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강뉴부대 뿐만 아니라 국내 6.25 참전용사에게도 가정을 방문하여 감사의 절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코로나 전에 몇 달 동안 한 달에 한 가정씩 방문하다가 코로나 때문에 중단했습니다.
이번 6.25를 계기로 다시 한 달에 한 가정씩 방문하여 감사의 절을 올리고 있습니다.
6월에는 수류탄으로 얼굴이 일그러지신 분을 찾아뵙고, 감사의 절을 올렸습니다.
이분은 평생 문둥이 취급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지난 달에는 두 눈을 조국에 바친 분을 찾아 뵈었습니다.
이분은 검은 안경을 끼고 장님이 되어 장애를 겪고 살아오셨습니다.
이번 8월에는 12일에 방문했는데 부부가 모두 6.25 참전을 하셨습니다.
아내는 제가 근무했던 대구 신명여고 1학년에 다니다가 여군을 모집한다기에 자원 입대하여
김홍일 장군의 비서로 근무하셨습니다.
김홍일 장군은 인터넷에 찾아보시면 잘 나와있습니다.
저는 오래 전에 다큐멘타리로 TV에서 보았는데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중국에 들어가서 항일운동하면서 장개석 총통이 이끄는 국민혁명군에서 별 둘, 한국군에서 별 셋 합쳐서 5성장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5성장군은 김홍일 장군 뿐이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그분이 6.25당시 한강을 지키면서 시간을 벌인 결과 낙동강 전선을 구축할 수 있었기에 적화통일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김홍일 장군이 부산 육사 교장으로 있을 때 그분의 비서로 있었다고 합니다.
일요일이 되면 교회로 가라고 차를 태워주고 예배를 마치면 외식을 시켜주었다고 하셨습니다.
김홍일 장군은 매우 인자하셨다고 회고하셨습니다.
제가 김홍일 장군을 매우 존경하기 때문에 사진을 몇장 올렸습니다.
저는 김홍일 장군을 모신 분을 만난 것이 제게는 영광이었습니다.
그리고 남편되시는 분은 미군 통역관으로 근무하셨으며 인천상륙작전에도 참전하셨답니다.
맥아더 장군이 1차로 상륙하고 자신은 2선으로 상륙했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31년생인데 연세가 만으로 92세입니다.
몸이 성치 않아서 바로 앉아 있기 어려운 형편인데다가 말을 더듬거리셨습니다.
그래서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6.25당시 북한에 포로가 되었던 딘 소장의 통역을 하기도 하고 여러 장군의 이름을 거명하셨으나 제가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딘 장군의 통역을 하셨던 이분의 얼굴을 제가 기억하고자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사진을 찍기를 거부하셨습니다.
이유는
"만일 북한이 다시 쳐들어오면 나는 미군의 앞잡이다. 당장 죽임을 당할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연세가 만 92세이고 지금 몸이 많이 좋지 않아서 말도 더듬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실 때 지금까지 70년 이상을 전쟁의 트라우마 속에 살아오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그마한 단독주택에 사시면서 미군으로부터 받은 훈장, 표창장, 감사장등과 한국 정부로부터 받은 감사장 등이 이방 저방의 벽을 장식하고 있었고, 종이 봉투 속에는 벽에 걸지 못한 감사장, 표창장 등이 수백장이 들어있었습니다.
인천 상륙작전에 참가하시면서 우리를 구해주신 전쟁 영웅이지만 항상 전쟁의 트라우마 속에서 다시 공산주의가 되면 자신은 미군의 앞잡이로서 인민재판을 받고 죽을 것을 겁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이 공개되는 것을 싫어하셔서 도저히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훈장과 표창장도 찍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군에 참전하셨던 곽숙현님만 사진을 올리겠습니다.
곽숙현님 옆에 옷자락이 조금 보입니다.
이분이 남편되시며 미군 통역관으로 인천 상륙작전에도 참가하신 분인데
극구 사진 촬영을 거부하시기에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존함도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공개하지 않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런 분들의 희생과 노고를 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6.25 전쟁을 겪고 계시는 이 분을 지난 12일에 만나 보고 지금까지 가슴이 먹먹합니다.
이분은 이런 희생을 겪고 계시는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분들이 마련해준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무엇을 하고 무엇을 갈망하고 무엇을 불평하고 있는가?
에티오피아에서도 제가 가정을 방문했을 때 어떤 분은
"지금도 잠을 자면서 꿈을 꾸면 한국전쟁에서 옆에 전우가 피를 흘리고 쓰러져가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잠을 깬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분들의 희생을 절대 잊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