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시화문 (口是禍門)'이란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입~구, 바를~시, 재앙~화, 문~문자. 입은 화가 들어오는 문이라는 뜻으로 입이 곧 재앙의 근원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투자를 잘 해서 엄청난 재산을 모은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신뢰를 얻는 데는 평생이 걸리지만 신뢰가 무너지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듯이 말 한 마디 잘못으로 그동안 정성스럽게 쌓아올린 신뢰의 탑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기에 어떤 자리에서든 입을 열 때는 긴장을 풀지 말고 신중하게 말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채 무심코 내뱉은 말이 가슴에 상처를 주는 말이 될 수도 있고 또 별 뜻 없이 한 말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하지도 않은 말이 덧붙여져서 엉뚱한 방향으로 왜곡되고 그로 인해서 우호적인 관계에 있던 사람이 적으로 돌아서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질 수 있기에 옛 선조들도 말이 지닌 영향력을 항상 명심하고 조심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크고 작은 선거 때마다 상대방을 비하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말실수'들을 흔히 볼 수 있으며 그 결과로 말실수를 한 후보자가 소송에 휘말리고 선거에서 고배를 마시기도 합니다.
지난 2004년에 치러진 제17대 총선에서 여당의 대표가 던진 말 한 마디가 선거판을 크게 뒤흔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여당 대표는 "60대 이상 노인들은 투표를 안 해도 괜찮다. (투표일에) 그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된다"고 노인들을 폄하하는 발언을 해서 거센 역풍을 맞았으며 그 발언의 여파로 그 당은 우호적인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과반이 겨우 넘는 의석을 얻는 데 그쳤습니다.
설령 본인은 결코 나쁜 의도로 한 말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부인하지만 듣는 상대방은 발언한 당사자의 의중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큰 상처를 입게 마련이며 이로 인해서 우호세력이 적대세력으로 돌변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으므로 특히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는 사람들은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할 때마다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말로써 두 사람 간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든 사례도 있습니다.
공자(孔子)가 제자들과 함께 먼 길을 가던 도중에 양식이 떨어져 굶주리며 걷다가 지친 일행이 어느 마을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공자가 깜빡 잠이 든 사이에 제자인 안회가 동네로 내려가서 쌀을 구해와 밥을 지었는데 마침 밥이 다 될 무렵에 잠에서 깬 공자가 밥 냄새가 나는 곳을 살펴보는 순간 안회가 밥솥의 뚜껑을 열고 밥을 한 움큼 집어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안회는 평소에 내가 먼저 먹지 않은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았는데 이것이 웬일일까?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안회의 행동은 거짓이었을까?‘하고 공자는 의심스러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안회가 밥상을 공자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공자는 아끼는 제자 안회의 잘못된 행동을 어떻게 바르게 잡을까 잠시 생각하다가 "안회야, 내가 조금 전에 꿈속에서 아버님을 뵈었는데 밥이 다 되거든 먼저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라고 말씀하셨으니 제사부터 지내자."고 말했습니다.
공자가 제사 음식은 깨끗하고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안회로 하여금 먼저 밥을 먹은 무례한 행동을 스스로 뉘우치게 하려고 했던 말이었습니다.
그러자 안회가 "스승님, 이 밥으로 제사를 지낼 수가 없습니다. 제가 밥이 얼마나 되었나 보려고 뚜껑을 연 순간 천장의 흙덩이가 밥솥 안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스승님께 드리자니 더럽고 버리자니 아까워서 흙이 묻은 밥을 조금 먹었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공자는 잠시 안회를 의심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다른 제자들에게 “예전에 나는 나의 눈과 머리를 믿었다. 그러나 나의 눈과 머리는 완전히 믿을 것이 못되는구나.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너희들은 알아 두어라"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만일 공자가 안회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성급하게 다른 제자들 앞에서 안회를 야단치고 몰아세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국엔 ‘칼로 벤 상처는 쉽게 아물지만 말로 벤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는 말처럼 두 사람 간의 관계는 오랫동안 앙금이 생기고 결국에는 내 사람이 적이 되는 불행한 일도 생길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요즘은 소통을 강조하다보니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자연히 많아지게 되었는데 ‘언다필실 (言多必失)’이라고 말을 많이 하면 필히 잃는 것이 생기게 되기 마련이므로 말실수를 줄이기 위해서 말을 아껴서 하고 조심하라는 옛 성현들의 말씀이 더없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사람은 평생 500만 마디의 말을 하면서 산다고 하며 패가망신하는 원인의 80%가 신중하지 못한 말 때문이라고 하는데 말실수를 줄이는 한 가지 방법으로 ‘말하기 전에 그 말이 세 개의 문을 통과하는지 확인하라.’ 는 이슬람 속담을 새겨서 실천해보면 어떨까요?
첫 번째 문은 ‘그 말이 사실인가?’ 두 번째 문은 ‘그 말이 필요한가?’ 마지막 세 번째 문은 ‘그 말이 따뜻한가?’
내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이 이 세 개의 문을 통과할 수 있는지 생각하면서 말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말실수를 크게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품위 (品位), 품격 (品格)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말이나 행동이 천박스럽지 않다는 뜻인데 여기서 品 자는 입~구 (口) 자가 세 개가 모여서 이루어진 글자로서 세 개의 문을 통해서 사실을 말하고 필요한 말을 하며 따뜻한 말을 건넨다면 오해를 사거나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실수를 막을 수 있고 더불어서 품위 있고 사랑받는 충무맨이 되지 않을까요? * 천안충무병원에서 발행하는 격월간지 '충무마당' 2019년 7-8월 호에 투고한 글입니다. |
첫댓글 품격이 있는 글 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 ^^
입이 세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말이 品에서 나왔나
'입이 열 개'라면 할 말이 없겠지만 입이 세 개라면 할 말은 있을 것 같은데...^^