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들의 그늘진 기억에 대하여
‘사라호’ 태풍이 쓸고 간 이듬 해 겨울.
다섯 살 소년은 감나무 꼭대기로 달랑거리는 ‘조선의 홍시’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늦가을 감 수확 마감 후에도 꼭 두어 개
정도 까치밥으로 남겼다는 조상들의 그 ‘넉넉한 서정’의 홍시다. 때까치 한 마리 홍시를 향해 부리를 세울 즈음 빨랫줄에 널린
까만 꽃무늬 홑청이 바람에 쏠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지붕 위로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아이는 토방에서 벌떡 일어나 울부짖기
시작했다.
- 오재미이-. 오재미.
‘오자미’는 헝겊주머니에 콩이나 팥을 넣고 바느질로 봉하여서 공 모양으로 만든 장난감 주머니이다. 주로 누나들이
공놀이하듯 허공에 던졌다가 받아내곤 했는데 나중에 낡고 닳으면 실밥 사이로 콩알이 줄줄 새어나오기도 했다. 오자미 봉지가 이불
홑청과 색깔이 똑같아서 화들짝 놀란 아이가 ‘오재미가 날아간다아.’ 소리를 지른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인데
어머니는 그냥 피식 웃으시더니 태연히 추녀 끝에 사다리를 놓고 작대기로 홑청을 끌어내렸을 뿐이다. 이상하다. 그 이불 껍데기가
곡선으로 흩날리는 그 순간 초저녁 잿빛 배경이 우울하게 머리를 감싸는 것이다. 동시에 나의 미래가 음습한 저물녘 색깔일 것이라는
직감이 스쳤다. 5.16 쿠데타 직후 즈음이다.
가정방문하던 수미는 개울 건너 은행나무 집이다.
징검다리 길목에서 은행을 줍는 아낙의 엉덩이가 금세 개울물에 빠질 것 같다. 그랬다. 샛노란 은행열매는 손에 닿기만
해도 구린내 투성이였다. 그래서 자루에 담은 은행알들을 맨 먼저 흐르는 개울물에 푹신 삭힌다. 그 다음 꾹꾹 눌러 삭힌 곡선들을
자디잘게 부숴 물살에 쓸려보낸 다음 단단한 은행알만 남긴다. 그렇게 뽑아낸 은행알들을 그늘에 오래도록 말렸다가 다시 각질의
껍데기를 깨뜨려 투다리집 술안주로 등장하는 것이다.
나는 일주일째 결석한 수미네 농막을 방문하는 총각 선생이었다.
결석 이유와 방문의 사연은 생략하고.
- 선생님 저는 실업계에 갔으면 큰일날 뻔 했어요.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제 얼굴로는 취업을 못한대요.
나는 여자들의 미모를 구분하지 못하는 특이 체질이다. 특히 브리운관에 등장하는 걸그룹의 얼굴들은 전혀 구별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물고기와 미인의 얼굴은 개체의 구분만 다를 뿐 똑같은 빵틀의 생산품이라고 말뚝박았다. 농투산이 스타일의 순이는,
생김새 탓으로 어린 시절부터 사내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받고 이유없이 돌멩이를 맞기도 하면서 성질이 더러워졌다고 히히덕거렸다.
다시 태어나면 반드시 미스코리아로 탄생하겠다며 그니는 하하하 웃더니 은행나무 푸대자루를 흔들었다. 문득 은행 자루
휘둘리는 곡선이 쥐불놀이처럼 파란 불꽃으로 치달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수미는 방황을 끊고 학교에 나왔고 그후 책상머리에
집중력있게 붙어 있더니 성적이 쑥쑥 올랐다. 아무튼 그니는 열심히 공부해서 면사무소에 근무하더니 곧바로 둥지를 틀었고 족제비 같은
공주님을 둘씩이나 뽑아내었다.
칠팔년 전쯤 대전충남작가회의 회장 시절 칠갑산 등반을 간 적이 있다. 나는 구두를 신고 장정에 돌입했고 무르팍이
욱신대는 만큼 급한 뒤풀이를 가졌다. 막판에 청양 터줏대감 이종진 시인이 와서 한판 쏘는 바람에 마음이 들뜬 회원들이 어지간히
맛이 갔던 것 같다. 오는 길에 시인 윤임수와 작가회의 사무국장 0순위 후보 이정섭이 대취하여 승용차 뒷칸에서 해롱거린다.
‘내려서 한판 붙을깡.’
‘우히히 쪼아 쪼아.’
그런 수준이다. 그리고 잠시 후 승용차를 세우고 그 음주다뇨증 환자들 틈에 섞여 잠깐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허리띠를
끄른 채 잠깐 ‘달빛 그리고 화사한 별빛’에 취했을 때 어디선가 ‘툭’ 소리가 들렸던 것 같기는 하다. 동반 소변객 이정섭 시인이
냇가로 떨어진 것도 까맣게 모른 채 밤바람에 취했다. 뭔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그보다는 ‘방출의 시원함’에
몰입한 것이다. 그때 공포 영화 ‘링’에서처럼 툭툭 돌멩이를 부여잡고 올라오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보인다. 어렵쇼? 이정섭
시인이다. 그가 제방에 오르기 위해 석축 사이에 손가락을 끼울 때마다 부스스 자갈과 모래알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허우적거리는
그의 팔놀림에서 커다란 포물선을 보았다. 아무튼 그는 떨어질듯 하면서도 바둥바둥 팔뚝을 폐곡선으로 올렸다가 힘을 주곤 했다. 그
위기의 장면을 보며 나는 어이없게도 배꼽을 잡고 웃기만 했고.
그런 식으로 한 때 주정뱅이의 진정성을 믿었었고 독설가의 매력에 빠지기도 했었다. 불안을 예측하며 행복을 다듬기도 하다가 시나브로 간(肝) 수치의 분량을 키워가고 있는 중이다.
또 하나 이차구차 사연은 빼고 사건개요만 뽑으면.
중년의 나는 봄방학 근무조였다. 오후쯤 송별회를 마치고 ‘빠이빠이’까지 끝낸 전출대상 선배 교사가 거칠게 교무실 문을
열어 제킨다. 교무실에 아무도 없었으므로 ‘나와 그’ 일 대 일 구도이다. 다짜고짜 울트라맨 눈빛을 쏘아대며 ‘교장 어딨어?’라고
큰 소리를 질렀다. 나는 ‘없다’고 도리질쳤다. 이번에는 ‘교감 어딨어.’라고 문초했다. 쬐끄만 소리로(그러나 태연하게) 다시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조금은 어벙하게 시치미뎄다. 물론 행불자들의 소재는 이미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나는 바로 직전 틈입자의
출동 정보를 받고 교감님을 테니스장으로 피신시킨 채 ‘도피자들의 불안한 공놀이’를 주문해놓은 상태였다.
분을 못이긴 울트라맨이 먼저 화분을 하나를 간단하게 해결했다. 꽃이 피지 않는 알로에였다. 박살난 사금파리 옆으로
꺾어진 알로에 대궁에서 여전히 바늘침과 엽록소가 풍겨 나오는 중이었다. 이번에도 전혀 죄가 없는 교무실 탁자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탁자는 이미 취권의 공포에 전율을 느끼는 중이었으나 도망갈 수 있는 이동 장치가 전무했으므로 고스란히 발길질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탁자를 덮은 유리창이 나갔고 꽃무늬 탁자보 속에 덮여있던 베니어 합판도 구두 뒷꿈치를 먹고 찌그러졌다. 문제는
마지막 한 마디가 너무 쩨쩨했다는 것이다. ‘봄 방학 근무 중에 교장 교감 모두 학교를 비웠으므로 교육청에 신고하겠다’는 말을
듣는 순간 마초에의 경외심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어쨌든 나는 그 선생님을 살살 떠밀면서 현관까지 내보냈다.
- 다 죽여버릴 거야.
그러더니 잠깐 내 얼굴을 쳐다본다. 나는‘업힌 돼지 눈뜨듯’ 최대한 수줍고 조신한 표정으로 처분만 바라는 중인데.
- 넌 빼고.
했다. 그 와중에도 명단에서 제외된 게 기뻐서 헤벌레 웃는데 콧방울이 툭 튀어나왔다. 콧물이 금세 떨어지지 않고 5초
정도 둥그렇게 달랑거리다 바닥에 포물선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그랬다. 그제야 나는 ‘동료의 죽음으로 맹수의 추격을 벗어난
초식동물’처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금은 추적자 그니나 도피자 옛 관료까지 모두 망자가 되었고 근무조였던 나도 쪼그라드는 중이다. 복숭아로 치면 부드러운
솜털이 잦아드는 나이가 된 것이다. 수박 껍데기 매끄러운 윤기가 사라지면서 그 운명적 세파에 적응하려고 마음 다듬는 중이다.
미래파 박찬세 시인의 고딩 시절 이야기다.
그는 밤마다 알바를 뛰었으므로 학교에선 주로 ‘잠자는 사자’의 배역만 했다고 한다. 나 역시 수십 년 교단 생활 속에서
워낙 다양한 체형의 벗들에게 익숙해져있던 터라 그 정도 무용담엔 그다지 당황하지 않는다. 조는 아이에게도 당연히 너그럽다.
우리들 역시 훈련소에서 ‘대가리 박아’ 상태로 수면에 빠지기도 했으니까.
그를 어엿비 여긴 스승 중에 김홍정 선생도 포함되었다고 해서 잠깐 반갑기도 했다. 그가 참고서를 쌓아놓고 고개를 묻고 자고 있는데 김 선생이.
- 찬세를 봐라. 얼마나 공부에 몰두했으면 이 많은 책을 베고 잔다니?
했단다. 아무튼 시인 지망생 소년은 읍단위 소도시 그 학교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들 부류처럼 장기 결석 코스를
거쳤고 일주일 만에 돌아왔더라나. 학생부장님은 아무 말없이 몽둥이를 들더니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뻗치고 몸으로 때우자는
묵계다. 하지만 ‘돌아온 탕아’는 코에 검지손가락을 붙이고.
- 쉿.
주머니에서 자퇴 원서를 꺼내 보여드렸다. 마음 여린 스승께서는 금세 얼굴이 굳은 채.
- 이러면 안 된다. 일단 고등학교 졸업장은 따야 한다. 공부를 해야지.
- 공부하기 위해서 자퇴하는 건데요.
‘공부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 둔다.’는 문장은 아이러니하지만 진실이 되기도 한다. 그 후 자퇴생 청소년은 질곡의 곡선을 그으며 지금은 시인의 길을 걷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헤어지면서.
- 우리 어머니는 명절 때 아들 넷 데리고 시장 보러 나설 때면 세상에 부러운 게 없으시대요.
돌아오는 밤길, 아직은 새벽이 오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휘청이는 그림자 곡선이 조금은 뿌듯했던 것 같다.
철호는 교내 알바생이다.
주당 이틀씩 교무실 입구 신발장 아래에 돗자리를 깔고 모든 선생님의 구두를 닦아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구두코에
침을 퇫퇫 뱉으며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모습이 대한 늬우스 역군처럼 대견스럽다. 그리고 우울증에 젖은 미즈박 선생님이 그 앞으로
다가서서 맡겼던 구두를 집어들었다. 그런데 자기의 하이힐 끈이 떨어져나간 것을 확인한 미즈 우울님의 눈꼬리가 나쁜 곡선으로
꾸불텅거린다. ‘아차, 우울증 재발이다.’ 하는 순간.
- 네가 그랬닛?
- ……아뇨.
기실 철호는 베란다 사이로 펼쳐진 구름 잔치에 취해 있었다. 구두닦이 작업이 끝났으므로 잠깐 쉬었다가 교실에 들어갈 참이었다.
- 이 자식아, 왜 남의 구두끈을 끊어놓앗!
하더니 머리를 ‘딱’ 때리는 것이다. 뜨악하게 바라보던 철호의 얼굴에 연거푸 손바닥이 날아들었고 그 중의 한 대는 뺨에
닿았다. 그리고 우체국에 다녀오던 내가 그 엉킨 틈 사이로 끼어들어 상황을 정리했다. 미즈 우울님은 여전히 시근덕대는데 철호는
스승의 얼굴을 뻘쭘하게 바라본다. 눈썹이 자벌레 곡선으로 흐느적거리더니 냉소를 띄우며.
- 한 대만 더 맞게 되면 저도 한 방 날릴 참이었어요.
그랬다. 솔직한 토로는 때로 정수리 때리는 둔기가 되기도 했다. 그 철호가 지금은 목재소를 운영하는 나이 사십 사장님이 되었다. 경제적 기반을 잡고 쬐끔씩 이웃들을 도와준다는데.
마지막으로 식민지 그 시대 열일곱 바우 총각 얘기다.
서해안 개펄 사람들은 농업이 주를 이루었지만 농한기만 되면 바다로 나갔다. 삽으로 낚지 구멍을 파서 하나씩 구럭에 넣고
돌아오는 길이다. 열아홉 과년한 봉순이 처녀는 조개캐던 호미를 찾아 아주 잠깐 썰물 쪽으로 뛰어가던 중이다. 그리고 개펄
한가운데서 딱 한번 우연히 정면으로 마주쳤을 뿐이다.
아름답다.
바우와 봉순이가 동시에 황활함에 취한 이유는 서로의 눈동자에서 쏟아지는 ‘이슬의 폭포’를 만났기 때문이다. 바우가 먼저
재빨리 눈길을 내리고 구럭을 당겨 앞으로 뛰어갔다. 그러다가 걸음을 멈춰 슬그머니 돌아선 순간 그때까지 서있던 봉순이의 눈과
다시 마주친다. 바구니를 떨어뜨리는 봉순이 얼굴이 발갛게 물든 것은 저녁놀 탓이 아니다.
그뿐이었다. 세월이 흘렀고 봉순이는 점지된 웃마을 사내와 결혼을 했고 바우 역시 중매로 착한 처녀 만나 장가를 들었다.
그렇게 각자 따로 둥지를 틀어 아들 딸 낳고 잘 살았다. 불현듯 민감한 스크린이 가슴을 설레게 했지만 일상에 묻혀 금세
털어버리려 노력하기도 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었던가.
그렇게 오십 년이 지난 어느 저물녘.
예전의 처녀․총각은 저자거리 순대국밥 집에서 드라마틱하게 마주친다.
바우 노인장은 손자에게 줄 장난감을 사러 나오는 길이었고 여자는 풋마늘 병어무침 재료를 바구니에 담는 중이었다. 어허. 어디선가 보았음직한 장면이다. 두 사람 모두 얼굴의 곡선이 착하게 보이는 장삼이사 그 부드러움이다.
- 잘 사셨지요.
말을 꺼내는 봉순 할매의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바구니를 추그리며 인사를 건네지만 차마 눈길을 마주보지는 못한다.
- 가슴에 품었던 기억 아직도 생생합니다.
봉순 할매의 옷적삼으로 마른살비듬이 부스스 떨어진다. 그리고 할매는 한 달쯤 지나 세상을 떠났고 그날 바우 할배는
갯마을 동산으로 나무 하러 산으로 떠났다. 산 너머 산은 뒤로 갈수록 하늘빛 둥그런 곡선이다. 그랬다. 초로에 접어들면서 직선의
꿋꿋함보다 곡선의 우유부단함이 더 가까이 다가옴을 알았다. 곡선은 가까이 볼수록 몸에 바싹 들어오기 때문이다.(kbc57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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