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생기의 우리학교 VOL.34 중앙구연대회
(글 박수화)
다채로운 주제로 우리말을 이야기하는 즐거움
조선학교에 다니는 아동, 학생들이 ‘화술’을 겨루는 재일조선학생 중앙구연대회.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이 조선말 솜씨를 보여주는 이 대회는 4세, 5세가 학교에 다니는 시대가 된 지금도 중요한 자리가 되고 있다.
- 1964년 11월, 예술경연대회에서 구연부분 무대에 선 히로시마 중고급부 학생 -
예술경연 가운데 <연극부문>
구연대회의 역사는 1963년 「재일본조선 초·중·고급학교 학생중앙예술경연대회」(현재의 예술경연대회) 가운데 <연극(구연)부문>이 시작이다. 당시는 크게 음악, 기악, 무용, 그리고 연극부분이 있었고, 나아가 시 암송, 구성 시, 연극 등의 부분으로 나뉘어졌다. 64년부터는 만담과 옛날이야기 부문도 만들어졌다.
1964년 <시 암송> 부문에 출장했다는 허옥녀(許玉汝 70)선생님.
“오사카 조선고교 1학년 때 쓴 시였다. 반 친구인 여학생 3명이 시 <조선은 싸운다(朝鮮は闘う)>를 암송했는데 결과는 2위였다.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며 그리움을 담아 이야기한다.
“부모님은 1세, 1세인 선생님한테도 조선어 수업을 받았다. 고향의 조선말을 들을 기회가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었다.”
40년에 걸쳐 조선학교 교원으로 조선말 구술지도에 힘을 쏟아온 오홍심(吳紅心 77)선생님은 68년 대회에 처음으로 제자를 출장시켰다. 당시 근무하고 있던 센보쿠(泉北)조선초급학교(당시, 오사카부)의 여학생들이었다. 그 학생이 <시 암송>부문에서 3위에 입선한 것을 계기로 ‘화술 지도에 자신이 생겼다’고 한다. 그 후에도 많은 아동, 학생들을 출장, 입선시켜왔다.
“누구보다도 기뻐한 것은 보호자 학부형들이었죠. 자신의 아이가 우리말로 상을 받았다니…믿을 수가 없다는 모습이었어요.”
이 무렵의 <연극부문>의 수준에 대해 주최 측의 요구가 높았다는 것이 짐작된다. 심사위원장에 따르면 총평(64년 11월 23일/조선신보)에 ‘이 부문은 학생들의 국어 구사능력을 높이는 일에도 관련되기 때문에 더욱더 강화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하고, 대회에서 드러난 몇 가지 결점을 들었다. 행간에 간격을 두는 방법, 억양과 발음, 소재 테마와 구연하는 학생의 심한 연령차 때문에 작품의 감정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는 경향을 지적하는 등 상당히 까다로웠다.
- 1986년 2월 구연대회, 만담 부문(초급부) 1위를 차지한 기타오사카 초중 아동 -
<화술>에 특화된 대회로
1984년에는 <재일조선학생 중앙예술경연회대회 및 구연대회>로 개칭되었고, 구연대회는 지방 예선을 거치고 올라온 173명이 참여해 51종목이 발표되었다. 이 해부터 예술선동부문과 낭독부문도 추가된다.
한편, 이 대회와는 별도로 같은 해 6월과 7월에 걸친 <재일조선학생 제18회 중앙 변론대회>가 조선대학교에서 열렸다. 지방 예선을 통과한 76명이 참가했다. 생활과 국제정세, 조국통일 등을 주제로 초급부는 <이야기>, 중고급부는 <조선어> <영어> 부문으로 각각 변론을 겨뤘다.
구연대회가 단독으로 개최되게 된 것은 그 이듬해 2월(86년)이다. 예술경연대회에서 구연부문이 독립되어 앞서 말한 변론대회와 어울리는 형태로 <재일조선학생 중앙 구연 및 변론대회>로 새롭게 출발했다.
제1회는 신 교사 건설을 계기로 만들어진 도쿄조선 제4 초·중급학교의 새 체육관에서, 그 이듬해부터는 조선대학교에서 개최되었다.
당시부터 주1회 과학서클 등에서 구술을 진행하는 학교는 있었지만, 히가시오사카 조선중급학교에서 84년,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정식 서클로서 <방송 구연 서클>이 만들어진다. 이 서클을 만든 것은 고교졸업 후 오사카 조선가무단 등을 거쳐 같은 학교에서 교원을 하고 있던 허옥녀 선생님. 교원 3년째가 될 무렵이었다.
“구연대회 시즌만 지도한다 해도 도저히 부족한 상황이었어요. 학생이 일상적으로 우리말의 기초를 닦을 수 있도록 하고 싶었죠.”
<만담>부문이 등장한 것은 88년도. 중급부에서 1위에 뽑힌 사람은 이후 극단 달오름을 설립한 김민수 씨다. 당시는 방송 구연 서클의 멤버였다. 김씨는 우수작품의 무대에 선 것 뿐 만아니라, 그 후 일본 각지에 초대되어 만담을 연기하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허선생님은 “구연을 통해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졸업생은 정말 많다. 교원, 배우, 성우, 결혼식의 사회자 등 모두 어린 시절에 구연대회를 경험했다.”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 1988년 구연대회에서 만담을 연기하는 김민수씨. 중급부 금상 -
- 1984년 예술경연대회 낭독부문(초급부) 1위, 홋카이도 초중고 학생 -
뒤에는 교원들의 노력이
오사카에서는 1986년도 허옥녀 선생님을 강사로 모셔 히가시오사카 지역의 초급학교 교원 7명을 대상으로 화술을 배우기 위한 강습회를 히가시오사카 중급부에서 주 1회 열었다. 교원들의 요망이었다.
이듬해부터는 이 강습회가 오사카부 전체에서 의무화되어 오사카부 내 전교에서 30명의 교원이 모여 <오사카 교직동 기능강습회>가 시작된다. 구연대회의 작품을 가지고 실제로 지도를 받거나, 교원들이 자주 고민하는 만담이라는 창작 작품 각본으로 전원이 내용을 연구했다.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원 자신들의 자질향상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은 13년간 계속되었다. 또 문예동 오사카의 존재도 커져 시의 창작과 낭독 등을 하는 문학부는 주로 학교교원들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 허옥녀 선생님(왼쪽), 현재도 우리말교실 선생님, 올해는 강사로 히가시오사카 중급부 구연지도,
오홍심 선생님(오른쪽), 현재 「종소리」시집 발행, 대표를 맡고 있다 -
허선생님은 구연대회에 대해 “우리말다운 우리말을 써서 발표하는 귀중한 자리인 동시에 아이들이 자신들 이외에 다양한 사람으로 변신하면서 우리말에만 존재하는 재미,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는 장소, 그 공간이야말로 소중하다. 또 자이니치 아이들에 대한 평가는 ‘우리말을 쓴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틀린 우리말을 바로 잡으면서 아이들의 내면세계에서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우리말을 소중히 하고 싶다.”고 말한다.
앞서 말한 오홍심 선생님도 교육 가운데 화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언어는 문장보다도 먼저 말이 있다. 화술이 뛰어난 사람은 문장도 뛰어나고, 반대인 경우는 드물다. 우리말 교육에서 절대적으로 빼놓아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전국적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는 구연대회였지만, 참가자의 폭을 넓히고자 98년도(1999년)부터 동일본(東日本), 긴끼(近畿)·도카이(東海), 츄고쿠(中国)·규슈(九州) 3구역별로 분산 개최.
현재는 구역별 예선을 거쳐 최종적으로 동일본과 서일본에서 각각 중앙구연대회가 개최되고 있다. <화술>에 특화된 유일한 대회로 친숙하다.
*월간 <이어> 2018년 2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