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에 대하여
피니는 설교의 단 하나의 목적은 영혼을 회심시키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을 고안해 낸다 해도 다 허용될 수 있다고 했다. 피니 아래서 18세기 부흥운동은 과학으로 탈바꿈했고, 그것이 기독교 주류 속으로 파고 들었다.
현대 기독교는 이런 영적이지 못한 사상에서 해방된 적이 없었다. 성경에 충실하거나 영적인 것이 아닌 실용주의가 대부분의 현대 교회들의 활동을 지배하고 있다.
실용주의는 그것이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시킨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기 때문에 대단히 유해하다. 결과가 "거룩하다" 여겨지면 "수단"은 무엇이라도 허용된다.
개신교의 사상에는 교리를 받아들이기 전에 먼저 그것이 성경과 합치하는지를 철저하게 따져 봐야 한다. 그러나 교회의 관습은 영혼이 구원되기만 하면 아무래도 좋다고 한다.
미국의 프런티어 부흥운동은 교회를 "설교소"로 바꾸어 버렸다. 교회의 체험을 복음 전도 사역으로 축소시켜 버렸다. 강단 중심의 인물들을 교회의 가장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어 부각시켰고, 또 교회를 집합적 공동체가 아닌 개인적인 관심사가 되게 만들었다.
무디의 복음은 휫필드와 마찬가지로 죄인의 구원이라는 단 한가지 중심 메시지밖에 없었다. 다른 것은 다 부차적인 것이었다. 무디의 설교 테크닉은 이 한 가지 관심에 의해 사로잡혀 있었다. 무디에게는 교회라는 것은 구원받은 사람들을 위한 자발적인 단체에 불과했다.
모든 개신교의 전통들은 예배 순서에 동일한 비극적인 요소들을 공유하고 있다. 즉 예배가 성직자에 의해 인도되고, 설교가 예배의 중심이 되고, 그리고 회중은 수동적이어서 사역할 기회가 없는 것 등이다.
카톨릭이나 개신교나 둘 다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 모임의 중심에 놓는 데는 실패했다.
성경책이 유카리스트를 대신하게 되었고, 목사가 사제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회중들을 조용한 구경꾼들로 만들면서 한 사람이 혼자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개신교의 예배 순서가 주 예수님이나 사도들이나 신약성경에서 유래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명확하다.
첫째 개신교 예배 순서는 상호간의 참여와 크리스천 공동체의 성장을 억눌러 버린다. 지체들의 입을 막음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이 제 기능을 발휘하는 것을 막아 질식시킨다.
둘째, 개신교의 예배 순서는 머리 되시는 예수님의 목을 조르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에 의해 예배가 인도된다. 거기에서 주 예수님께서 그분의 몸을 통해 마음대로 말씀하실 자유를 과연 갖고 계실까?
셋째, 주일 아침예배는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부끄러울 정도로 지루하다. 그것은 다양성과 자발성이 결여되어 있다. 에배는 뻔히 예측 가능하고, 지나치게 형식적이며, 아주 기계적이다. 신선함이나 참신성이 거의 없다.
넷째 당신이 매주, 해가 지나도 변함없이, 묵묵히 앉아서 치르는 개신교 의식은 실질적으로 영적 변화를 방해한다. 그 이유는 수동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며, 기능을 제한하기 때문이며, 일주일에 한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크리스천의 승리의 삶의 열쇠라고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동적으로 구경하고 듣는 것이 아닌, 기능을 발휘함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개신교 예배 순서는 비성경적이고 비현실적이며 영적이지 못하다. 신약성경엔 그것과 유사한 것도 없다. 오히려 그것은 타락한 인간의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은 형식도 없고 의식에 자유로웠던 원래의 그리스도교 신앙의 뿌리를 근본부터 흔들어서 뽑아내려 하고 있다.
1세기 교회 모임의 목적은 복음 전도나 설교나 예배 혹은 교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그리스도를 공동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통해 서로 덕을 세워 유익이 되게 함에 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 아래서 모이는 열린 모임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것이 돋보인다 그것들은 한 사람에 의해 진행되는 강단 중심의 예배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자발성과 창조성과 신선함이 가득하다. 이런 모임들의 최우선적인 특징은 눈에 보이는 예수님의 머리 되심과 자유스러우면서도 질서 있게 역할을 수행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신약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모임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침묵하고 있지 않다. 그리므로 인간의 전통이 이렇게 그리스도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과 정반대로 치닫고 있는데도 우리가 그런 인간의 전통을 선택할 것인가?
얼어붙어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녹이는 확실한 한가지 방법은 주일 아침 의식과 극적으로 결별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막7:8, 마15:2-6, 막7:9-13, 골2:8)
- 교회가 없다 (프랭크 바이올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