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해지는 기억의 조각을 모아 글을 남깁니다. 지난 9월 1일에 도치기조선초중급학교에 김명준 사무국장님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더 많은 회원들과 함께 가지 못한 아쉬움과 왠지 저만 감동을 느끼고 온 것 같아 미안함에 긴 글을 남겨요! 벌써 몽당연필에서 상근 활동을 한지 벌써 반년도 지났지만, 학교에
들어가보고 많은 동포들과 교류한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첫 마음을 기억하고 싶어서 썼습니다. 의식의 흐름대로 쓴 혼란한 글이니 일기를 훔쳐보는 마음으로 봐주세요 (부끄)
김간사의 도치기 우리학교 방문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10시까지 학교로 가기 위해 小山오야마역으로 갔다. 역 앞으로 윤지수 동포가 차로 마중 나와주었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도 작은 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교외 동네가 으레 그렇듯 길가에 가끔 가다 식당이나 가게가
있고 광고판이 있었다. 초행길이라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뭔가
학교는 안쪽으로 구비구비 들어가니 있었다. 역에서 걸어가거나 하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학교에 도착하니 차들이 하나 둘 도착했다. 학교 건물 뒤편 주차장에
차를 댔다. 도치기학교는 건물이 여러 개다. 예전에 쓰던
기숙사, 식당 등등 건물들이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그대로 있었다. 뭐라고
설명해준 것 같은데 건물들이 비슷하게 생겨서 기억은 잘안난다. 기억이 흐릿한 것 같기도하다. 분명 도착하기 전에 너무 긴장할 필요 없다고 스스로 되뇌였지만, 역시나
매우 긴장했다!
8월 초에 보리언니랑 은진언니를 따라 야마구치학교 야회에 놀러갔는데
그때는 너무 긴장해서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도 기억이 거의 안난다. 말을 별로 안 했던 것 같다. 말실수를 할까 걱정되서 그냥 말을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어떤 말은 하면 안되는지 모르겠어서. 내가 너무
모르는 것이 많아서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줄까 걱정되었다. 너무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지만 어쨌든 엄청
몸에 힘이 들어갔다.
드디어 학교에 갔다!
이 날은 지역 청상회(청년상공인협회)에서
아이들을 위해 2학기 개학 전 놀이마당 '납경축제'를 열어주는 날이었다. 그래서
동포 아저씨들이 많았다. 나는 고교무상화 적용 티셔츠를 입고 카메라를 메고 갔다. 학교에 들어서니 김명준 감독님과 윤지수 동포가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했다. 나도
옆에서 엉거주춤 인사를 했다. 다들 교실 건물 앞 공터에서 놀이를 준비하느라 분주하셨다.
우리는 먼저 교장선생님에게 인사를 하러갔다. 교장선생님은 응접실로 안내해주고 커피도 내어 주셨다. 응접실에는 정말 예전에 유행했을 법한 모양의 소파와 가구들이 있다. 뭔가 한약방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도 났다. 약간 놀랐지만 티내지 않으려고 했다. 교장선생님이 커피도 내어주시고, 다른 교원들과 같은 단체티를 입고 있어서 신기했다. 교장선생님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김명준 감독님과 학교 건물을 돌아보았다.
학교를 사진으로 글로 많이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보고 만나는
것은 다른 감각이었다. 도치기 초중급학교는 지금 초등생이 8명, 중등생이 4명 다니고 있다. 적은
숫자이다. 한국에서는 분교도 안될지 모른다. 도치기학교는
예전에는 많은 학생들이 다녀서 기숙사도 있고 큰 건물이 필요했는데, 지금은 큰 건물을 12명의 학생들과 5명의 선생님들이 사용하고 있다. 학교 건물에 오랜만에 가보기 때문인지, 그 공간만은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3층은 아예 쓰고 있지 않으니 적막해서 사용하지 않는 건물 같다는 인상도 받았다. 역시 건물이 크니 다섯명의 교원들과 학부모들이 모두 관리하기에는 손이 닿지 않는 곳들이 있을 것이다. 2층은 천장과 벽의 색이 달랐는데, 아버지들이 오래되어 색이 바랜
벽을 페인트 칠해줬다고 했다. 페인트 칠하니 깨끗해보여서 좋았다. 몽당회원들과
와서 평소 손이 부족한 일에 보탬이 됐다면 참 좋았을텐데 정말 아쉬웠다!
한 교실에서는 초급부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폴짝폴짝 뛰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뒤통수도 너무 귀여웠다. 돌아와서도 계속 노래가 맴돌았다. “비빔밥, 비빔밥 만들자~ 콩나물
콩나물 콩나물 콩나물~” 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노래로 부르면서 그림과 함께 단어를 익히는 것 같았다. 비빔밥이 뭐라고 노래 듣는데 울컥했다. 빈 교실들도 찬찬히 둘러보았다. 책걸상이 한 개, 몇 개 안되는 교실은 외로운 기분이었다. 하지만 학생은 적어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은 시간표의 꾹꾹 눌러쓴 글자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학생이 셋이어도 하나여도 돌아가면서 당번을 하고, 학급 내에서 역할을
맡아 착실히 배우고 있다.
사랑이 가득한 사람들
이 날 아이들은 간식을 쿠폰으로 사먹고, 물총놀이를 했다. 중급부 아이들이 선생님과 청상회 아버지들을 도와 음식을 준비하면, 조그만
아이들이 쿠폰을 주고 음식을 받았다. (더운 날에도 불 앞에서 고기를 굽느라 고생하는 중급부 아이들과
선생님들) 나는 아저씨들 곁에서 딱히 할말도 없고 뻘쭘했기 때문에 교원들과 중급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어색해서 엉거주춤 서있으니, 김지연 선생님이 “남조선에서 온 손님이야”하고 인사를 시켜주었다.
도치기학교에는 지금 중급부가 4명이다. 중급부 2학년이 3명, 1학년이 1명이다. 이
나이때 아이들과 교류한 것이 오랜만이지만 역시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중학교때 슬리퍼 멀리 던지기를
제일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도치기 중급부 아이들은 참 차분하고 어른스러웠다. 초급부 동생들도 살뜰히 챙기고, 동생들도 형누나들에게 의지하는 것
같았다. 나는 경험해본 적이 없는 분위기여서 신기하기도 하고 부러웠다.
초급부 아이들은 너무 어리기 때문에 중급부 아이들 4명이 주로 트리하우스를 만들고 있다.
사랑이 넘치는 평화로운 공간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아이들은 뛰어놀았다. 날도 좋아서 더욱 평화롭게 느껴졌다. 선생님, 아이들, 어머니, 아버지 모두 다들 친해보여서 큰 가족 같았다. 가족잔치나 동네잔치에
놀러온 것 같아서 어색하기도 했지만 반겨주셔서 감사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표정도 행복해보였다. 이 소박하고도 당연한
행복을 왜 빼앗으려고 할까. 학교 밖을 나서면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살아가라고 하는 폭력이 공기처럼
존재하는 현실에 가슴이 답답하기도 했다. 공기 같은 폭력에 맞서 학교를 지키고 가꾸어나가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는 동포들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나도 부끄럽지 않게 잘해야 겠다.
2시쯤에는 정리하고
오코노미야키 집으로 뒤풀이를 갔다. 나는 주로 선생님들과 함께 앉아 이야기를 했다. 도치기 우리학교에는 교장선생님까지 교원이 5명이다. 5년차인 지연선생님, 미사와 지호 선생님이 2년차, 올해 부임한 희영선생님까지!
학교에서는 어색뻘줌민망해서 어버버거리며 방황하는 나를 선생님들이 친절하게 말도 걸어주고 인사도 시켜주어서 많이 의지를 했다.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참 능숙하고, 일도 척척잘해서 당연히 나보다
나이가 많겠거니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를 아주 어리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내심 뒤풀이에서 미사, 지호선생님은 나랑 동갑이고 희영선생님은
나보다 한 살 어리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동갑내기 친구들이 치열하게 활동하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활동을 시작하는 경우는 많지 않아서 요즘은 어디를 가도 막내였다. 어려서 괜찮다고 말해주는
고마운 말들에 마음을 놓기도 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는 자신이 해야만하는 역할이 있고, 후배들이 있기에 어리다는 것이 통할 수 없는 상황 같았다. 동년배
친구들이 앞장서서 전력으로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스스로 타협하지는 않았나 반성했다.
정말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할 수 없을 때가 있다. 힘든 이야기도 가끔 하기는 했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
많을 것이다. 특히 나 같은 외부인에게 싫은 소리는 더 하기 어렵다.
올해에는 5명의 학생들이 도치기초중급학교에 입학했는데 2011년
이래로 입학생이 없는 해가 오랫동안 이어졌다고 했다. 학생들이 자꾸 줄어서 자신이 잘하고 있는 것인가
고민하면서 힘들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동포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학교를 위해, 사람을 키워내기 위해 사랑하고 있는데 그 길이 너무 외롭고 힘든 것인가 속상했다. 그 모든 외로움, 괴로움과 함께 할 수 없음에 염치없다. 출장 기간 동안 동포들에게 자주 왜 이 일을 하는가 하는 질문을 종종 받았는데, 여전히 나의 언어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창피했다. 힘들다고
울어도 내가 뭐라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슬펐다. 교원친구가
여러가지 일에 부대껴 가끔 무서운 얼굴로 아이들을 대할 때 너무 미안하고 속상하다고 말 할때는 가슴이 아렸다. 왜
언제나 진정 미안해야 하는 사람들은 사과할 줄을 모르고. 잘못을 탓해야하는 사람들은 돌아보지 않고, 약한 사람들은 쉽게 자신을 서로를 탓한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쓰였다. 사실 말할 수가 없이 울고 있어서 입을 못 뗐다.
앞으로는 덜 울어야겠다. (눈물이 많아서 안울겠다고 못한다) 멀리서 슬퍼만하고 있을 수는
없다.부족한 것이 너무 많지만 계속 배우면서 나의 역할을 찾을 수밖에.
언젠가 우리학교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종교를 전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너무
좋은데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고 너도 꼭 만나보면 좋겠다는 것이 마치 종교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학교에는 그런 힘이 정말로 있다! 사랑의 힘이다! 여러분
모두 우리학교 하세요,,! (급마무리)
@사진은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아주세요! 고맙습니다😊
▲비빔밥 노래부르는 초등부 아이들과 미사 선생님. (입학 예정인 친구들도 있어서 사람이 많다!)
▲ 책걸상이 하나뿐인 교실
▲ 잘 꾸민 환경판
▲ 완성 중인 트리하우스! 해먹이랑 그네가 있어서 아이들이 잘 타고 놀았다.
▲ 우리학교 촬영 이후 오~랜만에 만난 지연 선생님과 김명준 감독님
▲ 볶음면, 소세지구이, 야끼니쿠, 빙수 등등 많이 만들어 주셨다. 쿠폰을 작은 아이들이 주면 아버지와 중급부 아이들이 음식을 준다.
▲ 항상 챙겨주시는 윤지수 동포!
▼ 윤지수 동포가 찍어주신 물총놀이 모습:) 머리 위에 망이 물에 젖으면 찢어지는데 먼저 찢어지면 지는 놀이!
▲ 청상회 회장님이 2학기도 잘하자고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선물하고 오늘의 납경축제는 마무리!
▲ 영화 주인공들과 나! 하늘색심포니에 출현한 미사(왼쪽)과 우리학교의 김지연 선생님(오른쪽)
▲ 선물받은 아이들이 불러도 돌아보지 않아서 쳐다보고 있는 희영 선생님
▲ 오코노미야키 집에서 선생님들과 몽당연필
▲ 동갑내기 미사랑
첫댓글 좋다..좋아...이 후기.....^^
생생함 그 자체에요...
감사감사........
본문 내용에 언급된
초급부 아이들이 부르던 노래, "비빔밤(?)"
악보하고 음원 좀 구할 수 있을까요...? 김간사님!!!!
간사님의 조심스럽고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고생많으셨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정말 생생해서 저까지 같이 울었다 웃었다 하게 되는 후기네요!ㅜㅜ
김간사님도 언제나 잘하고 있는데요 뭘^^
우리 모두 함께 잘하자요~♡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