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부모의 사랑
1. 오늘날까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어떤 위대한 혁명가도 혁명을 하지 못 했고, 시대적인 변천 속에서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4-308)
2.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에는 발전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복귀가 가능한 것이다. (11-118)
3. 역사가 없어져도 남아져야 할 것, 시대가 없어져도 남아져야 할 것, 천지가 없어져도 남아져야 할 것이 부모의 사랑이다. (12-307)
4.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부모를 가지지 못했다. 따라서 그 마음에는 부모의 사랑이 무한히 그리웠다. (16-41)
5. 복귀섭리의 주류를 이루는 바탕이 되는 것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다. (21-200)
6. 아무리 세상에서 외적으로 못난 자식을 데리고 있더라도 부모는 그 자식을 사랑한다. 모든 외적인 조건을 초월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다. 병신을 자식으로 둔 부모라고 하더라도 그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절대적이다. (28-161)
7. 부모의 사랑은 생활적인 인연만을 통하는 사랑이 아니라 뼛골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고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사랑의 마음을 부모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32-15)
8. 아들딸의 내심에 피어오르는 후광과 같은 사랑, 부모의 사랑은 그런 영원하고 입체적인 사랑이다. (33-69)
9. 언제든지 주고 나서 그것을 다시 받겠다고 하면서 주는 것이 아니라 주면서도 너무 적어서 부끄러움을 느끼며 주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다. (36-291)
10. 부모의 사랑이 한 것은 자기의 생명보다도 더 높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사랑은 자기의 생명도 잊어버리고, 자기의 행복과 소원도 포기할 수 있는 사랑이다. (42-343)
11. 모든 생물은 새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돼 있다. 사랑하는데 생명을 투입해서, 생명을 고임돌로 삼아 가지고도 사랑하고 싶어하는 작용이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만고불변에 가까울 수 있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다. (48-156)
12.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그 자식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부모 앞에 귀결되는 무엇을 바라서라기보다도 더 고차적이고 입체적인 면에서 자식을 사랑하기 위해서이다. (49-181)
13.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역사를 두고도 경외(敬畏)해야 되고 존경해야 되는 원칙으로 남아 있다. (49-245)
14. 자식을 많이 키워 본 부모는 무엇인지 모르게 사랑의 심정이 넓고 깊은 것을 알 수 있다. 넓은 터전에 서 있고 넓은 법도를 가지고 있다. (51-319)
15. 부모는 아들딸이 자기보다도 더 잘나기를 바란다. 그것이 부모의 욕망이다. (53-287)
16.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사랑은 본질에 가까운 것이라서 영원할 수 있다. (54-24)
17. 만약에 아들딸이 감옥에 갇힐 경우에 그 아들딸은 육신적으로 감옥에 갇히지만 부모는 심정적으로 갇히게 된다. 그 아들딸은 감옥에서 잠을 자더라도 부모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심정적으로 구속당한다. (55-15)
18. 죽음길도 소망으로 삼고 기쁨으로 넘어가는 것이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사랑의 길이다. (56-339)
19.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지어 놓고 사랑하시던 그 사랑을 실제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 부모가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사랑하는 것이다. (57-113)
20. 아들딸을 낳아 길러 본 체험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 부모의 사랑은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이다. (58-290)
21. 만약에 칠십이 된 아들을 가진 팔십 이상 된 부모가 있다면, 언제나 그 부모는 옛날에 자기가 기르던 마음을 가지고 그 자식을 바라보는 것이다. 외적인 연령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 심정은 점점 가까워지고, 그 아들을 위한 책임이 커지고 그를 위하는 마음이 더 넓어지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62-16)
22. 부모를 사랑하는 효자가 있어서 부모를 위하여 정성을 다 바치던 극한 자리에서 생명을 잃고 갔다면, 그 부모의 마음은 그 자식과 영원히 단짝이 된다. (63-112)
23. 참다운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있고, 자식을 위해서 살고, 자식을 위해서 죽는다고 하는 부모이다. 그럴 때 부모의 참사랑이 성립된다. (70-305)
24. 부모가 자녀의 결혼을 원하는 것은 보다 차원 높은 부모의 사랑을 다시 소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자녀를 낳음으로 말미암아 그럴 수 있는 것이다. (74-18)
25.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사랑은 이 세상의 사랑이 다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다. (91-220)
26. 자식을 길러 가지고 그 자식의 덕을 보려고 생각하는 부모는 부모가 아니다. (94-154)
27. 부모가 이혼하는 것은 자식을 칼로 자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우주의 공법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 공법을 거역하는 부모는 어디 가든지 화(禍)가 가해지고 불행이 가해지지 행복은 있을 수 없다. (107-38)
28. 아들딸은 부모의 사랑에 동참자인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과 종적인 연결체이다. (120-212)
29. 인간은 제2의 결과적인 존재로서 제1의 원인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하기 위한 내용이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다. (126-250)
30.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로부터 부모를 통해서 자식들한테 내려오게 되어 있지 부모를 빼놓고는 자식한테 내려오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기 마음대로 결혼할 수 없다. (128-142)
31. 내가 개인의 사랑을 찾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의 사랑을 세우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의 사랑을 찾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종족의 사랑, 민족의 사랑, 국가의 사랑뿐만 아니라 보다 차원 높은 우주의 사랑을 찾기 위해서이다. (129-148)
32. 왜 부모가 자식을 희생적으로 사랑하느냐 하면 종적인 사랑권 내에 있기 때문이다. (130-164)
33. 만우주를 사랑을 중심삼고 지으신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의 심정적인 사연을 체휼하기 위한 것이 자식이다. (136-202)
34. 범죄를 지어서 사형대에 오르는 불효자식이라도 부모의 사랑 앞에는 회개하고 간다. (140-239)
35.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는 사랑의 세계에서는 천리가 무릎을 꿇고 순응한다. (162-224)
36. 인간 세상에 참사랑을 흉내라도 내고 따라갈 수 있는 사랑이 있다면, 그것이 부모의 사랑이다. (162-268)
37. 아무리 형장에 나가는 자식이 악한 죄를 지었더라도 부모는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그 자식을 풀어 줄 수 있는 법이 있다면 풀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그렇다. 무슨 조건이든지 조건만 있으면 풀어 주고 싶으신 것이다. (170-134)
38. 부모의 자식에 대한 심정은 동양이나 서양이 다르지 않고, 과거에 부모의 사랑이나 현재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도 같은 것이다. 부모의 사랑은 같아야 한다. (175-144)
39. 자기의 아들딸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해야 참부모가 되는 것이다. (178-190)
40. 부모의 사랑이 귀한 것은 자식을 위하고 또 위하고, 천년을 위해 주고도 또 위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182-89)
41.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일할 때는 밤을 새우더라도 피곤을 모른다. 누구든지 사랑의 길에서는 지칠 줄 모르기 때문이다. (198-71)
42. 참사랑은 타락한 세계에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다. 종적인 기준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신하는 입장에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 그것만 남아 있다. (196-326)
43. 타락한 인간세계에 하나의 초점, 등불, 반딧불같이 꺼지지 않고 남아 있는 사랑이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사랑이다. 타락한 인간이지만, 하나님이 부모의 자리에서 사랑하는 그 마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198-109)
44. 부모의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하면 참사랑을 중심한 종적인 사랑이다. 종적인 사랑이라는 것은 머무는 자리가 하나밖에 없다. 그 위치를 바꾸었다가는 천지가 뒤넘이치는 것이다. 수직으로 찾아오는 종적인 사랑을 옮겨 놓았다가는 천지가 깜깜해지고 지옥이 되는 것이다. (212-19)
45. 자녀를 낳아야 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시던 그 내연을 체휼하기 위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딸을 낳아 보지 못한 사람은 부모를 몰라보는 것이고, 남편을 몰라보는 것이고, 아내를 몰라보는 것이다. (216-192)
46. 여러분이 아들딸을 낳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신 것과 마찬가지다. 부모가 아들딸을 사랑하는 것은 종적인 기준이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가지고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다. 타락했지만 그 종적인 기준에는 하나님만이 왕래하신다. (245-170)
47. 아버지가 아버지 사랑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아버지 사랑의 주인 자리를 누가 결정하느냐? 아버지가 결정하지 않는다. 아들딸이 결정한다. (395-168)
48. 왜 부모에게 자식이 필요하냐? 자식이 없으면 자식에 대한 사랑이 생겨나지 않는다. 이만한 핏덩이가 생겨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는 아버지 사랑의 자리를 찾고, 어머니는 어머니 사랑의 자리를 찾는다. 상대가 사랑의 주인을 찾아주지 주체 자신은 사랑을 관리할 수 없다. 우주가 그렇게 돼 있다. (435-117)
49. 어머니들은 어떻게 사느냐? 젖 먹여 주고, 자기 몸을 나눠주고 어떻게 사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먹여주고 뭘 받느냐? 어머니가 사랑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436-296)
50. 부모의 사랑과 생명을 연결시키는 것은 핏줄이다. 그 핏줄이 연결되지 않으면, 부자관계가 나오지 않는다. 부자관계는 숙명적인 것으로 변할 수 없다. (442-27)
51. 하나님은 부자의 관계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숙명적인 관계이다. 부모와 자식의 사이는 무슨 이유나 조건이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이다. (445-31)
첫댓글 참부모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