일한 곳이고 경희궁 후원의 황학정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첨부된 황학정 사진의 처마모양, 대들보나 기둥, 건물 옆의 소나무형상(독특한 형태라서 눈에 확연히 들어옵니다), 사대앞의 돌계단 등 상당히 일치함을 알 수 있습니다.
사료에 대하여 성급한 단정을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버튼홈즈가 남긴 많은 양의 영상과 자료는 몇십년간 방치되어 있었고, 아직도 복원 작업이 미루어지고 있습니다.
사료들이 추가로 발굴되어야 판단할 수 있는 것이구요.
그런데, 우리가 만났었나요?
@오늘즐거운(홍성우) 석호정 정용석입니다
@남산골한량 아. 예~. 제가 사람 이름을 잘 기억 못하는 편이거든요. 죄송합니다.
버튼 홈즈가 궁궐 사진도 찍었었죠.
첨부하신 사진은 황학정 개정 행사를 담은 사진으로 추정되는 사진입니다.
1900년 3월로 추정되구요.
그러니까 1901년이면,
황학정은 궁궐 안에 있었겠네요.
저는 북악산이 보이는 버튼 홈즈의 사진에 나오는 사정이,
장충단 쪽에 있지 않았나 추정했을 따름입니다.
동영상에 나오는 사정 위치에 대한 것은
단.지. 추정일 뿐입니다.
버튼 홈즈가 같은 활터에서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는 자료도 없구요.
해석이 새롭게 보이는군요,, 저희 정 카페에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929년 조선의 궁술이 발간되기 이전의 동영상입니다.
저는 이 동영상에서 '철전의 묘법'을 확인 보고자 했었습니다.
다소 편향된 시각으로 분석한 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