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곡선 같은 부드러운 산봉우리 실루엣이 선명해지며 동쪽하늘이 뿌옇게 밝아오자 아이들은 달집에 불을 지폈다. 달아 달아 솟아라, 둥근 달아 솟아라. 모든 이 소망 싣고 밝은 달아 솟아라.
건너 마을과 경쟁을 하면서 달집의 크기는 해 마다 커져 이제는 작은 집채만해졌다. 마을 어귀 공터에서 짚단이나 태우던 옛날과 달리 생솔가지가 불꽃을 튀기며 의외로 잘 탄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장소를 산으로 옮겼다. 산 중턱 다랑밭에서 보리를 추수할 때 타작마당으로 쓰는 빈 공터이다. 큰 솔가지를 베어 빙 둘러 기둥을 세우고 새끼줄로 얼기설기 엮어 잔가지들을 촘촘히 꽂고 가운데엔 쏘시개로 쓸 짚단을 채우고 불을 붙였다. 짚단의 불이 솔가지에 옮겨 붙으면서 어른 키보다 높은 달집은 달을 부르는 회색 연기를 뿜어냈다. 이윽고 불이 온전하게 청솔 가지를 태우기 시작하자 달집은 붉은 짐승처럼 변하고 산내리바람을 맞은 불꽃은 무당의 춤사위처럼 너울거렸다. 불꽃이 절정에 오를 즈음 동쪽 산허리로 달님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달을 따라 오르고 싶은 산이 달의 꼬리를 붙들고 놓아주질 않았다. 산에게 꼬리를 잡힌 달님은 쉽게 산허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한동안 실랑이를 하다가 꼬리 한 토막 잘라주고 벗어나는가 했는데 금새 둥근 얼굴을 회복하고 둥실 떠올랐다. 달집은 탁탁 소리를 내며 신나게 타오르고 아이들은 환호를 질렀다. “야 이놈들, 작년에도 산을 조져 놓더니 이게 무슨 짓이고?” 아이들의 환호 사이로 산 주인의 호통이 들렸다. 아이들은 산 위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건너 마을과의 경쟁이 문제였다. 서로 더 큰 달집을 짓기 위해 소나무들을 마구잡이로 베어 낸 것이 화근이었다. 어렸던 나는 걸음이 느려 형들을 따라 산 위로 달아나는 것을 포기하고 큰 소나무 사이로 몸을 숨겼다. 아이들을 잡으려 가는 시늉을 하던 산 주인은 “요놈들, 내년에 다시 소나무를 베기만 해봐라 모조리 파출소에 잡아 갈테다.”하고는 더 이상 쫓지는 않고 타오르는 달집을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베어진 소나무보다 산불을 더 걱정하는 눈치였다. 신나는 대보름 축제와 재미있는 뒤풀이에 부풀었던 꿈은 간 곳 없고 허망한 허탈감에 온몸에서 기운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산으로 달아난 아이들은 다른 길로 내려갔는지 보이지 않고 산 주인도 달집이 거의 사위어 가자 산 아래로 내려가고 산에는 달랑 나 혼자만 남았다. 달은 어느새 훌쩍 떠올라 쥐 죽은 듯 교교한 산 속에 푸른빛을 채우고 있었다. 이 적막한 산에 나 혼자란 생각이 들자 무서움과 추위가 왈칵 달려들었다.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어디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 무서움을 쫓기 위해 노래를 불렀으나 목소리는 안으로 움츠려 들고 달빛 속에 웅크린 나무 그림자들이 갑자기 귀신으로 변하여 달려 들것만 같았다. 그날 따라 부엉이 소리는 왜 그렇게 스산한지. 여럿이 오를 때와는 달리 하산하는 길은 멀기도 했다. 어느새 달은 중천 가까이 떠올라 있었으나 혼자서 보는 달은 그다지 정겨워 보이지가 않았다. 거기다 달 주위엔 겨울엔 흔치않은 달무리가 져 있었다. 밝은 빛을 달무리에 빼앗겼는지 달은 흐릿한 모습에다 크기도 작아져 있었다. 뿌연 달무리 가운데 희뿌옇게 박혀 있는 달 모습이 어째 무서운 외눈박이 귀신의 눈알 같아 보이기도 했다. 여름에 달무리를 보았다면 십중팔구 다음날은 비가 왔을 것이다. 만약 그때 다음날 비가 왔다면 전날의 달집태우기는 기우제를 지낸 꼴이 될 뻔했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고 씁쓸한 추억 한 자락만 남겨 놓았다. 비록 어느 대보름날의 달에 대한 추억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나의 정서 우리의 생활은 달에 속해 있음이 분명하다. 모든 것이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서양이 해의 문화라면 우리는 달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살아 온 달의 문화이다. 달의 문화는 또한 정情의 문화이기도하다. 일력日曆 대신 월력月曆을 쓰고 명절이나 풍습, 농사 어업 등, 모든 것이 달을 중심으로 이루어 졌으며 많은 시인 묵객들은 해 대신 달을 노래했다. 강 굽이 선경仙境 마다 제월당霽月堂이나 농월정弄月亭 같은 달 이름이 들어간 정자를 짓고 ‘이하梨花에 월백月白하고’ ‘달아 높이곰 도다샤’ ‘솔 불 켜지 마라 어제 진달 돌아온다’고 읊으며 달과 함께 세월을 건너고 달을 희롱하며 달처럼 은근한 사랑과 우정을 나누었다. 달빛 아래 사랑을 속삭이고 달보고 향수를 달래며 달에서 어머니와 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계수나무 옥토끼 초가삼간 같은 소박한 소망과 구름바다를 건너는 쪽배의 낭만과 항아선녀의 전설을 생각하며 그런 달을 향해 소원을 빌기도 했다. 달무리를 보아도 ‘엷은 구름 속의 얼음 알갱이에 달빛이 굴절되어 생긴 것’이란 딱딱하고 멋없는 곧이 곧대로의 해석을 하기보다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은빛 문, 수줍어 얼비친 내 님의 얼굴, 내 사랑 고백할 때 끼워줄 반지, 시집가고픈 달이 낀 가락지, 동지 팥죽 먹고 한 살 더 먹은 달의 나이테, 마실 나온 월령공주의 수호천사 등. 정이 듬뿍 담긴 시각으로 보는 게 우리의 정서이다. 아마도 강강수월래의 원무圓舞도 달무리의 둥근 모습에서 착안하지 않았나 싶다. 달무리 속에 뜬 달은 배고픈 이에겐 팥죽 속의 하얀 새알심처럼, 가슴앓이 하는 누이를 가진 사람에겐 헬쓱한 누이의 얼굴처럼 보일 것이다, 공포 속의 소년에겐 외눈박이 귀신의 눈알이 되고 영어囹圄의 몸인 사람에겐 빈틈없는 경계 속에 갇혀 있는 처량한 자기 신세처럼 보였을 것이다. 달이든 달무리든 그것은 하나의 물리적 현상일 뿐이다. 달은 햇빛을 반사하고 달무리는 달빛을 반사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마음 속으로 들어오면 그리움으로 애수로, 낭만으로 희망으로... 우리의 마음을 닮아버린다. 곧 달이 내가 되고 내가 달이 되는 것이다. 오늘도 달이 뜨고 달무리가 졌다. 내일은 소나기 한줄기 내려 작열하는 불볕 아래 시들어 가는 그리움들, 푸른 함성으로 다시 일어섰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