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유래가 살아 있어야
우리 얼과 혼, 우리말과 글도 산다.
예전 교과서에서 배운 것으로 기억되는 프랑스의 소설가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1840-1897)’의 『마지막 수업』중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한겨레가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게 될 지라도 자기 나라의 언어만 잘 간직하면, 마치 감옥 열쇠를 쥐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제 나라 말과 글의 소중함을 단 한마디로 매우 잘 표현하고 있는 말입니다. 우리나라가 이 한마디에 진정 부끄러움이 없는 나라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870년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는 그의 곁에 있는 참모들이, 프랑스 육군은 프로이센을 격파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졌으니, 전쟁을 일으켜 프랑스의 명예를 드높이자는 참모들의 조언에 현혹되어 무모한 전쟁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프로이센의 오토 폰
비스마르크 총리의 명을 받은 헬무트 폰 몰트케 장군이 이끄는 독일군에 패하여 항복하게 됩니다. 프랑스 땅을 점령한 독일군은
프랑스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지 못하게 금합니다.
이때 알사스 지방 학교의 마지막 수업 광경을 그린 단편소설이,『마지막 수업』입니다. 당시의 프랑스는 마지막 수업이라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언어를 지키고자 하는 국민정신이 펄펄 살아있어, 당시의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후일
프랑스어를 세계적인 언어로 되살려 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에 현실은 어떠합니까? 마지막 수업도 스스로 거부한 채,
소중한 우리말과 글을 외래어의 불길 속에 매일 던져 태워버리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과연 우리 대한민국은 외래어에 점령당해 가는 오늘을 딛고 일어나, 예전의 프랑스 국민들처럼, 한국어를 세계적인 언어로
키워 낼 수 있을까요? 한국의 세계화와,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영어를 잘 구사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팽배합니다.
이런 논리에 치우쳐 영어와 잡다한 외래어에 우리의 쓸개와 간을 마냥 내어주어야 하는 현실, 이게 과연 올바르게 가는 길인가요?
우리말과 글을 온전히 지켜가는 세계화는 과연 불가능한 것입니까?
인도네시아의 한 부족에게 선택되어 쓰여 질 만큼 과학적으로 우수한 한글이 아닙니까? 이에 걸 맞는 자긍심을 세워갈 수
있는, 우리 것을 온전히 지켜갈 수 있는 정책과 비전을 가져야 되는 것 아닌가요? 우리 스스로 우리의 순수성을 고리타분하게 여기고
열심히 내다 버리는 사이, 우리사회는 어느새 외래적이고 외설적인 색체로 가득 찬 찌들대로 찌든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우리의 현실은 반듯이 우리의 힘으로 극복해 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옛이야기는 참으로 필요합니다.
옛이야기란 옛날부터 민간에서 전하여 내려오는 전설(傳說)을 뜻합니다. 오래전부터 구전되며 어떤 공동체의 내력이나 자연물의
유래, 신기한 체험 따위를 담은 이야기입니다. 대전에는 예로부터 대전지방을 터울로 전해오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이곳 자연을
둥지로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삶이 지속되면서, 숫한 사연과 역사가 시차적으로 파생되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말과 글로 형성되고
구전되고 의식화되고 계승되면서, 혹은 가벼운 것으로 혹은 비중이 있는 것으로 자리 잡아, 오늘 우리 곁의 옛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이곳에서 파생된 옛이야기는 이곳의 숨결, 정신, 문화, 그 시대적 역사의 형성 과정들을, 혹은 사실로 혹은 비유로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귀성과 가치 , 그 성격으로 인해, 내 고장 옛이야기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우리들의 문화유산인 것이며, 민족적 국가적으로도 더할 수 없이 중요한 산물인 것입니다. 이런 귀중한 문화유산이 시대의 변천에 따라
날로 퇴색되고 경시되어 가는 풍조는 실로 걱정스러운바가 적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때 어느 자리에서나, 자녀나 이웃, 공공의 장소에서 자신 있게 들려줄 수 있는 전설을 몇 가지나 알고
있습니까? 의외로 자기가 사는 곳의 옛이야기를 단 하나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이는 제 사는 곳의
옛이야기를 알고자 하는 개개인의 노력이나 의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가정적 사회적으로도 이를 뒷받침해줄 여건이 턱없이 부족한
때문이 아닌가싶습니다.
사람은 대부분 환경에 길들여지며 삽니다. 우리의 환경이, 제 사는 곳의 옛이야기 한 두 개 정도 모르고는 어디에 끼어들
수도 없으며 사람대접조차 받을 수 없게 된다면, 목숨 걸고 제 고장 옛이야기의 습득에 열을 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이런 것과는 매우 거리가 멉니다. 대전의 옛이야기 따위야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데, 이 바쁜 세상에 그깟 것은 알아 뭐에 쓴단
말인가? 이렇게 무시될 수밖에 없는 제 사는 곳의 옛이야기는, 결국 제 사는 곳의 옛이야기 하나 모르는 무지한 시민을 날로
양산해 내는 결과를 초래케 하고 있으니, 정녕 이 노릇을 어찌한단 말입니까?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내 고장의 옛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많은 자리에서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나누며, 이에 관한 책도 찾아
읽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또한 모든 매체가 대전의 옛이야기를 수시로 적절하게 들려주며, 여러 교육의 현장에서
수시로 가르쳐 알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대중이 모인 자리이거나 몇 사람이 둘러앉은 자리이거나간에, 스스럼없이 옛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풍토와 우리 것을 귀히 여기며 지켜가는 토대가 만들어 질것 아닙니까?
예전 우리의 어른들이나 할머니들이 골방에서 스스럼없이 들려주던 옛이야기가, 진정 한국인다운 순수성과 진실성을 가지고 살아
갈 수 있게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면 과언일까요? 날로 각박해져가는 현 사회의 병폐와 모순, 비정함을 바로잡고 순화시키는
노력을 이대로 게을리 한다면, 비인간성이 판을 치는 약육강식의 냉혈적 사회로의 전환은 더욱 가속화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옛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선조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고, 무엇을 두려워했으며 무엇에 최고의 가치를 두었던가를, 다소나마
알게 해야 합니다. 이는 곧 현대인의 삶에 소중한 교훈이 되며, 바른 심성으로 이끄는 길라잡이가 됩니다. 옛이야기가 오늘에 필요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지난 2011년 9월24일의 『한밭의 옛이야기』출판기념회에 붙여
대전문화역사진흥회장 이전오
저서)
(무전유럽배낭여행기) 『뜻을 세우면 길이 보인다』(2001년:224쪽)
『한밭의 우리말이름과 옛이야기』(2006년:446쪽)
『한밭의 지정문화재·비지정문화재』(2009년:682쪽)
『한밭의 옛이야기』(2011년:45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