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천사 산문쟁이로 진출하다
1.
15-6년 전쯤 되었을까.
그즈음 우리들은 공주 중동 뒷골목 안연옥 시인이 운영하는 찻집 ‘다예원’에서 이차구차로 모여 시국과 문학 그리고 술과
흰소리로 중년의 시간을 죽이곤 했었다. 하늘 뚜껑이 열려서 눈 폭탄이 푸대자루로 쏟아지던 그해 겨울이었던가. 꺾어진 골목길로
조금은 낡았음직한 승용차 한 대가 눈발을 뚫고 가까스로 멈춰선다. 그리고 열린 문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고릴라 몸집들.
유용주, 한창훈, 이정록, 가덕현, ‘내일을 여는 책’의 황덕명 등 인간 바위덩어리들이 골목길로 꾸역꾸역 게워지고 맨 마지막에
‘맑은 눈’ 하나 운전대 세우고 내렸으니.
동시 작가 안학수다.
첫 인상은 단아함이었다. 다산 정약용의 갓끈처럼 깡똥하진 않았지만 먹테 안경을 중심으로 배치된 용모가 딸깍발이와
진정성으로 조화를 이룬 풍모였다. 맑고 투명하다. 눈빛이 진주처럼 반짝이지 않고 이슬처럼 꽃대궁 어디쯤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흔들리는 것이다. 나는 재빨리 ‘저니가 지닌 글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해보았고.
등에 공 하나 넣고/ 가슴도 불룩한 아저씨/ 움츠린 원숭이 목에/ 아이처럼 쪼끄맣다.
가슴 만져 보고 등 두드려도/ 바보처럼 그냥 웃더니/ 몇 살이냐고 다정히 묻는다
선생님이/ 마음 좋은 사람을 조심하라 했다. /엄마는/ 친절한 사람이 위험하다 했다.
아이를 괴롭히는 나쁜 사람일 거야. /아이를 꾀어 가는 못된 사람일 거야. /괴상한 생김이 정말 그런 것 같아/ 침을 뱉어 주고 재빨리 도망쳤다.
-『낙지네 개흙잔치』의 「곱추 아저씨」에서
시인은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주고 ‘아가야, 돌부리를 조심해야지.’ 타이르며 먼지를 털어준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진
이유는 ‘친절한 우리 이웃 간첩인가 다시 보자’고 주입시킨 전봇대 표어의 영향도 있지만 기실 남들과 다른 그의 체형 탓이다.
그럴수록 그는 더 끈끈한 인내심으로 껴안겠노라 마음을 다진다. 겁먹은 아이의 몸에 더 큰 사랑이 잉태될 때까지 따사한 체온을
지성껏 적셔주어야 한다. 그렇듯 뱉는 침 고스란히 받으며 품에 안아주는 흥부네 작가이다. 정이 많고 지나치게 헌신적이며 하시라도
훌훌 털고 맨살 부빌 준비가 되어 있다. 물론 그가 소년의 눈을 가진 감상주의자라는 것도 곧바로 알았지만.
눈 내리는 장바닥을/ 온몸으로/ 쓸며, 쓸며/앞에 놓인 동전 바구니를/ 한 발짝씩/ 밀며, 밀며/ 목소리 예 쁜 저
아줌마/ 인어가 잘못 태어났나 보다./ 다리 없는 아랫도리엔/ 지느러미 옷을 못 입고/ 검은 고무 자루를 입었다./
갯바위를 밀어 대던 밀물 그린다./ 모래톱을 쓸어 주던 썰물 그린다./ 바다로 가야 하는데 / 언제나 갈까?/ 입김에 시린
볼보다/ 더 차가운 동전 몇 개.
-『낙지네 개흙잔치』의 「장터의 노래」에서-
초록빛 바다에서 시장바닥에 던져진 인어 하나.
골목길 좌판 사이로 미끄러지며 노래 부른다. 바퀴 좌판에 가지런히 쌓인 수건이나 빚, 비누나 고무줄 모양들이 찢어진
차양 아래로 번뜩번뜩 노랗고 파란 빛을 내기도 한다. 지느러미를 바라보던 시인의 눈이 재빨리 진열대 위에 모래톱과 썰물을
오버랩시킨다. 바다 인어다. 그러나 검은 고무 자루로 아랫도리를 감춘 채 바닥을 쓸고 다니는 그녀를 인어라고 칭하는 것은 자칫
호사스런 시적 오만이요 도식적 관념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안학수의 눈’이라는 점이다. 얼핏 타자화된 표현도 목소리의 주체와
몸의 진정성에 따라 사랑이 되고 희망이 되는 것이다. 그 역시 소싯적부터 몸의 신산고초를 경험했고 지금도 진행 중이며 언제라도
알몸으로 맞설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까 그 언어는 아픈 영혼들에게 안개 나라 사연을 쏘아대는 안학수식 특허적 메타포이다.
이 초록빛 동시 작가가 어느 날 불쑥 성장 소설 한권을 세상에 내놓았으니.
2.
‘남들은 첫 기억으로 무엇을 간직하고 있을까.’
그 첫 마디가 ‘하늘에서 75센티’ 전체에서 가장 문학적인 표현이었던 것 같다. 지금 소년은 어머니의 품에 안겨 강물
속으로 한없이 쏠려 들어가는 중이다. 억새풀 대궁이 낭창낭창 기울 때마다 출렁출렁 흔들리는 물살들 한가운데서 어머니가 아들을
바라본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빛이다. 그리고.
“어차피 쬐끔 먼저 가는 거여.”
라며, 아이를 으스러지게 껴안는다. 죽음이다. 강물이 퍼뜩퍼뜩 비늘을 세운다. 문득 위기를 감지한 어린 아들이 어머니에게 찰싹 매달려 사정하기 때문이다.
“엄마, 나, 이젠 등 고쳐달라고 안 할 거여.”
이 말은 곱씹을 때마다 푸른 언덕이 모래성으로 무너지는 것 같다.
‘살고 싶어요. 울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구요.’
놀란 어머니는 아들을 들쳐업고 화들짝 강물을 빠져나와 지난한 세월 곁에 서 있기로 혼신의 다짐을 한다. 물론
맨바닥이다. 읍내 터미널 앞자리 찾아 딸기 좌판을 벌였고 더러는 아이를 업고 머리에 포목을 인 채 부여와 서천 그리고 남녘 땅까지
행상에 나서기도 한다. 세상은 당연히 녹록치 않았다. 돈을 쥔 손바닥은 절대로 펴지 않았지만 문제는 천성이 너무 착하다는
점이다. 장똘뱅이건 보부상 시절이건 언저리 사람들에게 모진 말 한번 못 뱉는다. 그 순둥이 성품 탓일까. 더러는 껍데기까지 홀라당
벗겨지는 사기를 당하다가도 오로지 부지런함 하나로 식솔들을 끌어당기려 한다.
수나는 몸을 웅크리며 어머니의 매운 손을 받아냈다. 수봉이 놀라 다시 큰 소리로 울어댔다. 수나는 다시 얼굴을 치켜들고 어머니를 똑바로 보며 소리쳤다.
“두구 봐. 내가 죽기 전에 꼭 그놈을 찢어쥑일 겨.”
“이런 나쁜 노무 새끼.”
다시 어머니의 손에 뺨이 찰싹 돌아갔다. 어머니는 실성한 사람처럼 연거푸 수나의 뺨을 때렸다. 잠시 모든 소리가 죽었다. 수봉이의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다가 다시 되살아났다.(92쪽)
수나는 몇 년 째 어두운 방안에 누워만 있다. 그 아픔의 모습이 주인집 여섯 살짜리 영기에게는 그저 망치로 때리는
‘두더지 게임기’처럼 가지고 놀기 좋은 장난감일 뿐이다. 수도 없이 공짜 매를 맞다가 마침내 수나는 복수를 결심한다. 특히 동생
수봉이마저 맞고 들어오자 마침내 쌓였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동생 수봉이에게 영기를 찍으라고 도끼를 들고 나가게 시킨다. 이
어린 양의 ‘상해 교사’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곧바로 안채 행랑채 어른들에게 우르르 둘러싸이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연거푸 뺨을 맞으면서 수나는 ‘죽일 거여. 다 죽일 거여.’만 되풀이하는 것이다. 때리는 손바닥이 더 아팠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조 천사 숙이누나다.
한 학년을 월반할 만큼 머리 좋은 소녀였으나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며 평생 가시밭길을 예단하는 ‘한국전쟁 직후 재건 시대
소녀상’이다. 친척집 식모살이하다가 너무 힘에 부쳐 집으로 돌아와서는 차마 문턱을 넘지 못하는 풍경이다.
아버지가 방문을 열어주고 어머니가 등을 밀어도 훌쩍훌쩍 눈물만 훔칠 뿐 움직이지 않았다. 수봉이가 “누나.” 하고 마루를 내려서 치맛자락을 잡았다. 숙이는 수봉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애비 에미가 원망스럽냐?”
어머니도 소매로 눈을 훔치며 물었다. 숙이는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는 금방 눈치를 챘다. 제 딴에는 수나를 못 보겠던 것이다. 수나가 기어서 마루로 나서자 숙이는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았다.
“누나가 아무것도 못 사왔다.”(67쪽)
‘누나, 아무 것도 못 사왔다.’
슬퍼서 아름다운 문장이 꽃잎처럼 쟁쟁 귓전에 떨어진다. 천사표 숙이는 동생이 자신 때문에 장애를 입었다고 생각하며 평생
업을 짊어지려 하니 영락없는 그 어미에 그 딸이다. 딸을 무보수로 식모살이시킨 친척에게 모진 말 한 마디 던지지 못하는 어머니
핏줄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것이다. 식모살이건 편물점이건 자투리 일감 찾아 뿌리 내리는 ‘여자의 일생’이 리얼하게 이어진다.
수나의 ‘훔친 도나스 사태’를 스스로 매듭을 풀게 설득하는 장면에서 숙이는 가장 어른스러운 풍모를 보인다. 그리고
도넛집 주인과의 계획적인 상면을 통해 좀도둑질에 면죄부를 주게 하는 것이다. “그 집 아줌마는 너한테 되레 미안하게 생각하더라.
그냥 한 개 줄 걸 그랬다고 걱정하더라.”라는 식으로 동생의 퇴로를 열어주며 돈을 내미는 것이다. 그 후 수나도 발 뻗고 자게
되었고.
3.
다시 여기저기 오그르르 쏠려다니던 중년의 늦가을 즈음이었을까.
‘대전․충남 작가회의 발기인 대회’ 예비 모임 장소가 ‘대천 임해수련원’이었던 터라 보령 출신 예술가들도 여럿 섞인
자리였다. 뒤풀이 자리가 익어가면서 차츰 취기가 올랐고 나는 두 살 아래의 대천 토박이 문인과 술잔을 나누는 중이었다. 그는
사이사이 “말씀 낮추십시오.”를 몇 차례 주문했다. 거기까진 그냥저냥 그랬는데, 그가 옆자리 안학수 선배 가리키며 문득 ‘학수
친구’라는 표현을 여러 번 되풀이하는 것이다. 나는 말을 까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지만 서열 정리에 체질적으로 민감한 성격인지라
대뜸.
“학수 친구라니, 호칭이 왜 그럽니까?”
황당 표정으로 확 풀어던졌다. 그러자 초면의 착한 문인이 정색을 하며.
“앗! 죄송합니다. 사실은 학수형이 네 살 많지만 저희들과 국민학교를 같은 학년으로 다녔기 때문에 어렸을 때의 호칭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고치겠습니다.”
그렇게 대번에 수정했고.
그랬다. 수나는 어린 어느 날 열 살 많은 동네 형의 발길질 한 방에 생의 모든 게 바뀌어버린다. 그게 운명이다. 그런
불시착을 이유로 소년을 괴롭히는 악동들이 불쑥불쑥 등장한다. 주인집 아들 영기가 그랬고 학교에서의 문제아 깽두들이 각다귀 떼처럼
달라붙는다. 그 어린 것들의 낄낄대는 놀이 수준이 당사자 수나에겐 생사의 갈림길이요 절망의 지옥이 된다. 그래서 섬마섬마에
성공하고 마침내 늦깎이로 동참한 학교는 산 너머 더 높은 산처럼 첩첩산중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감지하고 있으나 비켜날 방법은
전혀 없다. 동시에 교실의 흉터들이 그렇게 시나브로 문장의 뿌리를 틔울 준비를 하고 있기도 했으니.
사물을 새롭게 재탄생시키는 시인의 눈을 보라.
그를 곱사등으로 만든 동네 형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미안하다’라고 사과할 때 작가 안학수는 어이없게도 감사함을
표한다. 그 돌출적 운명으로 글을 만났고 시를 썼고 소설을 접했고 사람 사물을 보는 눈이 새로워졌음을 감사하는 것이다. 그의
문장은 뒤로 갈수록 후덕해진다. 그는 대못 박힌 상처까지 솜사탕처럼 녹이고 싶었던 것일까. 상처의 기억은 표창 자국으로 쑤셔오는데
그의 문장은 흐르는 물처럼 유순해진다. 비로소 뒤로 갈수록 하늘빛과 가까워지는 첩첩산중의 섭리를 관통할 참이다.
4.
저녁 노을 그리고 해변가,
대천 해수욕장 ‘만남의 광장’ 돌계단 위에 서있던 굽은 등 사내 이야기다. 그가 소설을 쓰겠다고 팔을 당기더니 며칠 뒤
불쑥 원고지 봉투를 배달시키는 바람에 약간은 당황했다. 예상대로 몸의 경위에 관련된 단편이었고 습작풍과 세련됨의 혼재였다. 나는
‘소설을 쓰지 말라’고 가볍게 잘랐다. 소설 장르가 고통스러운 업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나는 그가 직업(천보당 금은방)을 가진
글쟁이로 살아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글보다 밥이 소중하다’는 세속적 좌우명은 지금도 유효하지만 나의 마음은 며칠 뒤에
뒤바뀐다. ‘선배님 소설 좋으니 한번 써봅시다.’라고.
“근디 이름이 안서나가 뭐냐? 뭐가 안 서?”
“서나가 아니구 수나여. 윤수나! 성 이름은 뭔디?”
“나? 난 그 이름두 찬란헌 지만태다.”
“쥐만 허다구? 뭐가 지만칸?”(236쪽)
인연을 맺은 것들은 사랑이 무르익을 때쯤 떠나는 법이다.
착한 담임 장안선 선생님도 고정간첩 연루설로 떠났고 섬마을 전학생 영주도 외톨이로 떠났고 손목 없는 아이스케키 장사
지만태도 피붙이 찾아 떠났고 면죄부를 준 도나스 아줌마도 이사와 함께 헤어졌고 모찌떡 아줌마는 돈을 떼먹고 떠났고 수나가 기르던
애지중지 약병아리도 동네 개에게 물려 세상을 떠났다. 우리들은 그렇게 헤어짐을 준비하며 그리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술장사
노양이나 딸기좌판 꼬바리까지 모두 마음을 열면 물불 안 가리고 순정을 던지는 이 땅의 민초들이니 가난한 몸끼리 그렇게 기대고
사랑하며 체온을 나누는 것이다.
그런 유년의 부채가 먼 훗날 흠집난 영혼들을 닦아주는 문장을 생산하는 것이다. 어머니와 누나에게 진 빚이 그렇고 장안선
선생님과 구두닦이 지만태로부터 진 빚도 눈물겹게 두둑하다. 그리고 동생 수봉이에게 얹어준 짐도 겹겹이다. 형 때문에 얼떨결에
도끼 사건에 휘말렸던 수봉이도 어른이 된 지금 목회자의 길을 가고 있다. 지금도 이따금 지만태와 ‘아이스-케키’ 소리를 동시에
떠올리면 하늘나라 뭉게구름들이 ‘달고 시원한 얼음과자’ 보따리를 나풀나풀 쏟아부어줄 것 같다고 회고도 한다는데.
마지막으로 금은방 부분.
그도 한 때 금은방 천보당에 혼신을 쏟으려 했었다. 그늘진 것들을 다듬어 빛을 만드는 금세공의 보람도 있었다. 시계
속에는 정교하게 돌아가는 우주의 이치가 있었고 식지 않는 심장으로 태양을 달구는 박동도 있었다. 열심히 일했으나 인간에 대한
믿음의 상실과 함께 여기저기 구멍이 뚫렸고 결국 천보당은 이차구차 사연으로 문을 닫는다. 그 와중에 건전지를 거꾸로 끼워놓고
‘시계가 안 간다’고 찾아온 한심성 사내를 만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그가 바로 소설가 이문구다. 이제 그는 동시 작가이면서
소설가가 되었고 그만큼 짐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객쩍은 잔소리 하나.
이 책은 소년 시절 직업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로 마무리하고 천보당 사연은 따로 훗날을 기약했어야 했다. 박수가 나올 즈음
드라이하게 자르는 게 프로의 세계인데 안학수 작가는 생산품에 대해 모질지 못하다. 그러니까 사물을 꿰는 눈빛이 축축이 젖어있으되
철저히 객관화되어야 한다. 더불어 내가 아닌 남의 몸에 대한 깊은 사랑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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